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스 선생님께서 주신 경책의 질문들

Ray & Monica's [en route]_38

by motif


녹명(鹿鳴)의 여정을 꿈꾸며...


평소 다양한 방법으로 세심하게 저희 부부의 여정에 힘을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일상에서 겪은 것에 대한 사소한 사유에도 오히려 더 넓은 지식과 지혜로 지지해줍니다. 이런 방식이죠.


"두 분이 지향하는 삶의 자세를 알기에 많이 배우고, 또 성찰하며 때로는 자극을 받기 위해 매번 선생님의 글 공간을 방문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이디어만 있지만 에너지 문제와 기후위기에 대해 사람들의 아이디어, 작은 실천, 생활 속 변화의 내용을 서로 나눌 공유 카페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기 없이 생활하는 아이디어와 기술들이 상당히 확산되었습니다. 후지무라 야스유키의 비전화공방(Atelier Non-electric)을 선두로 전기와 석유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접할 수 있었죠. 저희도 전기청소기 대신 빗자루와 걸레를 씁니다. 여름은 선풍기와 부채가 다입니다.(벽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만 한 번도 가동한 적이 없습니다.) 겨울엔 여행 때 구입한 독일 보온물주머니가 한 몫 하지요.

하지만 정작 이러한 공유 공간을 생각해 보았던 것은 작년 겨울에 선생님의 동거일기를 읽던 중 강민지 선생님이 걸어 둔 휴지 한 조각이었죠.^^

https://blog.naver.com/motif_1/222208196443


선생님의 부모님 세대, 그리고 선생님 두 분이 살아오신 생활 방식이 바로 오늘날의 세대에게 전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으로 하던 방식, 각자 생활 속에서 터득한 지혜 등을 되살렸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부부가 새로운 낯선 곳으로 나아가고자할 때는 출판예정원고 내용의 해당부분을 보내주셔서 저희의 길잡이가 되게 하시는 배려심 가득한 분입니다.

저희가 LA을 떠나기 전에 의료용기구상에서 보온물주머니를 하나 샀습니다. 중남미의 숙소가 난방시설이 없지만 밤에는 지역에 따라 꽤 춥다는 것을 보완하는 방식도 바로 '겨울 여행 때 보온물주머니를 사용’하신 다는 이분의 지혜에 따른 것이죠.


멕시코로 떠나오기 직전 이분께서 저희 여정에 대해 질문을 주셨습니다.


"두 분이 여행을 떠나신 지 하반기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이때 하반기란 올해의 시간 안에서입니다. 미국 여행- 75일 동안 어떤 면에서는 정주자로 여행하시고 이제 멕시코의 새로운 문화 속으로 떠나십니다. 미국을 떠나 남아메리카-새로운 문명과 문화-로 이동하시는 동안 두 분 선생님을 인터뷰할까 합니다.^^ 그건 선생님의 글을 읽는 동안 선생님께서 글의 흐름에 부합되지 않아 아직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 혹은 행간에 숨어 있는 부분을 확대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간단히 떠오르는 몇 가지 궁금증을 적어 보았습니다. -중략- 글로 올라온 이야기 외에 두 분 선생님만의 단상이 있으시다면 더 듣고 싶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여정을 알지 못하기에 질문이 다소 구체적이지 않고 관념적이거나 막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정의를 내려달라기보다는 질문을 통해 떠오르는 여행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하지만 이 또한 멕시코로 이동하시는 중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역시 패스 하여 주시고 ^^ 두고두고 들려주십시오. ^^ 상황이 어떠하실지 몰라 비밀댓글로 단 것입니다만 공개로 이야기 들려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답니다.^^"


그동안 멕시코로 이동하고 초행인 이곳의 사람과 습속, 안전에 대해 감각을 익히고 적응하느라 짬을 내지 못했던 제가 비로소 선생님께서 주신 질문과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질문은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하고도 쉬운 방법이죠. 그래서 저도 길 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질문으로 보낸답니다. 저의 얕은 지식으로 곡해하거나 다른 풍속의 행위를 오해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문답법으로 상대방의 무지를 일깨웠고 짝을 이루어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교육 방법 하브루타가 여전히 유효한 것을 보면 질문과 경청이 무명을 밝히는 소중한 방법임에 틀림없지 싶습니다.

저희에게 소트라테스같은 분으로 길 위의 저희 상황에 대한 배려심 가득한 질문을 주신 분은 'SONOS' 선생님입니다.

●낯선 곳의 산책자(Flâneur)로 사는 이유

https://blog.naver.com/motif_1/22320166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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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자가 되신 것 같습니다. ^^ 사진을 찍고 기사(글)를 쓰시고 인터뷰를 하시고... 항상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장소를 방문할 때 그렇게 하시나요? 즉 하루 일정에 항상 취재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와 처음만난 사람도 좀 대화를 하다보면 '혹시 기자이신가요?'라는 되묻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대답의 근원과 근거를 확실히 하기 위해 대답속의 의문에 대한 질문을 계속이어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의 여정을 처음 뵙는 분들께 소상히 말씀드릴 수 없어서 "좀 긴 은퇴여행중입니다."라고 소개드리지만 그 말속에 담지 못한 의도는 이렇습니다.

저희와는 전혀 다른 자연, 인문, 역사 환경 속에 계신 분들에게 가진 수많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풀리지 못한 그 의문에 대한 배경을 찾아 떠난 것입니다. 직접 그 문제의 씨앗이 뿌려진 곳에서 총체적으로 그것을 이해하기위한 여정인 것이지요. 이들은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어떻게 찾고 있는지, 찾았다면 그 답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인거죠.

은퇴해서 육신의 평화 속에 고요를 누리기보다 아직은 건강할 때 변화의 현장인 세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 지금은 그 의미가 변했을 수도 있는 기존의 제 관념들에 대해 검증하고 싶었습니다. 이는 정신적으로 새로운 근육을 얻는 일이며 그 과정을 통해 세대 차이라는 장벽을 허물고 제 스스로 자유를 얻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이렇다 보니 질문이 질문을 낳습니다. 이는 제 평생계속 된 저널리스트로의 습관 탓이 기도하지만 떠오르는 의문을 그 자리에서 곡해 없이 풀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구에서이기도합니다. 처음에는 '관광객'의 모드를 취하려고 많은 것을 참았지만 이것은 제가 택할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저널리스트'적 본성을 숨기지 않는 방식으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일 궁금한 건 전쟁과 환경인데요. 먼저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곳곳에 직ᐧ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이번에도 경제 상황, 특히 에너지 문제 등에 의해 물가변동 등 타격을 받았을 것 같은데 그런 영향을 마켓이나 주민들에게서 느끼거나 취재하신 적이 있나요?

->이 문제는 우리가 '10년 예정'의 이 여정에 나서기 전에 유럽과 아시아를 도는 131일간 26개국 120도시 53,000km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참여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motif_1/222900526020

이때는 COVID-19가 잠근 세계의 빗장이 완전히 열리기 전이기도 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일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왜 침략국의 나라로 가느냐,는 질책에도 불구하고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마음으로 단단히 결심을 하고 떠났었죠. 의외였던 것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를 지나 라트비아로 입국하는 동안 러시아의 어느 곳에서도 '이 나라가 전쟁 중인 나라가 맞아?' 싶은 의문이 더 짙게 들었습니다. 그만큼 일상은 평온했습니다. 전쟁은 먼 곳의 다른 나라에서 수행되고 있었고 대부분은 그것과 유리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다만 유럽을 돌아 다시 러시아로 들어가 블라디보스토크로 되돌아가는 시점인 2022년 9월에 내린 푸틴의 '예비군 동원령'으로 러시아의 남성들이 징집을 피해 외국으로 탈출하는 10km가 넘는 탈출행렬이 러시아속의 전쟁을 심각한 현실로 인식하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원래 계획된 이 여정에는 우크라이나 방문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전쟁 발발로 '여행금지 지역'으로 공표되고 '방문·체류 금지’되었기 때문에 입국은 '여권법 위반'이 되는 것이었죠. 해서 우크라이나의 내부 상황은 직접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쟁발발 후 러시아 구간의 경비가 2, 3배 오른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가장 심각한 실감은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자동차를 운반하는 것이었죠. 유럽의 물가도 애초의 예상보다 1.5배 이상 오른 상황에 크게 당황했답니다.

현지의 시장 상인들도 두 손바닥을 들어 하늘로 펴고 매일 빵을 구워야하는 곡물과 매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기름의 송유관을 끊어 무기화하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는 하소연들이었죠.

서로 하나로 묶인 세계의 경제체제 속에서 한 지역의 전쟁은 비록 미사일의 사정거리 밖에 있는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세계는 모두 '물가'라는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기회였습니다.


●난민문제나 지원, 구호문제 등 직접적으로 경험한 일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경험한 동ᐧ서유럽의 모든 나라들은 표면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태도였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전쟁을 유발한 원인을 제공한 요소를 꼬집어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의 태도에 분노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내에서도 우크라이나내의 친러시아 지역주민들에게 행한 우크라이나의 차별적 태도를 선전하는 전시도 목도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는 뿌리 깊은 갈등이 있었고 그 원인도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언급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저는 공부할 과제로 남겼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해서는 모두가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인류애를 보이는 모습들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영국을 비롯한 서방은 특별법을 만들어 그들의 입국을 단순화하고 손쉽게 하는 한편 그 내용도 디테일해서 그들의 애완견까지 어떻게 동반할지에 대한 내용도 포함된 것에 감탄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피난여성들에게 대한 인심매매나 성폭행 등을 우려하는 상황이라 유라시아여행 중에 그들에게 직접 접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영국에 체류 중일 때 그들과 함께 행사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당장의 구호뿐만 아니라 세심한 지원이 정부와 민간에서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화급한 언어 소통문제 해결을 위해 특별반을 만들어 그들만을 위한 영어 클래스를 운영하는 등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영국입국이후에 그들의 정착을 돕고 있는 모습이 한 예입니다.


●한국도 폭염과 폭우가 대단했습니다. 폭우가 중남부 지역을 강타해서 충청도와 전라도 농산, 축산물이 많은 타격을 받았습니다. 모두 물에 잠겨서 올해 농사를 마감한 분들이 많습니다. 폭염으로 사망자, 질환자도 많았습니다.

미국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미국에서의 뉴스나 생활 속에서 경험하신 것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LA에 체류 중인 지난 8월 18일 캘리포니아주에 허리케인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멕시코와 접경지인 샌디에고뿐만 아니라 LA의 다운타운까지 경보에 포함된 것은 84년만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허리케인 '힐러리'는 멕시코에 상륙해 내륙을 타고 북상할 것이라는 예보에 따라 LA전체에 공무원과 군이 동원되어 안전준비에 나섰고 20일 캘리포니아에 당도할 것이라는 예보로 일요일인 그날 종교시설의 예배도 중지했지만 다행히 중도에 소멸되어 문제는 없었습니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는 중에 벨리즈의 케이 콜커(Caye Caulker)라는 섬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북으로 긴 이 섬이 허리케인의 힘으로 두 섬으로 나누어졌다고 합니다. 후에 그 수로가 확장되면서 그 지점이 'The Split'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지금은 수영, 스노클링 등의 명소가 되었다고 하는데 제 뇌리 속에는 섬을 두개로 분리(split)해버리는 자연의 괴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이렇듯 세계도처에는 수십 년만에 일어나는 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작년 유라시아 여정 중에 서유럽구간에서 여름을 맞았습니다. 2022년 여름은 유럽에서 기록된 가장 더운 여름이라고 했습니다. 6,7,8월에 폭염으로 인해 6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스페인 레온에서 포르투갈 포르토로 가는 중에는 국경 양쪽에 30km가 넘는 구간의 산이 산불로 전소가 되었고 마을로 내려오는 불을 잡기위해 저지선을 만들며 사투를 벌인 흔적이 선명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직접 연도에 불타고 있는 산불을 만났고 그 마을의 산 정상에 있는 산불 감시탑에 올라가 감시원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유럽이 불타고 있다,는 말은 상징이 아니라 현실이었습니다. 폼페이에서는 폭염 속에서 큰 우박을 만났습니다.

이곳 멕시코시티에서도 며칠 전에 이틀간 폭우가 내렸습니다. 건기와 우기의 구분이 없는 이곳 고산도시에서 이는 드문 경우라고 했습니다. 그제만난 멕시코시티로부터 북서쪽 200km 지점에 살고계신 분은 올여름에 갑자기 비가 내리는 상황을 수시로 겪고 있고 기온도 예전보다 체감온도가 3,4도 높다고 했습니다. 두 번 방문했던 멕시코의 두 번째로 높은 5,452m의 포포카테페틀산은 첫 번째 방문에서는 산중턱까지 눈으로 덮여있었습니다. 9일 만에 다시 방문했을 때 그 눈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9일 만에 일어난 변화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태풍, 홍수, 가뭄, 산불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부부에게는 여행 중에 계속 만나는 당면한 현실입니다.


●환경에 대한 활동이나 시민들의 환경의식에 대해 취재하신 게 있으시면 들려주세요.

->세계 도처에서 한정된 자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재활용에 대한 생각들이 실천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가론(Garonne)강가의 버려졌던 거대한 저장탱크가 호텔로 재활용되고 멕시코의 하시엔다(hacienda 대농장)가 다른 용도로 전환되면서 곡물을 저장했던 사일로가 한국건축가에 의해 숙소로 재활용되었습니다. 이미 '북타운'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영국 헤이온와이(Hay-on-Wye)의 경우, 경제상황의 변화로 마을이 쇠퇴하자 헌책방이라는 아이디어로 다시 마을 전체가 부흥하게 되었죠. 기존의 건물들이 철거되고 다시 지어지는 대신 시간을 머금은 그대로 더 가치 있게 재활용되는 것이죠. 저희가 방문했던 올 5월에는 마침 축제기간이라 온 마을이 방문객들로 들썩였습니다.

보르도의 강가, 가장 전망 좋은 곳에 기부상자들이 놓여있고 시민들의 에코인식을 환기시키는 에코시티즌하우스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 참 반가웠습니다. '보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 나는...'이라는 게시판에 함께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었고 물 사용량을 줄이고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들이 구현되어서 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트레이 반도에 위치한 매력적인 해안 마을, 카멜바이더씨(Carmel-by-the-Sea)는 태평양의 숨 막히는 전경과 예술공동체로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서 1박을 하고 이른 아침에 마을을 걷다가 아직 상점문도 열지 않은 길거리의 수목들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마을의 환경을 가꾸고 지키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들과 대화하고 나는 카멜을 이곳의 시장을 지냈던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로 기억되는 도시가 아니라 그 아침의 시민들로 기억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멕시코시티에도 포장지를 없애고 친환경세제를 용기를 가져와서 받아가는 환경친화상점들과 공터를 활용한 프리마켓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감동인 것은 갱단 관련 폭력과 마약 밀매로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다는 온두라스에서 나고 자란 젊은 여성이 끝없이 자연을 찬미하는 살가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연만이 우리의 위로이고 구원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수많은 재활용 가게들뿐만 아니라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다팅턴 홀에 2박3일을 머물며 토트네스의 전환마을운동과 다팅턴 트러스트(Dartington Trust)와 슈마허 칼리지(Schumacher College) 등을 취재했습니다. 너무나 인상 깊었던 경험이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사회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할까요?

->우리 삶의 위기는 빈부격차를 비롯한 교육, 의료, 자원 등의 불평등, 편을 가르는 정치, 갈등과 분열의 원인되는 종교, 혐오를 부추기는 이익집단, 성장만이 목표인 기업의 소비 조장, 비교에 사로잡힌 소비자의 남용 등이 상호 연결되어 증폭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 것인지를 알면 적어도 남용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쌀 한 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고기 한 점이 우리 같은 감정을 가진 다른 생명의 희생을 통해서 내 밥상위에 올라왔다는 것을 안다면 말입니다. 개인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남용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그 유혹에서 벗어나는 길은 비교습관을 버리는 일일 것입니다. SNS의 발달로 이제 그 비교대상은 전 세계가 된 만큼 이 비교우위에 관한 심리를 다스리지 못하면 마음의 평정과 고요, 충만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위기의 시기에는 늘 영웅들이 출현하죠. 지구역사로 보면 지금이 환경적인 측면에서 가장 위기의 시기인 셈이죠. 이 시기에 출현한 세계 곳곳의 영웅들을 발견하고 그분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우리 여정의 중요한 미션이기도합니다. 생태와 환경의 복원, 아름다운 역사와 문화의 발굴, 종교의 순수 등을 공동체에 녹이면서 글로, 책으로 일깨우시는 선생님은 저희에게 그런 영웅들 중의 한 분이죠.

●개인주의, 이익사회, 자국 중심주의를 넘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세계 시민'이란 무엇일까요?

->공감능력과 연민을 가진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 문화적 다양성에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 환경ᐧ인권ᐧ불평등 등 사회적 이슈에 당사자로 행동하는 사람, 좋은 리더가 되는 것만큼이나 좋은 팔로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 자발적이고도 호혜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돈이 없이도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진 사람, 돈이 많지 않아도 많이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 남을 바꾸려고 하기 보다 내가 먼저 바뀌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 당신이라는 신(나 아닌 너)에게 감사하는 사람들.

●미국의 다문화 사회도 담아내시고 또 한인들의 애환, 한인들의 오늘을 조명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여러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다문화 사회는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요?)

->이민은 개인적인 선택이며 여정이지만 자신이 속한 익숙한 사회를 떠나 새로운 사회에 소수자로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저는 세계각처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교민들에게서 first penguin의 미덕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낸 만큼 더 많은 배움,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죠. 이 모든 것을 누리려면 관객으로만 역할 하는 것이 아니라 주연배우의 입장에서 참여, 존중, 책임감이 절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게 다문화는 모두가 배우이고 모두가 관객이기도 한 즐거운 사회라는 생각입니다.

●미국 사회 한가운데에서 보신 LA의 빛과 어둠을 말씀해 주세요.

->LA는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그동안 구축해온 풍부한 예술, 문화의 인문환경으로 누구에게나 살기 좋은 곳으로 인식되어있죠. 그런 만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과정의 어려움을 뚫고 모여듭니다. 그중의 많은 사람들은 이미 구축된 자원의 소비에 편승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에도 수많은 진입장벽이 존재합니다. 그 장벽을 넘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어떤 곳보다 살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낙오된 사람들이 결국 홈리스로 추락하고 거리는 새로운 도전의 의욕조차 상실한 수많은 홈리스들로 넘쳐납니다. 엄청난 물가 때문에 그 장벽을 돌파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고된 중노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월세를 지불하고 먹거리를 해결하려면 온가족이 노동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풍부하게 제공되는 문화 환경은 소수의 것이 되고 맙니다. 특히 많은 비영어권 이민자들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이미 가진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고 당사자를 위한 삶이 아니라 2세에 자신의 희망을 투영하는 삶이 되고 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A는 좋은 교육환경으로 창의성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들에 대한 혁신을 기대해볼만한 곳입니다. 더불어 성공한 부자들이 그들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미덕이 있는 도시입니다.


●선생님의 예전 미국에서 유학하시고 미국 생활을 하신 적이 있으시지요.

[20년 전 북미를 떠났던 이유들과 조우하다]라는 글을 따로 쓰셨는데

그때 이후 선생님의 화두는 풀리셨는지요? 그리고 20여년이 흐른 후 미국 사회를 보신 소감은 어떠신지요?

->20여 년 전과 이번의 체류는 전혀 다른 목적과 입장이므로 다른 시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국은 워낙 큰 나라라 주마다 환경도 법도 다른 만큼 여전히 제게는 미지의 나라입니다. 제가 이 나라에 대해 말을 한다면 그것은 열반경의 맹인모상(盲人模象)의 일화가 될 것입니다. 다만 더듬어 안 코끼리의 부분이 코끼리의 전체를 드러내지 못할지라도 그 특징의 일부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각은 개인이 모여 나라가 되었지만 개인과 나라가 너무나 다른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와 권력의 문제로 넘어가는 것이라 저는 코끼리를 더듬는 일을 계속해나갈 예정입니다.

●Fargo에서 가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예전 가족이란 '느슨한 연대'라고도 말씀하셨지만 가족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있으셨다면요?(가족의 붕괴, 파편화 시대에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가족의 모습, 사회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점(배울 점)이 있다면 어떤 면이 있을까요?

->우리의 교육에서 흔히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어떻게 다른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이 제게도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어서 서양을 바로 보는데 장애가 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사회적 규범과 의사소통 방식, 추구하는 가치 등이 많이 다른 듯 하지만 그 속으로 들어갈수록 같다는 것을 실감하곤 합니다.

가정적이며 가족은 모든 사회생활의 기초이며 그 속에서 경험하고 배운 사랑이 개인의 일생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신하게해준 것은 영대의 미국 호스트 가정이었던 커티(Kurtti)씨 가족이었습니다. 영대와 함께하는 1년 동안을 지켜보면서, 또한 그 후 10년 동안 관계를 이어오면서 변함없이 지속되는 흐름을 경험하면서입니다.

그런 점은 이곳 멕시코에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이분들이 얼마나 가정적이고 효심이 지극한지에 놀라게 됩니다.

우리가 배우고 뇌리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표면적인 스타일이었던 것이죠.

●강민지 선생님은 정적인 분, 이안수 선생님은 동적인 분으로 보여요. 함께 '여행 동반자'로서는 어떠신지요?(서울에서의 생활 이후 LA에서 정주하시면서 두 분의 '동거' 생활에 대해)

->정확한 관찰입니다. 달라도 너무나 많이 다릅니다. 매일 그 다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의 투쟁이었죠. 그 투쟁의 결과는 무승부이고 결국은 한발씩 양보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협업의 편리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제 아침에 멕시코의 두 부인에게 우리가 43년 동안 어떻게 투쟁해왔는지를 자랑했죠. 그리고 매일 화해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두 분다 그것이 최고의 사랑이다,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싸우고 그다음 키스하라!'고...

다행인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나라밖 여정의 궁극적인 목표가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관광이 아니 수행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루 1만보에서 1만7천보에 이르는 걷기를 즐거움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저는 글을 쓰고 아내는 수행을 하는 것이 상호 존중됩니다.

또한 그 과실을 나누어야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의 여정과 수행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이 있었으니 우리가 얻은 것들을 우리 두 사람만의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먹이를 발견하면 울음으로 동료를 불러 모아 함께 먹는 사슴처럼 사슴의 울음, 즉 녹명(鹿鳴)의 여정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글을 쓰고 아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입니다.

●저희도 선생님처럼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 관심을 넘어 해명하고픈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을 괴테처럼 풍토와 기후로 볼 때도 있고 역사적, 종교적 기원과 맥락으로 짚어볼 때도 있으며, 오늘날 경제상황과 미디어 등의 영향으로 추측, 분석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의 접근법은 대부분 활자화된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두 분은 항상 세상 속으로 가십니다. 사람들 속에 계십니다. 그것도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십니다. 그래서 두 분은 영대 군의 선배감독이 아니실까 합니다.^^ 선생님의 열정과 노고로 전해주시는 지혜로 더 성장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

긴 여행에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고 강건함을 유지하시길 기도합니다. 항상 모티프원의 애독자이며, 모티프원이 헤이리 북스테이로, 글공간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소노스입니다. ^^

앞으로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의 뉴스(newly, noteworthy)도 기대하며 함께 하겠습니다. ^^

항상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저희 여정의 죽비입니다. 앞으로도 이렇듯 경책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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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미국 #멕시코 #녹명 #SONOS #소노스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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