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_86
남편과 함께 나라밖 만행을 떠난 지 반년을 넘겨 멕시코시티 옹색한 숙소에서 추석을 맞았다.
세계여행이 모두의 꿈이라지만 막상 길 위의 삶이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산 설고 물 선 새로운 곳에 첫발을 딛는 일은 언제나 칠흑의 밤바다에 표류된 것처럼 막막하다. 안전하고도 얇은 지갑이 감당할 만한 숙소를 찾아야 하고 모두가 초면인 타인 속에서 그들의 친구로 신뢰를 만들어내야 한다.
기제를 마음씨 고운 시누에게 부탁했을 때 '걱정 말고 낯선 곳에서 몸이나 잘 챙기라'고 했던 시누는 내가 차린 것보다 더 정성이 들어간 제사상 사진을 보내온다. 이미 며칠 전부터 추석상 차릴 장을 봤던 시누의 정성과는 달리 우리의 허전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배추전 몇 장을 부치고 돼지고기를 삶아 맥주 한 잔을 올리고 한국을 향해 절했다. 남편과는 말 한마디 없이 음복을 했다.
오늘도 1만 보를 넘게 걸은 몸을 누이자 침대가 천국이다. 항상 나보다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사람을 만나 더 피곤할 협탁 넘어 싱글 침대의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는 언제 다시 한국의 고향땅을 밟을 수 있을까요?" 오늘 밤은 남편이 쉬 잠들지 못했는지 바로 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발 딛는 모든 곳이 고향이고 우리가 등을 붙인 침대가 고향 안방이에요."
남편은 고향의 개념을 바꾸라지만 나는 여전히 안거 중에는 만행이 생각나고 만행 중에는 안거가 그립다.
"고향이 고향
20230928
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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