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6
멕시코 한 사업가 가족의 초대를 받았다. 덕분에 지난밤 자정까지 Polanco 중심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찬과 대화가 함께하는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멕시코시티 도심에서 서쪽에 위치한 Polanco 지역은 이 도시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녹음이 무성한 고급 주거지역이자 상업지구로 부동산 가격이 가장 높은 곳이다. 근대의 건축과 현대의 건축이 어우러진 주목 받는 건축들이 즐비하고 소우마야 미술관을 비롯한 박물관, 갤러리, 세계의 유명 브랜드들이 입점한 백화점과 디자이너 부티크들이 이 부촌의 커뮤니티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인 만큼 고급 레스토랑들이 최고의 요리와 서비스를 경쟁하는 곳이다.
자수성가한 Luis Angel 씨는 지적이며 영적이기까지 한 부인, Eddaly 씨와 14살 Luis, 12살 Lució 가족의 가장이다.
우리 부부가 고급문화지구에서 클래식 라이브 뮤직과 최고 요리사의 요리와 함께 멕시코와 한국 가정과 가족의 이상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마련된 발단은 루이스였다. '포포카테페틀(Popocatepetl) 화산'에서 처음 만난 루이스는 어쩐지 나를 따랐다. 나의 모든 발걸음에 동행하며 내 시선이 닿는 것들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늘 웃음 띤 얼굴에 오픈 마인드, 친절하고 친밀한 성격만으로 뭔가를 이룰 수 있는 청년이었다. 나이를 알고 보니 내년 8월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 중인 14살 소년이었다. 살가운 이 친구에게 나도 반하고 말았다. 두어 차례 더 루이스를 만났고 마지막 만남에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를 만들어도 좋겠냐,고 물었다.
저녁 미팅이 예정된 어제 우리 부부는 낮 시간을 '바스콘셀로스 도서관(Biblioteca Vasconcelos)'에서 보냈다. 나는 개성적인 건물 디자인으로 이름난 이 도서관의 취재에 지나친 의욕을 쏟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그때 루이스가 예약된 레스토랑, Parole에 드레스 코드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포멀한 복장을 해야 하는 곳이래요. 레스토랑 측에서는 크록스, 반바지 같은 복장은 곤란하다는군요."
문제였다.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이도 루이스밖에 없었다.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장기 여행자라 크록스 신발밖에 없고 티셔츠밖에 없는데 어떡하지? 네가 신발 하나 가져올 수 있니?(That's the problem. We are long-term travelers, so we have no shoes other than Crocs and no clothes other than the t-shirt we wore yesterday. If possible, please bring one of your shoes for me.)"
그는 자신의 신발을 가져와서 그 식당의 리셉션 의자 밑에 두었다가 내가 당도했을 때 내놓았다. 그의 등산화로 갈아 신고 크록스는 안 된다는 기준을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미리와 있었던 가족들의 환대에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이웃으로 살아온 것 같은 친밀감을 느꼈다.
부인 에달리 씨가 아내에게 배가 어느 정도 고픈지를 물었다. 대답은 내가 가로챘다. "우리는 오늘 저녁 만찬을 위해 아침부터 굶었습니다." 부인이 역시 유머로 받았다. "바로 그것이 저희가 바라던 바였습니다." 메뉴북이 두터워 우리를 고민스럽게 했다.
'믹솔로지스트(Mixologist)'가 만든 칵테일부터 시작된 만찬은 디저트까지 '삶 최고의 기쁨은 혀에서 끝내라'라고 작정을 한 듯한 맛과 아티스틱한 플레이팅으로 서빙되었다. 이 레스토랑에서는 미각과 시각의 만족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것 같았다. 식사 중간중간에 테너 세프와 바이올리니스트가 라이브 이벤트를 펼쳤다.
하지만 최고의 장소에서 미식 경험보다 더 좋았던 것은 특별한 가족의 화목의 비결과 변화를 위한 노력들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나눈 것이다.
루이스의 아버지 엔젤 씨는 주말인 이날 두 아들과 함께 야구클럽에 가서 함께 야구를 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즐겼던 야구였다. 무역회사를 운영 중인 그는 늘 바쁜 사업가로서 주중에 두 아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을 이렇게 스포츠를 함께 즐기는 것으로 해소하고 있었다.
엔젤 씨는 어릴 적 부모가 함께 사업을 시작하는 바람에 동생과 함께 독립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사업가로서 순항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결정을 홀로 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상황이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경우였다.
부인은 고등학교 교사였지만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 싶을 때 학교보다 아이들을 택했다. 육아를 하면서 다시 새로운 도전을 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을 때 방송의 메이크업아티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루이스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시점이라 루이스를 돕고 있다. 하지만 일을 중단했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시간이 허락되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스스로를 개발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특히 세계의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아 긴 여행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루이스는 사업가가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청소년으로서 지금 경험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고 있다. 그런 만큼 학과 공부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비롯한 여러 악기 연주를 배웠고 지금은 농구에 빠져있다.
루시오는 과묵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는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통해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내곤 한다. 발명가, 프로그래머, 과학자가 꿈이긴 하지만 음악에도 특별한 재능이 있다.
우리 부부는 특히 자녀의 장래에 관심이 많은 부부를 위해 우리의 세 아들딸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엔젤 씨의 경우처럼 우리 부부가 우리의 일로 바빠서 방목을 했더니 세 아이가 자신이 하고 싶은 영역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얘기였다.
자녀들이 청소년이 되고 부터는 유달리 페어런팅에 고민이 많았던 에달리 씨가 말했다.
"세계 다른 문화권에서 온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저를 고정된 패러다임에서 해방시켜줍니다. 아이들을 놓아주는 건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들이 스스로 그들 자신이 되는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오늘 이 식사자리에서의 이야기들을 되새김해 제 자신을 재구성하려고 합니다. 제게 어떻게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에달리 씨가 루이스와의 대화 한 대목을 들려주었다.
"직업이기도 함으로 저 자신도 매일 화장을 합니다. 어느 날 저녁에 세안을 한 얼굴을 본 루이스가 물었습니다. 다시 지울 화장을 왜 하냐고. 그래서 만다라 얘기를 해주었죠. '힌두교와 불교에서 종교적 수행을 위해 정교하게 아름다운 만다라를 제작하지만 그것이 완성되는 순간 파괴해버린다. 하지만 그 파괴는 더 높은 단계의 성장을 위한 준비이다. 수행승은 그 만다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깨달음에 한발 더 다가갔기 때문에 파괴는 파괴가 아닌 것이다. 엄마의 화장도 그와 같다'라고요."
우리는 액자에 아름답게 플레이팅된 세프의 후식을 만다라를 파괴하듯 맛있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멕시코시티의 자정, 포옹의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준비였다.
@dina14c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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