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덕도 힘이 될 수 있다면...

Ray & Monica's [en route]_61

by motif


멕시코에서의 6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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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의 알테페틀(Altepetl ; 도시국가)이자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이 1521년 황금에 눈이 먼 600여 명의 스페인군(콩키스타도르)을 이끈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에 의해 점령당함으로서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ña, New Spain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 )가 되었다.


아즈텍을 손에 넣은 콩키스타도르는 아즈텍제국의 신전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신전을 묻은 뒤 그 위에 신전의 돌로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멕시코시티의 중앙광장에 우뚝한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탄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de la Ciudad de México)이 그것이다.


테노치티틀란은 원래 호수 위의 도시였고 이들은 호수를 메워 지금의 멕시코시티를 건설함으로써 멕시코시티의 지반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도시 전체의 허약 지반 위 건물들은 곳곳에서 기울어지고 있다. 240여 년에 걸쳐 지어지고 5개의 본당을 가진 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웅장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도 곳곳에 금이 가고 그 틈으로 새가 들락일 정도이다. 신성한 아즈텍제국의 신전이 전복되고 다시 정복자들의 성전이 세워지고 그 성전은 세월을 버거워하고 있다.

1756년~1763년에 걸쳐 벌어진 유럽 열강들의 7년 전쟁이나 양차대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전쟁들... 2차세계대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됨으로 끝이 날 수 있었듯 이 모든 잔혹함은 무엇이 투하되어야 종식될 수 있을까?


원한을 짓는 정복의 시간들. 우리가 자연에 하고 있는 모습들도 콩키스타도르가 아즈텍제국에 했던 야만의 모습과 다른지 않다.


지금까지 60일이 넘는 멕시코 여정에서 억누르기 어려운 슬픔을 참는 시간들이 적지 않았다. 역사를 더듬는 일은 정복과 피정복의 잔혹함을 마주하는 일이며 오랜 시간을 머금은 문명이 정복자들에 의해 한순간에 멸절된 사건을 목도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은 정복으로 섞이면서 혼혈되고 다시 분화된 계급 속에서 하루하루를 감내하며 사는 사람들의 망각이나 비통과 대면하는 일이고 고유함이 사라지거나 손상된 모습을 직면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활기차고 밝은 성격과 여전히 정이 많은 심성은 멕시코를 더 사랑하게 만들거나 더 가슴 아프게 했다.


아침 산책 중에 만난 한 맹인 아주머니와의 얘기 뒤에 생뚱맞은 질문을 드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순박한 멕시코 원주민이 전쟁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였다.


"몇몇 권력자들이 더 큰 권력을 위해,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한 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는 되묻는 방식으로 답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기원전 첫 밀레니엄 동안 이루어진 '보편적 질서'의 개념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화폐 질서와 제국의 질서, 종교의 질서이다. 그가 말하는 '보편적'이라는 것이 모두 '권력'으로 대치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카리브 해 제도에 분포했던 아메리카 원주민, 타이노(Taíno)인은 그들과 처음 접촉했던, 야욕으로 가득 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가 스페인 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조차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감미로운 말을 하며 온유한 성격에 항사 미소 짓는 사람들로 악한 것이 무엇이지 알지 못한다'라고 묘사될 정도였다. 악을 모르는 이는 멸절할 수 밖에 없는가, 그들은 지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힘만이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현존존하는 더 많은 허약한 것들이 함께 멸절되어야 했다. 차별되는 장점과 미덕도 힘이 될 수 있음을 확신케한다.


아즈텍에 침략한 에르난 코르테스 일당이 금에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했던 원주민이 묻자 코르테스가 했다는 "나와 내 동료들은 금으로만 나을 수 있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답변은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현재 더 광범위하게 전염된 병이 되었다.


지푸라기를 쌓아서 호수를 메우고 테노치티틀란를 건설했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지푸라기의 쓸모로 연대해야 하지 않을까.


대립을 부추기는 종교,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 종말을 부르는 성장 일변도의 경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지푸라기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자연의 학대는 줄이고 호혜를 생각하는 절제도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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