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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an 15. 2024

여행자 부녀와 동행한 2박 4일 430km

Ray & Monica's [en route]_101


불가능했던 꿈을 깨운 부녀

  


대중교통이 없는 구간을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고민은 토도스 산토스를 떠나기 하루 전날 우연히 풀렸다.     

3일간을 묵은 숙소에서 부녀 여행자를 만났다. 그들은 2주간의 일정으로 멕시코시티에서 온 여행자였다. 노년의 아버지와 장년의 딸이 함께하는 여행. Morris와 Arianna Savariego를 만나는 순간부터 이 부녀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 끌림은 이루지 못한 꿈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대한 무의식적인 동경 같은 것이었다.     

첫딸을 얻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그것은 기쁨 이상의 것이었다. 기쁨에 더해진 것은 일종의 설렘이었다. 아내를 만나고 꿈꾸어온 오랜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 그것은 언젠가 아이를 얻게 되면 아버지가 아니라 그들의 친구가 되리라,는 바람이었다. 매일 그들의 놀이 파트너가 되어주고 놀다가 배가 고프면 아이가 원하는 곳으로 가서 함께 식사를 하고 그들이 커서 고민이 생길 때가 되면 며칠간 함께 여행하면서 그 고민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되는 꿈. 그러나 그 꿈은 나의 마음 뿐,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나는 직장에서 매일 퇴근하는 것조차 못했다. 한 달에 반은 출장이었고 또 다른 일주일은 사무실에서 밤을 새웠다. 아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이 아빠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기적이라고 딸의 총기를 칭찬하는 것으로 나를 안타까워했다. 둘째를 낳고는 아내조차 일에 매이는 처지가 되어서 아이들은 고향의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그 모리스 부녀를 보자 잊혔던 그 미제 사건이 되살아 난 것 같은 감정이 휘몰아쳤다. 저녁에 재회할 때마다 말을 붙였다.     

"오늘은 어디를 가셨었나요?"

"무엇을 드셨나요?"

"무슨 얘기를 하셨어요?"     

그 질문들은 오랫동안 고요하고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내가 딸과 여행하면서 하고팠던 과거의 무산된 꿈을 깨우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UNAM : 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의 연극과 교수였고 딸은 심리학을 전공하고 기관에서 미술치료를 수행하고 있었다. 딸은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아버지가 오랫동안 여자친구로 인생을 동행해온 여성으로부터 얻은 유일한 핏줄이었다. 세 사람 모두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 부녀의 여행은 누가 계획하셨나요?"

"함께 했지요."

"14일간이나 나눌 얘기들이 많이 쌓여있나요?"

"아니요. 미루어둔 특별한 얘기는 없어요. 매일 그날의 얘기를 하지요. 당신이 이미 물었던,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무엇을 먹을까, 하는..."     

우리가 떠나기 하루 전날 저녁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부녀를 만났다.     

"내일 우리는 떠납니다. 당신 부녀의 아름다운 여행 모습은 내게 불가능했던 꿈이 아직 나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남은 여행도 즐거우시길..."

"우리도 내일 떠나요."

"어디로 가시나요?"

"카보산루카스, 산호세델카보..."     

작별 인사로 시작된 대화의 결론은 내일 아침 9시 함께 떠나는 것이었다. 우리는 2박 4일간 430km가 넘는 거리의 로스카보스를 같은 차로 함께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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