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더티브 Jul 26. 2018

노래하는 어른은 되고, 우는 아이는 왜 안 되죠

"안 돼요" "안 돼" 아이의 슬픈 말버릇 

일요일 저녁, 윗집이 시끌시끌하다. 아이가 있는 집이었다가 젊은 여자가 이사 왔던 것 같은데 최근 또 세입자가 바뀌었나 보다. 같은 건물에 살아도 인사도 안 하고 지내니 누가 들고 나는지 알기 어렵다.
 
이 집이 이렇게 방음이 안 됐나. 세 들어 산 지 5년 만에 새삼 깨닫는다. 쿵쿵거리고 소리 지르고. 일제히 탄식을 내뱉었다가 환호성을 질렀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가.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는 것 같다. 자기들끼리 게임이라도 하는 걸까. 좀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시계는 어느새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비슷한 소리가 들리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그때는 심지어 평일이었다. 뭐 매일 그러는 것도 아니고, 참아야지 했는데 점점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자신들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를 것 같다. 그냥 두면 이 소리가 새벽 1시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
 
아파트가 아니라 경비실을 통할 수는 없고 직접 올라가서 얼굴을 봐야 한다. 올라갈까 말까 고민 고민. 내적 갈등.
 
가장 발목을 잡는 건 방안에서 자고 있는 아이였다. 아이는 곧 두 돌을 앞두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집 아래층은 필로티 주차장이라 그동안 층간소음 걱정 없이 살아왔다.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는 게 이 집의 최대 장점이다. 
 
하지만 아이 울음소리가 문밖을 넘는 일은 분명 있었을 거다. 아직도 아이는 밤에 종종 자다 깨서 우유 달라고 운다. 아이와 집에서 뛰어놀면서 생기는 소음도 있을 거다. 아이가 깔깔 대며 장난치고 웃는 소리 모두 누군가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일 수 있다. 등하원 할 때 1층에서 승강이 벌이는 소리는 어떻고. 내가 누군가에게 시끄러움을 지적할 자격이 있는 걸까.
 
내게 자격이 있는 걸까

“열차에도 그런 거 있었으면 좋겠어. 노키즈존.”(사진 출처 : pexels)


얼마 전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아이와 함께 기차를 탔는데 바로 앞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계속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놀라서 쳐다보니 귀에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구성진 트로트 소리가 조용한 기차 안에 울려 퍼졌다. 

 
노래는 끊어질 듯 말 듯하다가 이내 다시 시작됐다. 그렇게 아저씨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2시간 30분 동안 노래를 부르다 말다 했다. 그런데 같은 칸에 있는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이는 내 품에 잠들어 있었다. 불쑥불쑥 터져 나오는 노랫소리에 아이가 깰까 봐 걱정됐다. 무엇보다 저건 정말 명백한 민폐, 비상식적인 행동 아닌가. 저기요 좀 조용히 해주세요, 라고 말해볼까. 괜히 말했다가 해코지 당하면 어쩌지. 무엇보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걸까. 이번에도 아이가 발목을 잡았다.
 
잠든 아이가 깨면 어쩔 수 없이 소음이 발생하게 될 거다. 창밖을 보며 신나서 소리 지르기도 하고, 차 안에 있는 게 지겹다고 짜증내기도 하고. 젤리와 영상, 장난감으로 달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열차를 타면 돈 내고 예약한 자리에는 앉지도 못하고 복도 칸에 나가 있다. 거기서는 또 입석으로 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눈치가 보인다. 아이와 열차를 탈 때마다 신경성 위염이 생기는 이유다.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말과 행동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쉿, 조용히 해야지, 아무리 주의를 줘도 잠깐 뿐이다.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해야 한다는 상식을 몸으로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얼마 전 5살 아이와 기차를 탔는데 조용조용 말하라고 했더니 아이가 짜증 난다고 울어버려서 너무 난감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직 그런 존재다. 우리는 모두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이 내는 소음을 참지 못한다. 아이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열차를 탔는데 갑갑한지 낑낑대는 소리를 냈다. 옹알이 수준이었다.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뒷좌석에 탄 20대로 보이는 여자들이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박혔다.

열차에도 그런 거 있었으면 좋겠어. 노키즈존.

자기들끼리 한 이야기였겠지만 우리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을 거다.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쓴 듯 불쾌감이 몰려왔다. 아이와 함께 있다는 이유로 이런 모욕까지 겪어야 하다니. 남편은 바로 아기띠를 하고 복도 칸으로 나갔다. 그렇게 아이가 잠들 때까지 1시간을 넘게 서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뒷자리에 있던 ‘어른’들은 여행지 사진을 보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제 몸 하나 통제 못하는 어른들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안 돼요”“안 돼”다(사진 출처 : unsplash)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던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사회에서의 교육을 통해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이 된다그런데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어른들이 훨씬 많다극장을 가보라영화 상영 도중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메시지 올 때마다 휴대폰 켜서 확인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지대중교통만 타도 여기가 공공장소인지 자기 집 안방인지 구분 못하는 어른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지금 이 글을 쓰는 조용한 카페에서는 웬 할아버지가 카페가 떠나가라 통화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로 공격당하는 건 어른이 아닌 아이들정확히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이다. ‘노키즈존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질서와 상식을 배워가는 중인 아이들을 아예 공공연히 배제하기도 한다아이가 아니라 개념 없는 엄마들을 공격하는 거라고공공장소에서 애가 엄마 마음대로만 된다면 나도 소원이 없겠다. 유감스럽게도 아이는 나와 완벽히 독립된 인격체다나도 그걸 아이 낳고서야 깨닫게 됐다.
 
다시 트로트 노래가 들리는 열차로 돌아오자왜 저 사람에게는 누구도 말을 못 하는 건가왜 다들 모른 척하는 건가건장한 성인 남성의 해코지가 두렵기 때문 아닌가그 지적질이 왜 아이와 엄마들에게는 그리도 쉬운가
 
맘충이라는 혐오표현은 엄마들을 주눅 들게 한다아이의 행동을 끊임없이 통제하고 혹시나 민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지 계속 검열하게 만든다. 식당에 가면 아이가 시끄럽게 할까 봐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틀어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는 바닥에 떨어진 것까지 다 청소하고 나온다. 치운 쓰레기까지 들고 나오기도 한다. 가끔씩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나 싶다. 주변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보며 밥을 먹고 있다. 그럼 뭐하나. 아이가 떼쓰거나 떠들기라도 하는 순간엔 맘충 낙인이 찍힐 텐데.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안 돼요”“안 돼아마 어린이집에서도 집에서도 가장 많이 듣는 말이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면 다 큰 어른들은 어떤가그만큼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고 있는가일요일 밤 10다른 집 신경 안 쓰고 신나게 소리 지르는 저들은 대체 뭔가. ‘애 가진 죄인이라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건가

문을 열고 나갈까 말까. 나는 현관 앞을 서성인다. 


by. 금복



매거진의 이전글 둘째, 키워줄 거 아니면 권하지 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