[엄마발달백과] '공동양육자'로서 엄마와 같이 산다면 지켜야 할 몇 가지
육아책의 주어는 늘 아이입니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것을 끝없이 나열합니다. 그럼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습니다. 육아는 아이도 엄마도 함께 자라게 합니다. '엄마발달백과'는 임신·출산·육아를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다시 씁니다. 매주 월요일 만나요.
안녕하세요. <마더티브> 에디터 인성입니다.
전 첫 아이 출산과 함께 6년 만에 다시 친정엄마와 살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생업을 이어가고 계셨지만 감사하게도 첫 손주와 딸의 뒷바라지에 두 팔 걷고 적극 나서주셨죠.
처음엔 3개월만이라고 했던 것이 아이 백일 즈음부터 외국 살이를 하게 되면서 1년으로, 그리고 저의 복직과 둘째 아이 출산으로 이 동거는 기한 없이 늘어나고 말았습니다.
엄마니까, 그저 전처럼 같이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6년 만에 다시 살게 된 '엄마인 듯 엄마 아닌 엄마 같은' 엄마는 익숙하면서도 어색했습니다. 제가 엄마의 딸로만 살던 때와는 달랐죠. 엄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엄마와 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관계에 진입한 겁니다.
내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친정엄마가 집에 온 순간, 엄마는 그저 나의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엄마이자 피고용인, 공동양육자(어쩌면 주양육자), 손님 등 여러가지로 선이 필요한 관계가 되었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섣불리 새 관계를 시작한 엄마와 전 모든 게 낯설고 서툴렀기에 실수도, 잘못도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살게 된 지 3년을 꽉 채운 지금에서야 이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선 몇 가지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처럼 육아의 어려움 때문에 얼떨결에 친정엄마와 같이 살게 되는 분들이 다수일겁니다. 아마도 처음 1-2년간은 저와 마찬가지로 혼란을 겪을 테고요. 그래서 친정엄마와 살 때 준비해야 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봤습니다. 현실적 준비와 심리적 준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친정엄마와의 동거가 결정됐다면 역시 가장 먼저 매듭지어야 할 중요한 문제는 '돈'입니다. 처음부터 돈 얘기라니, 너무 매정한가요? 하지만 시작부터 확실히 해둬야 나중에 난감해지는 뒤탈이 없습니다.
아마도 '내 새끼 봐주는데 무슨 돈이냐, 됐다'하는 친정엄마들 꽤 계실 거예요. 저희 엄마도 실제로 그러셨고요. 하지만 진심이 아니십니다. 비록 진심일지라도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되는 것, 다들 잘 아시죠? 애써 외면하지 마시길.
제 친정엄마는 생업을 포기하고 저희를 도와주셨습니다. 하지만 저희 여건 상 엄마의 기존 월 소득을 당연히 유지해드릴 수 없었죠. 그래도 정성껏 액수를 맞춰 드렸습니다. 마음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말이죠.
입주 베이비시터 비용 시세와 엄마의 매달 고정 지출 등에 맞춰 적정 액수를 정했습니다. 결코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엄마도 저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액수임을 아셨기에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시가 용돈, 부부 취미 활동 등에서 기존의 지출을 줄여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이외에 생활비 카드를 따로 만들어 드렸습니다. 매달 드리는 용돈과 생활비는 별개입니다. 그리고 장 보시는 것과 아이 간식 비용 등은 모두 이 카드로 쓰시게 했습니다. 정 없어 보여도 괜히 서로 맘 상해서 아이 과자 영수증을 두고 실랑이하는 것보단 낫겠더라고요.
이런 과정과 방법 때문이었는지 다행히 돈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죠.
용돈과 더불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엄마와 간단히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실제로 엄마는 돈도 돈이지만 독립적인 공간과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고로 저희가 이 부분에서 잘못했다는 얘기죠. 맞습니다, 사실 저희가 가장 실수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남편이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저와 아이 그리고 엄마는 모두 한 방에서 자며 지냈습니다. 방이 2개나 남았는데도 말이죠. 외국에 나가서는 방 공간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아이가 이미 할머니 품에서 자는 것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엄마는 아이와 한 방을 썼습니다. 그리고 제 복직 때문에 먼저 한국에 돌아온 저와 아이, 엄마는 남편의 귀국 전까지 다시 한 방에서 자며 생활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엄마만의 독립적인 시간이 있을 수가 없었죠. 그렇게 엄마는 낮밤과 평일·주말의 구분 없이 내내 저희 곁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귀국 즈음 어떠한 계기로 인해 저희가 엄마께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제서야 엄마의 완전한 독립된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드렸습니다.
우선 방 한 개를 완전히 엄마의 공간으로 내어드렸습니다. 옷장, 침대 등 가구도 모두 새로 준비했고 없던 TV까지 설치하느라 꽤 큰일이었지만 처음부터 했어야 할 당연한 일이었기에 최대한 필요하신 모든 걸 갖추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퇴근한 후의 모든 육아와 가사는 우리 부부의 몫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처음엔 엄마가 많이 어색해하셔서 저희가 무조건 방에 들어가 쉬시라고 재촉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주말,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밤까지도 마찬가지고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주말에 엄마는 친정집에 계시다 오는 걸로 정했습니다.
지금 보면 미치도록 당연한 것인데 어찌 그리 미련했을까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아빠가 안 계신 줄 압니다만 저희 아빠 아주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거든요... 부모도 생이별하게 만든 철딱서니 없는 딸이었네요.
친정엄마와의 동거 여부를 결정할 땐 꼭 독립적 공간을 고려해야 할 것 같고요. 근무 시간(?)은 처음 용돈 액수를 정할 때 함께 확실하게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친정엄마든 시엄마든 조부모와 동거 육아를 하게 된다면 꼭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부부 간의 합의가 중요하기 때문에 동거를 시작하기 전 꼭 솔직하게 대화를 나눠보도록 하세요.
참고로 저희 부부는 이렇게 정했습니다. 제가 계속 일을 한다면 둘째 아이 저학년 때까지 친정엄마와 같이 살면서 육아 도움을 받기로요. 물론 엄마도 동의하셨고요. 그런데 혹여 아이들에게 친정엄마의 손길이 필요 없어지는 시점이 조금 더 빨리 오더라도 저희가 먼저 엄마께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또 이제부터는 친정엄마께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전 다른 형제들보다 가장 먼저 나서야 할 겁니다. 저희가 친정엄마의 노후를 완전히 책임져야 하는 경우는 아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죠.
내가 땡겨 쓴 엄마의 시간만큼 책임과 대가가 반드시 따른다는 점, 기억하세요.
인성이 애 낳았다고? 서울이라고? 그럼 이참에 한 번 봐야겠네!
엄마 전화기에서 수도 없이 흘러나오던 말. 그렇게 전 일 년에 아니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가친척 및 엄마 친구분들을 참 많이도 뵈었습니다.
맏딸이자 맏며느리인 친정엄마라 가족 모임과 행사도 저희 집에서 치러지기 일쑤였습니다. 한 번은 명절도 치렀으니 말 다 했죠. 다행히 전 가족 및 친인척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딸들도 꽤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네 어머님들은 가족이나 친인척과의 교류가 활발하신 분들이 많잖아요(아니라면 다행입니다만). 친구분들이 많으실 수도 있고요. 사람들로 집이 북적북적한 게 불편한 분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분들은 사전에 꼭 조율을 잘 하시길 당부드리고요.
친정엄마와 같이 살면서 제가 엄마께 잘못한 점도 참 많았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점도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나에 대한 비난.
제가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전 엄마의 딸이더라고요. "넌 아직도 이러니?", "왜 그렇게 밖에 못하니?" 같은 잔소리, 비난의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대부분 제가 크게 관심이 없는 가사와 제 나름대로 열심히였던 육아에 관한 것이었죠. 어렸을 적 엄마랑 싸웠던 이유가 떠오르는 순간들이기도 합니다.
6년의 자취와 1년의 신혼 생활을 하며 자리 잡은 제 나름의 생활 패턴이 엄마에게는 여전히 부족해 보였나 봅니다. 처음엔 전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남편까지 합세하더라고요. 왜 엄마는 굳이 사위 앞에서 딸 흉을 보는 건지, 사위는 왜 또 장모님 편든다고 자기 아내를 폄하하는 건지 저도 점점 불만이 쌓여갔습니다.
나중엔 제가 정말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쌓이고 쌓이다 이건 아닌 것 같아 엄마와 남편에게 "그만하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후 여전히 엄마는 툭툭 잔소리를 뱉으시지만 "너도 생각이 있겠지"라고 미안한 듯 덧붙이시기도 하고 전처럼 마구잡이로 흉을 보진 않습니다. 남편의 태도도 당연히 바뀌었고요.
당신의 고생을 연장시킨 못난 딸이긴 하지만 지금까지도 나를 작게 만드는 엄마의 말과 행동은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친정엄마가 우리 아이의 양육을 위해 동거를 시작한 순간부터 엄마는 그저 엄마가 아닌 '공동양육자'입니다. 굳이 동거까지 하는 가장 큰 이유인데도 같이 살다 보면 쉽게 간과하는 부분입니다.
보통은 '엄마니까'라는 생각으로 편하게 대하게 되죠. 저만해도 철없던 어린시절처럼 가사와 육아가 조금만 힘들면 엄마께 미루기 일쑤였고 심지어 아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짜증내며 엄마를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입니다.
육아는 마라톤, 공동양육자와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한쪽에게 몫을 과중시키거나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말이죠.
'아차'싶은 순간들이 늘어나면서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나의 새로운 관계를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았죠. 한발짝 떨어져 보니 자연스럽게 존중과 배려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사이에 뭘'이라며 겸연쩍게 생각했던 것들이었는데 더이상은 아니었죠. 엄마와 어색하고 껄끄러웠던 부분들은 매끄러워졌고 감사의 마음도 더욱 커졌습니다.
과정은 어려웠지만 새로운 관계 맺기를 통해 전 엄마와 더욱 친밀해졌습니다. 사실 전 엄마 말에 따르면 '제멋대로이며 성격도 사나운 딸'로 그리 착한 딸은 아니었습니다. 맏딸에 맏며느리로, 평생을 다른 이들을 위해 살아왔으면서도 여전히 자식들 일이라면 무조건 헌신적으로 나서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죠.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엄마의 면전에서 말하는 모진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전 또 엄마의 헌신에 기대어 내 삶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죠. 엄마와 전 이 새로운 관계에 진입하면서 처음으로 서로에게 '선'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엄마의 희생과 헌신은 더욱 값져졌고요. 비록 엄마의 인생을 갉아먹는 못난 자식이지만 적어도 엄마가 이 시간에 대해 후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으시도록 양육 파트너로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노력은 계속될 겁니다.
지난 3년간의 제 경험을 6개 항목으로 정리해보았는데요. 모든 분들이 저 같진 않을 겁니다. 친정엄마의 동거 육아,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나 아버지 그리고 형제 등 가족과 생각이 달라 과정이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조부모 양육으로 인해 아이와 부모의 애착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요. 그저 많은 고민이 있을 어려운 길에 이 글이 작게나마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엄마발달백과-친정엄마편①]
[엄마발달백과-친정엄마편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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