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HER+NARRATIVE] 침대에서 트랙으로... 걷기가 바꾼 삶
왼쪽 손목에 검정 시계를 차고 다닌다. 직사각형으로 된 투박한 운동용 스마트워치다. 이름은 핏빗(Fitbit). 나의 걸음 수, 심박 수 등을 기록하는 똑똑한 친구다. 올해 1월 3일부터 이 시계를 차고 걷기 시작했다. 3월 15일 현재까지 96만 보 정도 움직였다. 거리로 따지면 563km 이상. 하와이 군도의 길이 만큼이다.
이 모든 게 지난해 연말에 읽은 책 한 권에서 시작됐다. <걷는 사람, 하정우>. 연예인의 에세이라는 호기심에 펼쳤는데 걷기의 매력을 예찬하는 많은 문장들에 매료됐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
“걷기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과거의 어느 막막한 날에도, 이따금 잠까지 줄여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지금도 꾸준히 나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걷기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사고를 당하고 아픔을 겪고 상처받고 슬퍼한다.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 상태에 오래 머물면 어떤 사건이 혹은 어떤 사람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지경에 빠진다. 결국 그 늪에서 얼마큼 빨리 탈출하느냐, 언제 괜찮아지느냐, 과연 회복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든 지속하는 걷기가 나를 이 늪에서 건져내준다고 믿는다.”
서른을 넘기고 출산을 하며 팔굽혀펴기 한 개도 못 할 정도로 체력이 바닥났다. 몸짱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2층 정도의 지하철역 계단을 에베레스트 등정하듯 기어 올라가는 저질 체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아침저녁으로 서너 시간을 통근에 쓰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내겐 도저히 운동할 틈이 나지 않았다.
그런 내게 걷기는 해볼 만한 운동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먹으면 실행할 수 있으며, 틈틈이 이어갈 수 있는 생활 체육. 책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핏빗 판매처를 알아봤다. 하정우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걷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핏빗을 산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스마트워치가 없어도 되지만 좀 더 체계적으로 걷기 위해 장비를 마련했다. 핏빗은 스마트폰 앱과 블루투스로 연동되는데, 걸음 수, 오른 층수, 이동 거리, 칼로리 소모량, 활동한 시간 등을 실시간으로 기록해준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목표 설정 기능이다. 나의 운동 목적을 선택하면 필요한 활동량을 설정해주고, 일상에서 틈틈이 목표를 일깨워준다. ‘목표 달성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몇 보 더 걸어야 해요’라는 식으로.
나의 목적은 건강 관리. 핏빗은 내게 일일 8천 보 걷기, 계단 10층 오르기, 주 3회 15분 이상 운동을 제안했다. 하루 8천 보를 채우려면 기회가 될 때마다 걸어야 한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두 정거장인 거리를 버스 대신 두 발로 이동했고, 점심 후 3km 정도 산책했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와 무빙워크를 타지 않고 웬만하면 걸었다. 집과 사무실도 계단으로 다녔다. 걸음 수를 채우기 위해 업무 중 쉬는 시간에도 복도를 왔다 갔다 하거나, 1층까지 내려가 사무실이 있는 6층까지 운동 삼아 오르락내리락했다.
글로 쓰면 꽤 쉬워 보이는데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다. 운동의 강도가 버거운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하루치 목표를 훌쩍 뛰어넘었다. 호기롭게 만 오천 보를 걷거나 계단 80층 높이를 오르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힘이 남아돈다고 욕심을 부리면 무릎이 시큰하거나 허벅지 근육이 욱신거려서 다음 날 운동에 지장을 줬다. 문제는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아니었다.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었다. 그게 운동을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차이이기도 했다.
어디선가 달리기를 시작하는 법에 대해 읽은 내용이 기억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천천히, 더 자주, 더 조금 달려야 한다.’ 젊고 건강한 사람일수록 단기간 내에 운동 강도를 높이고 싶어 하지만, 그러다가는 부상 등의 이유로 도리어 운동을 지속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걷기에도 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다시 고쳐먹었다. 많이 걷기보다는 매일 걷기에 방점을 뒀다. 미세먼지가 있는 날에는 마스크를 쓰고,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나가서 걸었다. 피곤한 날에는 천천히 걸었고, 한파가 온 날에는 옷을 껴입고 나갔다.
어떻게든 매일 나가서 걸었더니 한 달째에 접어들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걸어야만 해서 걷는 게 아니라 걷고 싶어서 걷게 됐다. 원래 내게 휴식은 곧 잠이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누워 있거나 잤는데, 하정우처럼 딱 한 달 살아보니 휴식의 의미가 달라졌다.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였거나 우울해질 때면 어디든 나가서 걷고 싶어졌다. 시린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면 몸이 개운해졌고, 그 느낌이 좋아서 저절로 매일 걸었다. 진짜로 걷는 사람이 된 것이다.
두 달 째부터는 운동량을 늘렸다. 남편에게 아이를 부탁한 후 일주일에 세 번, 밤마다 인근 체육공원에 나가 30분 이상을 쉬지 않고 걸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머리에서 몸까지의 거리가 짧아졌다고 해야 할까. 나는 그게 무엇이든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할까, 말까, 하는 게 좋을까, 하지 않는 게 나을까 하며 끊임없이 고민하다 기회를 놓친 적도 많다.
걷기 운동은 그런 나를 조금은 변화시켰다. ‘오늘은 날이 추우니 나가지 말까’, ‘어제 잠을 못 잤으니 하루만 쉴까’ 하고 고민해도, 몸은 이미 현관 앞에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트랙 위에서 ‘오늘은 그만 걸을까’ 하고 갈등할 때면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더 해보자.” “아직은 더 걸을 수 있어.” 숱하게 흔들리고 망설이는 머리와 마음을 몸이 다잡아줬고, 내가 좀 더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줬다.
3월에 접어들자 걷는 게 지루해졌다. 그래서 뛰기 시작했다. 걷는 사람에서 달리는 사람으로 목표를 전환했다. 마침 안식 휴가 한 달을 얻어 시간도 생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3~5km씩 쉬지 않고 뛰었다. 부산과 제주로 여행 갔을 때도 숙소 인근 공원과 올레길을 따라 달렸다. 3월 마지막 날에는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10km를 완주했다. 올가을에는 하프 마라톤에 도전할 생각이다.
달리기는 걷기보다 좀 더 많은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매일 해도 몸이 쉽게 적응하지 못해서 날마다 큰맘 먹고 나가야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생각만큼 뛰지 못하는 날도 있다. 걸을 때보다 더 쉽고 깊게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소설가이자 러너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말을 남겼나 보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뛰면서 수많은 생각이 스친다. 주로 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다. 힘들다. 다리가 아프다. 잠깐 걸을까. 오늘은 그만 걸을까. 굳이 마라톤을 해야 할까.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걷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 쓸데없는 짓 아닐까.
그러나 내겐 분명 트랙 위에 서는 이유가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나만의 의식이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 예상치 못한 구렁텅이에 빠져도 수리수리 마수리 얍 하고 주문을 외우면 원래 있던 곳으로 이동하는 만화 속 마법이 나에게도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바람. 거기에서 내 운동의 역사가 시작됐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아분열을 겪는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주방에서 이것저것 썰고 볶다가도 뒤돌아서면 엄마로 사는 게 징글징글해 가슴을 치고, 아이에게 부처 미소를 지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쾡이처럼 아이를 할퀸다. 지나간 유행가 가사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자주 길을 잃는데, 도망갈 곳이 없어 아득해지곤 한다.
걷거나 달리는 길에선 오롯이 나 혼자가 될 수 있고,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왜 내가 화를 내는지, 왜 엄마로 사는 게 어려운지, 내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돌이켜보며 중심을 잡는다. 운동은 일상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나만의 시간이다.
남편은 나의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돕는다. 그는 내가 운동하면서부터 달라졌다고 했다. 전에는 육아하며 쉽게 지치고 화를 냈는데, 그런 모습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나. 남편 역시 내 운동의 효능을 느끼고 있나 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 어쨌든 시작한 이유를 잘 지켜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달리기에서도, 인생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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