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발달백과-수면교육편②] 수면교육에 지친 엄마들에게
육아책의 주어는 늘 아이입니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것을 끝없이 나열합니다. 그럼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습니다. 육아는 아이도 엄마도 함께 자라게 합니다. '엄마발달백과'는 임신·출산·육아를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다시 씁니다. 매주 월요일 만나요
안녕하세요. 잠에 한 맺힌 여자, 마더티브 에디터 홍입니다.
잠, 이라고 쓰면 깊은 한숨과 함께 눈물이 핑 돕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잠, 그놈의 잠 때문에 고생했던 시간이 스쳐 지나가네요.
생후 한 달쯤 됐을 때예요. 순하게 잘 자던 아이에게 갑자기 그분이 오셨어요. 무시무시한 공포의 등.센.서. 잠든 아이를 침대에 눕히려고 하면 아이는 바로 깼어요. 등이 바닥에 닿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 옆으로도 눕혀보고 푹신한 베개를 받혀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아이와 저는 한 몸이 되어야 했어요. 아이가 잘 때는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갔어요. 잠든 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같이 자거나 스마트폰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죠. 아이라는 감옥에 갇힌 것 같았어요.
잘 먹고 잘 노는 아이는 유난히 잘 때 예민했어요. 등센서 최강에, 3시간 낮잠을 심할 때는 5~6번 나눠서 토막토막 잤어요. 그때 썼던 수면일지를 찾아볼까요. 2016년 11월 29일. 아이가 태어난 지 5개월쯤 됐을 때네요.
6시 30분 : 기상
8시 10분 : 낮잠1(30분)
10시 15분 : 낮잠2(30분)
낮 12시 40분 : 낮잠3(40분)
오후 3시 50분 : 낮잠4(50분)
오후 6시 : 낮잠5(1시간)
오후 8시 : 밤잠
아... 다시 봐도 한숨 나오네요. 보통 순하게 잘 잔다는 아이는 낮잠을 오전, 오후 두 번 자요. 그걸 저렇게 나눠서 잔 거죠. 일지에 안 쓴 게 있어요. 바로 재우는 시간. 잠투정하는 아이를 1시간 동안 땀 뻘뻘 흘리며 어르고 달래서 겨우 재웠는데 30분 만에 눈을 딱 떴을 때 당혹감이란(feat. 분노).
그래도 아이는 처음에는 밤에 통잠을 잤어요. 밤에는 제 시간도 갖고 쉴 수 있었죠. 그런데 100일의 ‘기절’이 찾아왔어요. 밤에도 깨고, 깨고 또 깼어요. 감기, 이앓이 등으로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30분, 1시간에 한 번씩 깨기도 했어요. 토닥토닥하면 잠들 때도 있지만 울고불고 한참을 못 자기도 했어요. 아이를 겨우 재워놓고 나면 정작 저는 잠이 확 달아나 잠들지 못했어요.
이쯤 되면 누군가 말할 거예요. 그럼 수면교육해야 하는 거 아냐? 수면교육이 필수라고 주장하는 책에는 이렇게 나와요. ‘아기의 잠투정은 당연하고, 크면 다 잘 자게 될 테니 참고 기다리라’는 말은 잘못됐다고요. 아기가 스스로 일찍부터 푹 자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수면은 아기들의 신체, 정서,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고요. 심지어 어릴 때 잘못 형성된 수면습관은 성인기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그러니 어릴 때부터 훈련을 통해 수면습관을 바로 잡아주는 게 중요하다고요. 이 책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잘 자는 아이들은 머리도 좋고 성격도 좋습니다.”
생후 3~4개월까지 수면교육을 마스터해야 한다는 또 다른 책에서는 이렇게 말해요.
“수면은 교육입니다. 어릴 때부터 잠자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두고두고 잠버릇이 엉망이 됩니다.”
덜컥 겁이 났어요. 지금 수면교육을 하지 않으면 아이가 머리도 나빠지고 성격도 나빠지고 건강도 나빠지고 심지어 어른이 돼서도 잠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는 거잖아요. 제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면교육 전문가들은 말했어요. 아이들은 뇌가 유연해서 훈련받은 대로 새겨지게 된다고, 생후 6주부터 수면교육을 시작하면 좋다고요. 인터넷에는 수면교육 성공기가 넘쳤어요. 아이가 우는 게 마음 아프기는 했지만 그 고비를 넘겼더니 통잠에 성공했고 광명이 찾아왔다는 증언들.
그런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마치 수면교육을 하지 않으면 마음 약해서 아이를 망친 엄마가 된 것 같았어요. 한편으로는 “이렇게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왜 안 해서 애도 엄마도 고생해?”라고 나를 질책하는 것만 같았죠.
수면교육은 아이의 울음을 동반할 수밖에 없어요. 젖을 물리거나 안아서 재워달라는 아이를 혼자 재우려면 아이는 당연히 울게 되니까요. 전문가들은 말해요. 아이의 울음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수면교육 과정에서 아이가 울어도 그건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고집부리느라 우는 거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요. 오히려 아이가 울면서 긴장감을 해소하고 스스로 진정이 될 수도 있다고요.
네. 이론적으로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머리로는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를 울려서 재운다는 게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교육’하고 ‘훈련’한다는 것도요.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수면교육 하시는 분들 비난하는 건 아니에요. 저와 남편의 가치관이 그랬다는 것뿐이에요).
실제로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아이가 혼자 잘 수 있도록 방문을 닫아 놓고 나오면 꺼이꺼이 넘어갈 듯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아이에게 미안해서 울고, 내가 불쌍해서 울고,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한 걸까 자책하며 울고, 이웃집에서 신고하지 않을까 걱정돼서 울고... 며칠 해보다가 바로 그만뒀어요.
그 후에도 수면교육의 유혹은 수시로 찾아왔어요. 아이가 밤잠까지 못 잘 때면 더욱 그랬죠.
“좀처럼 자기 어려워하는 아이를 안고 있으면서 머릿속은 분주해진다. 뭐가 잘못된 걸까. 아니 더 정확히는,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수면교육이 답이라는데. 엄마가 독하게 울려야 한다는데. 그렇게 못하는 나와 남편이 잘못된 걸까. 낮에 계속 안아서 재우니까 밤까지 등센서가 켜진 게 아닐까. (아이) 피부가 많이 간지러운 것 같던데 (내가) 밀가루를 다시 먹기 시작한 게 잘못인 걸까(주 : 당시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어요). 아이가 저렇게 예민한 게 잠을 잘 못자는 게 혹시 날 닮아서 그런 건 아닐까...” -생후 6개월 육아일기
아이 잠 문제는 엄마의 죄책감을 끊임없이 자극해요. 내가 뭘 잘못해서 아이가 잘 못 자는 게 아닐까, 내가 지금 수면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가는 게 아닐까, 이러다 아이 잠버릇이 영영 엉망 되는 게 아닐까…
아이 잠 문제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충분히 힘들면서도 저는 제 자신의 잘못을 묻고 또 물었어요. 아이의 수면 패턴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인과관계를 찾으려 애썼고, 종종 아이를 원망했어요. 대체 누구를 위해서 그랬을까요. 제 나름대로는 정말 최선을 다 하고 있었고, 아이도 잘 못 자고 싶어서 못 자는 게 아닌데 말이에요.
그러다 저보다 일찍 결혼해서 세 살 터울 아이 둘을 키우는 친구를 만났어요. 친구는 둘째가 저희 아이처럼 등센서가 너무 심했는데 아기띠만 하면 내리 3시간 동안 낮잠을 잤다고 했어요. 수면교육,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자기는 그냥 3시간 동안 아기띠 하고 밥도 하고 화장실도 갔다고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낮에도 밤에도 잘 잔다고 했어요. 친구는 애도 편하고 엄마도 견딜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은 거예요.
저도 저만의 방식을 찾기로 했어요. 머릿속에서 ‘수면교육’과 ‘통잠’을 지우기로 했어요. 어설픈 수면교육 시도했다 말았다, 할까 말까 고민하는 건 아이에게도 저에게도 못할 짓이었어요. 낮에 몇 번 잤는지, 밤에 몇 번 깼는지 새는 일도 그만뒀어요. 생후 6개월 이후부터는 수면일지가 없는 걸 보니 그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가 낮잠 들면 굳이 눕히려 하지 않고 그냥 품에 안고 재웠어요. 아이 재우는 것도 가뜩이나 힘든데 침대에 눕혔다 깨면 다시 재웠다... 씨름하는 시간을 없앴어요. 그냥 아이가 자고 싶은 대로 재우기로 했어요. 아이는 예전보다 더 오래 자기 시작했어요.
소파에 기대앉아서 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저는 책을 읽었어요.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어 글을 썼어요. 아이 낮잠 시간을 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드니 더 이상 낮잠 시간이 괴롭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다음 낮잠 시간이 기다려졌어요. 밤 시간에는 아이 재우면서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를 들었고, 아이가 깨면 옆에 누워서 토닥이며 어둠 속에서 전자책을 읽었어요. 아이 잠에 대한 집착과 불안을 다른 곳에 대한 관심으로 돌렸어요.
또 하나. 이 아이는 자는 게 힘든 아이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어요. 잘 먹는 아이 못 먹는 아이, 외향적인 아이 내향적인 아이가 있는 것처럼 이 아이는 잘 때 예민한 아이라고요. 사실 저부터도 잘 때 매우 예민한 편이거든요. 재밌는 건 아주 어릴 때는 엄청 잘 잤다고 해요. 친정엄마는 애가 왜 못 자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세 살 잠버릇이 꼭 여든까지 가는 건 아닌 듯해요.
<느림보 수면교육>이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와요.
“안아주거나 젖을 물려야만 잠을 잔다 해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일관성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목표를 향해 가고 싶더라도, 감이 잡힐 때까지는 수도 없는 시도를 해야 한다. 아기를 잘 재우는 일뿐 아니라 그 어떤 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다.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지금도 똑같이 겪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것도 지나간다. 시간은 가고 아기는 자란다.” p.249-250
‘시간은 가고 아기는 자란다’. 이 말에 진하게 밑줄을 그었어요. 아이 잠 때문에 힘든 순간마다 이 문장을 떠올렸어요. 이 순간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고. 아이는 수시로 변하고 있고 매일매일 자란다고. 이 또한 지나갈 거라고.
아이의 잠은 분명 점점 나아지고 있었어요. 그동안 누워서 자는 ‘통잠’에 매달리느라 아이가 조금씩 이룬 성취들을 놓쳤을 뿐이죠. 아이의 잠이 100점 맞아야 하는 시험도 아니고, 누가 누가 잘 자나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아이의 잠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지 잘 알아요. 피곤해서 죽을 것 같은데 아이가 밤에 계속 깨서 울던 어느 밤, 저도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지르며 같이 울었어요. 이 지옥이 대체 언제 끝나나 싶었죠. 내일 밤이 오는 게 두려웠어요. 그렇게 힘들 때면 수면교육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요.
하지만 육아서에 나오는 것처럼 수면교육을 시도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쁜 엄마, 아이를 망치는 엄마가 됐다는 죄책감을 갖지 말았으면 해요. 아이를 푹 재우고 싶지 않은 엄마는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당신은 충분히 힘들고, 이미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아이는 저마다 다르고 아이를 재우는 방법에는 수십, 수백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어요. 아이와 엄마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았으면 해요. 아이도 엄마도 너무 힘들지 않은 방식으로요.
“마법에 속지 마시라. 수면교육을 하는 백 명의 엄마가 있다면, 수면교육을 하는 백 가지의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한 전문가가 추천한 방법을 가지고도 이를 실행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정확한’ 방법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느림보 수면교육> p.228
아이의 등센서는 생후 9개월쯤 놀랍게도 꺼졌어요. 두 돌쯤 지나자 밤잠도 자리를 잡았어요. 대신 다른 위기가 또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어요.
우유에 집착한다거나, 자기 직전에 엄청 덥고 가려워한다거나, 새벽 5시 반에 번쩍 하고 아침 기상을 한다거나, “더 놀고 싶어!”를 외치며 안 자겠다고 한다거나, 침대에서 한없이 수다를 떨고 장난을 친다거나….
위기를 위기로 극복하면서 아이는 쑥쑥 자라고 있어요. 어떤 날은 잘 잤다, 어떤 날은 잘 못 잤다 하면서요.
[엄마발달백과-수면교육편①]
왜 나는 '똑게육아'에 실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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