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71
창문 아래의 풀벌레는 6시쯤이면 울기 시작한다. 그것은 사위가 어두워졌다는 전갈이기도 하다. 마당으로 나가면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제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밤을 새울 준비를 하는 모습이 선명하고 낮은 담장 너머 산 이그나시오강(San Ignacio river) 바닥을 따라 자란 야자수(palm tree 종려나무)의 훤칠한 키뿐만 아니라 우듬지 부근에 달린 대추야자의 열매들까지 보인다. 은은한 달빛 때문이다. 내 어깨 위의 달빛이 이처럼 부드럽고 포근하기는 오랜만이다.
타향의 오랜 시간이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은 듯 마음이 부유할 때 풀벌레의 울음은 적막보다 위안이다.
이곳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 주 산 이그나시오는 북위 27도의 아열대 사막지대에서 푸른 오아시스지역이다. 이는 '산 프란시스코산맥(Sierra de San Francisco)에서 타고 내려온 물이 이 마을을 통과해 산 이그나시오 라군(Laguna San Ignacio)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6월~9월 사이에 약간의 비가 내리고 10, 11월에 태풍과 폭우가 올 때 물이 흐르는 것 외에는 대부분 건천이다. 하지만 물기를 머금은 넓은 강바닥은 좋은 야자수밭이 된다.
야자수는 2600여 종이나 된다. 대표적인 것이 코코넛(coconut palm)과 대추야자이다. 코코넛은 액체로 이루어진 배젖을 음료로 마시는 큰 열매가 달리는 나무이다.
하지만 이곳 집앞 강바닥에서 숲을 이룬 것은 대추야자이다. 달콤한 열매를 다발로 달고 있는 나무이다.
덥고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자라는 야자수는 코코넛이고 이곳처럼 좀처럼 비가 오지 않는 사막에서 자라는 나무가 대추야자이다. 그러므로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야자수는 모두 대추야자이다. 이 오아시스 마을에서도 대추야자 생산이 중요한 생계수단이다.
프랑스 칸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바로 이 나무의 잎사귀의 디자인이다.
늦은 오후에 대추야자밭이 된 강바닥을 걷다가 옆집 할아버지를 뵈었다. 팔순의 라울 비야비센시오(Raul villavicencio)할아버지는 이 대추야자밭에서 말 핀토(Pinto)를 키우고 있는데 말과 막 산책을 하고 돌아온 할아버지께서 건초와 대추야자 몇 주걱을 퍼서 핀토에게 주고 사료함 뚜껑을 닫으려다가 대추야자 한 움큼을 집어 내게 내민다. 말의 사료를 먹어도 되나 망설이자 할아버지께서 먼저 한 알을 드시고 씨는 강바닥에 뱉었다. 나도 한 알을 씹으니 곶감 맛이다. 말과 할아버지와 나는 대추야자를 나란히 나누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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