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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온 이유들

134일간의 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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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온 이유들

INTO THE WEST_15 | 134일간의 가출


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2x3.14x6,400)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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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테를지 국립 공원 내에 위치한 미라지 리조트 캠프의 대형 게르에 둥글게 모여 앉았습니다. 서로 마주 앉은 20세에서 74세까지의 30명 대원들 모두는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 유럽의 서쪽 끝까지 41,000km를 함께 달린다는 사실 외에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남미에서 온 교포 한의사, 개조된 캠핑카로 1년째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는 전직 CEO, 40세에 주부로서 삶을 은퇴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유랑하며 살고 있는 예술가, 두 딸의 엄마로 자신을 국한할 수 없어서 호텔리어가 되어 20년 남태평양에서 살다가 돌아와 강원도 산중에서 다섯 남자(?)와 친교 하며 매일을 사색하는 은발의 여성, 대기업에서 대학 강단으로 자리를 옮겨 20여 년 학생을 가르치다 대학 측과 교수 내용으로 갈등하다 자신의 의사에 반해 교수직을 내려놓고 암호화폐로 거부가 된 뒤 손자 손녀와 우정을 쌓고 있는 58세 할아버지, 13년을 각자 독거하다 각자의 집을 나와 이번 여정에서 마주한 부부, 아직 한 학기도 끝내지 않은 새내기 대학생, 다큐멘터리에 인생은 걸고 카메라를 들고 나선 감독,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기를 거부한, 모자와 마스크를 벗은 적 없는 여성...


"평생을 남에게 말을 하고 글을 썼지만 가식적이었다는 생각이 엄습해서 다시 제 자신의 벌거벗은 바닥까지 내려가보고 싶었습니다. 사유를 하면 향기가 나고 사유를 하지 않으면 썩은 냄새가 난다는 말을 여정 동안 화두 삼을 예정입니다. 오늘 몽골로 오는 중에도 귀를 스치는 말이 있었습니다. 강물의 수량이 아무리 많아도 옹달샘의 역할이 있다, 고... 이번에 제 자아를 발가벗겨서 옹달샘의 역할을 찾아볼 예정입니다.“


"저는 7살 푼수로 살기를 결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모두 무죄라고 저 자신에게 기존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주었습니다. 저는 '재미'가 제일이에요. 데이트도 재미가 없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가정도 재미없으면 깨지고 말죠. 직장은 하물며... 하지만 그 재미를 쾌락으로 오해하시면 안 돼요. 이번에 고통도 재미로 누리는 시간을 만들어 볼 예정입니다.“


"제 스스로를 혁명하기 위해 집을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남을 혁명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진행성 신경계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을 앓고 있습니다. 공항입구에서 게이트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염려했어요. 그런데 너무 잘 가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역시 역마살이 꼈구나 생각했어요. 이 테를지 국립공원에 들어와서 버스를 내려 함께 걸어들어왔잖아요. 제게 차 앞에 앉아서 풍경을 보라고 했는데 창밖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차에서 내렸죠. 또 걱정이 되었어요. 여기서부터 저 게르까지 걸을 수 있을까,라고... 그런데 막 뛰어갔어요. 사실 저는 이 같은 고민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어요. 20대 후반에 파킨슨병에 걸리면서 10년 후에는 걸을 수도 없을 거야, 하는 10년 후에다 나를 갖다 놓고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났는데 아닌 거예요. 그래서 그냥 살기로 했어요.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 자매를 만나기 위해 나를 이곳에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먼저 제 병력을 얘기하자면 간경화로 3년을 꼬막 누워만 있었어요. 뒤이어 암 수술 두 번 했습니다. 뇌경색으로 중풍을 맞아서 왼손을 전혀 쓰질 못했습니다. 3일 만에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배에 이렇게 긴 수술 흉터가 남은 이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겁니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은 영원히 가는 거잖아요. 제가 함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돕겠습니다."


"저는 2년 전에 이 여행이 기획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1등으로 신청했습니다. 2년 뒤면 제 아들이 성인이 되는데 엄마로서 제 의무를 완수할 수 있겠다, 싶었죠. 엄마로서 역할을 충분히 잘했으니 이제 나에게 상을 하나 주어야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그 아들이 재수를 하게 된 거예요. 재수하는 아들을 두고 엄마가 자기 보상을 받겠다고 집을 떠나는 것이 좀처럼 용납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와 친숙하게 지냈던 두 분이 안 보이는 거예요. 알고 보니 한 분은 담배도 안 피우시는데 폐암 3기라 요양원에 가셨다고 하고 또 한 분은 갑상선암이 임파선까지 전이되었다고... 뭐든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는 거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가 11살 때 남들처럼 '개미와 베짱이' 얘기를 읽었어요. 교과서에 나왔으니까요. 선생님은 개미처럼 살아야 된다고 말했죠. 그런데 제 생각은 개미와 베짱이가 함께 잘 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생각했던 그 '상생'이라는 것의 싹을 틔우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각자의 얘기를 듣고 보면 가출이 아니라 출가에 가깝습니다. 이들이 각자의 집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는 어떤 모습일지 혹은 무사히 돌아올 수는 있을지, 134일 뒤가 사뭇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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