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88
새벽이 왔다는 온 동네 닭들의 우렁찬 합창으로 집밖으로 나섰습니다.
호스텔의 마당을 한 바퀴 돌고 골목으로 나갔습니다.
검붉은 먼동이 트고 있습니다.
아직 사람의 기척은 없습니다.
오늘 또 어떤 하루가 우리 앞에 펼쳐질 지 설렙니다.
어제 우리는 La Paz를 떠나 Todos Santos로 왔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머리위로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몇 초간 눈을 감아야했습니다.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의 남쪽,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끝을 알 수 없는 태평양의 바다, 그 바다에 접한 긴 해안, 그리고 그 해안으로 불쑥 머리를 내민 바위산들입니다.
그렇지만 이곳이 좋다고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사탕수수와 망고농사를 짓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만 은둔하기 위해 하나둘 이곳으로 모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황량한 이 아열대의 땅을 오아시스로 만들었습니다.
신비로운 기운에 이끌려 들어간, 돌아앉은 건물에서 수행자처럼 앉아 있는 한 여성, Kiki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작은 마법 크리스털 파우치'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키키가 가게 문을 닫아야할 시간까지 긴 얘기를 나누었죠.
그녀는 미국 나파벨리에서 태어나 포도농장을 하는 아버지가 한 사냥꾼이 실수로 쏜 총에 맞아 돌아가시자 엄마와 산타바바라로 이사해 자연 속에서 살았습니다.
성인이 되어 여행길 인도에 갔다가 수행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몇 년 전 이곳에 들려 한 달을 살다가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마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배우면서 탐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모래먼지가 펄펄 날리는 길을 걸어 호스텔에 도착했습니다.
호스텔을 관리하는 Jack은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이곳이 얼마나 멋진 동네인지를 말하는데 결코 시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잭은 우리가 예약한 숙소로 바로 데려가는 대신 호스텔 전체를 구석구석 안내해주었습니다.
모래땅위에 떨어진 과일을 두어 개 주어서 씻은 다음 우리에게 하나씩 내밀고 자신도 입에 넣었습니다.
"Guava야. 먹어봐. 정말 달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과일이지. 이것은 망고 나무고 이것들이 구아바나무야. 망고는 제철이 아니라 지금 떨어진 열매가 없지만 구아바는 지금 지천이야. 이것만 주어먹어도 허기는 면할 수 있을걸!"
밤에 호스텔 로비로 갔습니다.
각국에서 온 사람들 사이에서 주인, Jacopo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6개월은 이곳에서, 나머지 6개월은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부부가 두 자녀와 함께 제왕나비처럼 사는 얘기를 밤늦도록 들었습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오자 구아바 향이 가득합니다.
방안에 둔 구아바 두어 개의 향이 이렇게 짙은 줄 몰랐습니다.
아직 아내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어젯밤 잠든 중에 앓는 소리가 났습니다.
아마 배낭을 끌고 긴 비포장도로를 오느라 살짝 몸살이 온 것 같기도 합니다.
이곳 바하칼리포르니아(Baja California)의 중ᐧ남부지역에 살았던 원주민은 코치미(Cochimí)족이었습니다.
지금은 식민지화와 과정에서 멸종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가능하면 사냥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삶았답니다.
이 사막에서 동물을 쫒느라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채집과 비교적 사냥보다는 쉬운 물고기를 잡아서 생존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죠.
저희도 코치미족의 삶의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에너지 소비로 살아가는 방식. 그러나 그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의 연금으로는 턱도 없는 물가, 지고 끌어야하는 이동 방식에서 에너지를 아낄 수 없는 형편이죠.
코치미족처럼 사라지지 않고 10년간, 수양의 만행이 계속될 수 있도록 에너지 조절을 잘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기도하지만 아내의 생일이기도합니다.
이번에는 큰딸이 통 큰 기부를 했습니다.
"엄마 생신 축하드려용. 작은 마음을 표현하고자 30만원 보낼게요. 두 분 꼭 맛있는 저녁 꼭꼭 하세요."
오늘은 이 딸이 채워준 지갑을 가지고, 우리 형편에 예약할 수 없었던 'Hotel California'에 들려 레스토랑의 차라도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이곳 읍내에는 Eagles의 노래 'Hotel California'의 영감의 소재가 되었다는 동명의 호텔이 있습니다.
Eagles의 밴드 멤버들은 노래의 영감이 특정 호텔보다는 일반적인 캘리포니아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호텔이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케 했던 그 노래와 관련이 없다고 한들 그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자신들을 꿈꾸게 했던 상상의 장소와 만나는 설렘과 일치시켜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사이 날이 완전히 밝았습니다. 밖으로 나가 카나리아야자나무에 매놓은 거물침대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하늘같은 아내가 생각났습니다.
방으로 들어와 키스로 아내를 깨웠습니다.
"Happy Birthday to You!"
아내가 눈을 떴습니다.
평소 한 번도 보지 못한 남편의 행동에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또 다른 해먹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본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 이곳에서 집하나 빌려서 살면 안 될까요?"
나는 아침에 잠시 얘기를 나누었던 대화를 들려주면서 완곡하게 아내가 생각을 바꾸도록 권했습니다.
"이곳에서 봉사로 숙식을 제공받고 있는 호주의 Adelaide에서온 Isobel은 코스타리카에서 Landscape designer로 5년간 일하다 번아웃이 와서 이곳에서 3개월째 머물고 있다는군. 이곳이 너무나 좋다는 거야. 언제까지 머물 거냐고 물었더니 곧 떠날 거래. 이곳이 좋지만 새로운 곳으로. 내 생각에 천국은 어떤 특정한 곳이 아니라 '새로운 곳'이 아닌가 싶어.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익숙해지면 곧 평범해지거든. 우리의 애초결심처럼 우리의 천국은 'on the road'인 것 같아."
Hotel California가사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This could be heaven or this could be hell(여기가 천국일 수도 있고 지옥일 수도 있지)"
결국 천국이나 지옥은 특정한 곳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관념인 것이죠.
우리는 지난 9개월 동안 수많은 경이로운 자연과 눈물겨운 사연들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천국으로 여기는 '길 위'에서 만났으므로 모두가 천국의 일들이죠.
우리가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접할 수 없었던 화장을 지운 세계였습니다.
그것은 경이로움이었고 신비였으며 마법이었습니다.
채워서 행복을 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덜어내서 균형을 맞출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막의 텅 빈 아름다움 속에서 삶을 일구는 사람들은 어둠속에서 더욱 찬란한 별처럼 서로 품과 마음을 합치고 있었습니다.
애틋한 형편이 너덜지대의 붉은 화산암처럼 가득하지만 결코 영혼이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기꺼이 별빛 같은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애틋함에도 눈 맞추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처럼 살겠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나'로 살겠습니다.
더불어 '당신'의 편으로 살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되겠습니다.
변함없이 모티프원을 아껴주시고 저희의 여정에 기쁨으로 함께하며 용기를 주신 모든 분들께 뜨거운 가슴으로 감사 올립니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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