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89
크리스마스이브인 오늘 아침, Todos Santos Hostel에서 발런티어로 일하고 있는 Isobel과 크리스마스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곳에서는 사실, 크리스마스 날보다 이브인 오늘이 크리스마스라고 할 수 있어. 즐거운 일은 오늘 모두 일어나거든. 선물을 주는 것도, 파티를 하는 것도 오늘 밤에 해. 오늘밤 우리도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 거야. 꼭 와야 해!"
오늘 아침은 아내가 스스로 된장미역국을 끓이고 며칠 전에 담근 김치와 그제 La Paz 시장에서 내가 선물한 호박꽃을 쪄서 아침상을 차렸다. 그때 주방으로 이소벨이 들어왔다.
"이것은 김치고 이것은 된장미역국이야. 발효음식이라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원한다면 맛을 볼래?"
그녀는 밥을 말아서 김치를 올린 다음 한국식으로 먹었다. 엄지척을 몇 번 했다.
"나는 정말 한국음식을 좋아해. 냉장고에 한국 고추장이 있는데 좀 줄까?"
어제 냉장고 속에서 '한국 고추장'을 발견했을 때 혹시 한국 사람이 이 호스텔에 묵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던 차였다. 그 고추장의 주인이 한국인이 아니라 호주 사람, 이소벨이었던 거다. 그녀는 새로운 도시에 가면 한국 식품점이 있는지부터 검색할 만큼 이제 한국 음식 마니아가 되었다고 했다.
그때 베네수엘라에서 온 레이루가 들어왔다. 그녀는 항공사들과 협업으로 항공권을 활용한 여행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잠시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고 있다고 했다. 7년 전 항공사와의 협업을 위해 한국을 방문해 1달 동안 서울에 머물렀을 때 많은 한국 음식을 맛보았다고 했다. 특히 호떡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김치와 미역된장국을 권했다. 금방 한 그릇을 비우고 7년 만에 김치를 맛볼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했다. 한국 음식도 세계화되어 서양인에게도 김치와 된장까지 부담 없이 수용되고 있다.
아름다운 해변, Punta Lobos를 트레킹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곳은 히치하이크가 보편적이야. 그러니 어디를 오갈 때 손만 들면 태워주어. 어떤 때는 산책을 위해 걷고 있는데 차를 세우고 태워줄까 묻기도 해."
어제 우리에게 들려준 Jack의 말을 바로 실천해 보고 싶었다. 호스텔문을 나서자마자 다가오는 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두 번째 차가 우리 앞에 멈추어주었다. 청년이었다.
"우리는 해변으로 가려고 하는데 혹시 가까운 어디까지 함께 갈 수 있을까?"
"물론이지. 타!"
그는 차를 산을 향해 돌렸다.
"우리는 해변으로 가고 싶은데..."
"아, 저 산 너머에 해변이 있어. 우리 집은 바로 이곳인데 너를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데려다줄게."
우리가 그의 차를 세운 것은 그의 목적지 100m 정도 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기꺼이 비포장 산길을 4km쯤 오가는 수고를 자처했다.
우리를 내려준 곳은 우리가 결코 기대하지 않았던 경이로운 곳이었다. 선인장들도 온 몸이 마른 사막 언덕 아래로 아득하게 태평양이 펼쳐졌습니다. 그 언덕에 레스토랑, El Mirador Ocean View Restaurant이 있었다. 우리는 언덕의 가장 가장자리 좌석에 않았다.
태평양 너머 동해와 닿아있을 바다가 가슴으로 밀려들어왔다. 은빛 물결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수평선에 꽂힌 우리의 시선을 떼게 만든 것은 건너편 난간 좌석의 두 분이었다.
"저기 고래 좀 보세요!"
은빛 물결 위로 고래가 꼬리를 드러냈다.
"오, 저기도 보세요."
그녀의 손끝에서는 또 다른 고래가 물보라를 뿜고 있었다.
"저곳 하늘을 보세요!"
"독수리 몇 마리가 언덕 아래에서 올라오는 상승기류를 타고 선회하고 있었다."
감격에 겨워하는 부부와 오랫동안 말을 섞었다. LA에서 사는 두 분은 일주일간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해 어제 이곳에 왔다고 했다. 결혼 13년차인 그들은 이곳이 7번째 방문이라고 했다.
"이곳이 그렇게 좋다면 이곳을 구입하는 것은 어때요?"
부인은 정색을 하며 말을 받았다.
"아니요. 이곳이 아니라 저 산을 사고 싶어요. 살 수 있다면... 전 이곳 바다와 바람과 햇살에서 각별한 느낌이 들어요. 마치 내 내면과 맞닿는 것 같아요. 저희는 유카탄의 세노테(Cenote)에서 물속 결혼식을 했어요."
그녀가 보여주는 수중결혼식은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여러 해 동안 아이를 갖기 위해 무척 노력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최근 그것이 다행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사실 LA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많은 공력이 필요한지 몰라요. 만약 아이가 있었다면 우리 두 사람의 이런 시간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녀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헤어를 담당하는 헤어드레서로 일하고 있었다.
"아이 없이 두 사람이 열심히 일하면 충분히 저 언덕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10년 뒤 아니면 20년 뒤 은퇴하면 이곳에 와서 살 예정입니다. 우리가 LA에서 열심히 일하는 이유에요. 그곳에서 돈을 벌어 여기서 노후를 보내면 정말 삶의 질이 달라질 거예요."
"자금 관리는 누가 하시나요?"
"사실 우리는 각자 벌어서 각자 써요. 이런 여행 비용은 남편의 돈을 사용하지요. 내 돈은 내 것, 남편의 돈도 내 것이 원칙입니다. 가정은 '행복=부인'이에요. 모든 것을 부인에게 맡겨야죠."
"그럼 '행복=남편'은 불가능한가요? 언제나 '행복=여성'이어야 되나요?"
"아니요. '행복=남편'도 아니고 '행복=여성'도 아니에요. '행복=부인'이에요."
"혹시 남편에게 다른 여자라도?"
"아니에요. 적어도 나와 결혼 이후에는 아니에요."
부인은 자연과의 합일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가 대중교통과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한다는 것을 알고 말했다.
"다음번 어는 도로에서 당신 부부를 만나면 손을 들지 않아도 우리가 태워드릴게요."
우리는 사막 트레일을 걸어서 태평양의 해변으로 향했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트레일은 사람이 다니기 곤란한 험로였다. 선인장 가시들이 발을 파고 들었다.
가까이서 본 Punta Lobos의 바다는 언덕 위 멀리서 본 바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끊임없이 큰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으르렁대며 다가왔다. "이곳의 파도는 늘 서퍼를 쉬지 못하게 하는 파도이거든." 평생 서핑에 빠져 살아온 호스텔 주인 'Jacopo'가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 중의 하나였다. 누구에게는 무서운 파도가 그에게는 이상향의 이유였다.
해변을 걸어 어두워지기 전에 이 바다와 사막을 벗어나야 했다. 바닷가 카페, El Faro Beach를 찾아온 차 한 대가 다가왔다. 엄지 손가락을 세워들었다.
"어디로 갈 거야?"
"당신이 가는데 어느 곳이나..."
"타!"
영국에서 3주간의 휴가를 온 커플이었다.
그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가겠다, 고했다.
호스텔에서는 이소벨과 레이루를 비롯한 모든 스텝들이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로 바빴다. 자코포는 우리 부부에게 맥주까지 선물해 주었다. 크리스마스이브는 잠들지 못한 채 크리스마스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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