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63
오늘 아침에 다시 노크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할머니와 손자가 문밖에 서 있었다. 손자가 접시를 내밀었다.
"어젯밤에 할아버지께서 구운 콘차스(Conchas)입니다."
"아이쿠! 고맙구나. 너는 이렇게 솜씨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니 더욱 행복하겠구나. 그런데 학교에 가지 않고?"
"오늘은 오후에 갑니다."
"(할머니)이 콘차스는 조개 (concha) 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의 우리나라 전통입니다."
할머니의 말은 손자가 통역해 주었다.
"너는 언제부터 영어를 배운 거야?"
"학교에 입학해서부터요."
"참 영리하고 착한 아이구나! 미구엘, 고마워!. 콘차스 잘 먹을게!"
우리가 묵고 있는 이 집은 3세대 6명이 나이가 많은 반려견 한 마리와 살고 있는 대가족입니다. 저희 부부는 가족들과 틈틈이 대화를 나누었다.
67세의 헤수스(Jesus) 할아버지께서는 대학에서 관광을 전공하고 대형 체인호텔에서 근무하다 5년 전에 은퇴하셨다.
"저는 멕시코시티에서 나고 자랐고 직장도 그곳이었죠. 그러나 1985년 그 도시에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1만 명 가까이 사망했고 부상자만 해도 3만여 명이나 되었죠. 그 후 저는 심한 불안감에 휩싸였고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택한 곳이 이 엔세나다입니다. 이곳은 태평양에 면한 휴양지이므로 큰 호텔이 있어서 제 커리어를 살려가는데도 문제가 없었죠. 그래서 초등학생 두 아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주했고 이곳저곳 큰 호텔을 옮겨 다니긴 했지만 호텔 매니저로 줄곧 일했습니다."
멕시코시티는 호수 위에 건설된 테노치티틀란을 중심으로 호수를 메워서 확장한 도시이기 때문에 지반 자체가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할머니 크리스티나(Cristina) 씨는 할아버지 보다 한살이 더 많은 분으로 30년 동안 간호사로 일하다가 은퇴했다.
아들 Luis는 건축을 전공한 뒤 이 시의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며느리 Yareli는 5살 Manuel과 9살 Miguel을 키우고 있다. 두 분은 현재 공무로 스페인에 출장 중이라 나와는 메시지로 소통 중이다.
반려견 Pantina는 13살 된 할머니로 몸 거동도 느려져서 주로 주차장과 정원을 걷는 정도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질문을 하면 여전히 수줍음을 타는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대답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헛갈리는 부분을 바로잡았다.
-이 숙소는 누가 시작하셨나요? 저는 며느님과 주로 소통했기 때문에 당연히 며느님의 계획이었을 거라고 여겼는데 할아버님을 뵈니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제안했어요. 호텔리어였으니까요. 아들과 먼저 상의를 하고 며느리의 동의를 구했죠."
-청소와 시설관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다 하시는군요?
"주로 저희의 몫입니다."
-운동이 따로 필요 없겠습니다?
"맞아요. 제 몸에 성인병 관련 3가지 정도의 위험요소를 진단받았었는데 3년 동안 이렇게 틈틈이 몸을 욺직였더니 훨씬 개선되었습니다. 이제는 별도의 운동을 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럼 이 숙소의 운용으로 생기는 수입은 누구 것이 됩니까? 예약관리를 맞고 있는 며느리의 것입니까 아니면 시설관리와 청소를 하시는 두 분의 몫입니까? 물론 반반씩 나누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기는 합니다만?
"며느리가 모두 가져갑니다. 대신 저희는 건강을 얻지요."
-은퇴하시면 모두가 자유를 기대하지 않습니까?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 그런데 두 분은 일에 매인 상황이라 은퇴자의 자유를 희생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요?
"저희는 이미 많은 곳을 여행했습니다. 평소에도 이 아름다운 바하칼리포르니아 곳곳을 여행했고요. 간간이 유럽도 다녀왔습니다. 내년에는 제가 호텔 현직에서부터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체인호텔의 동료였던 홍콩의 친구를 만나러 홍콩에 갈 예정입니다. 그곳에서 시작해 중국 내륙을 여행하다가 돌아오려고요. 저희 부부가 없을 때는 며느리가 시설관리까지 해냅니다."
3대가 함께 화목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옛 대가족 시절이 생각났다. 할아버지 등위에서 자란 나의 추억은 이제 오래된 기억으로만 남았다. 경제 시스템이 글로벌화된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에서 3대가 함께 사는 일이 불가능할지라도 가정의 화목을 지켜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이다. 사람으로 비롯된 사회문제의 근원을 캐어보면 화목을 잃은 가정인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 '망자의 날', 멕시코 가정과 판테온을 방문했다가 목도한 모습에 한때 그러했던 우리의 과거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할머니·할아버지의 제단에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며 그분들의 사랑을 추억하고 다시 묘비를 찾아 청소하고 장식할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하루를 그곳에서 망자와 보내는 모습은 그 자체가 화목이었다.
커피와 콘차스를 먹다가 우리가 나눌 것이 없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작은 여행자의 가방에 남은 것은 비빔면 하나. 아내가 그것을 들고 1층으로 갔다. 포장지에 영어로 조리법이 쓰여있었으므로 조리를 해주지 않아도 직접 실패 없이 비빔면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누엘과 미구엘은 한동안 한국을 매운 면의 나라라고 기억할지 모르겠다.
●되로 주고 말로 받기
https://blog.naver.com/motif_1/223259917419
●엔세나다 망자를 기념하는 가정집 방문
https://blog.naver.com/motif_1/223255537182
●'망자의 날' 둘째 날, 판테온 방문
https://blog.naver.com/motif_1/22325672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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