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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an 16. 2024

달달한 정주

Ray & Monica's [en route]_102


김밥 파티

 

라파스에 정착한지 보름이 됐다. 바하캘리포르니아반도를 종단할 동안의 시간은 아내에게 좀 가혹한 여정이었다. 매일 혹은 이틀마다 짐을 꾸려야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지치는 일이다.     

정주는 예측 불가능한 날들에서 예측 가능한 날로의 전환이다. 짐을 꾸리지 않아도 되는 날들을 통해 새로운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 가고 있다. 거실 앞에서 햇살을 마주하고 23도℃의 기온 속에서 한참의 시간을 할애한다. 마음대로 사용하라, 고 한 집주인 Oxnar의 자전거를 타고 인근 마켓으로 가 장을 본다. 이제 어디를 가면 동양 식자재 가 많고 그중에서도 어디를 가야 더 저렴한지를 절로 알게 되었다. 시장 가방을 풀어 푸성귀를 다듬고 나온 자투리 푸른 잎으로 닭을 먹인다. 천천히 준비한 식사로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는 것으로 오전이 흐른다.     

오후는 대중이 없다. 책을 읽다가 빨래를 하기도 하고 골목 산책을 가기도 한다. 그 산책길에서 만난 식재료로 간혹 별식 만들기에 도전을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족발을 만들어보았고 갈비찜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이런 별식을 만들 때는 꼭 오사나르가 불려온다. 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남다를 뿐 아니라 무엇이든 맛있게 먹는 그의 식성도 강팔진 것과는 거리가 먼 그의 성격을 닮은 듯해서 부르는 마음도 편하다.     

"한국말에 '먹는 음식이 그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어. 그러니 이렇게 자주 한국 음식을 먹으면 너는 점점 더 한국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럼 지금쯤 한국인과 멕시코인의 50:50이 되겠군요."

"지금은 그렇지만 곧 60:40이 될 날이 올 수도 있어."     

옥사나르의 한국 사람 만들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그도 우리 부부가 지역의 고유한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나라도 더 라파스의 것을 알려주려고 애쓴다. 얘기 중에 불쑥 맥주가 먹고 싶다고 데카테 오리지날 맥주 (Tecate Original)를 사가지고 와서 왜 자신이 데카테 오리지날만 고집하는지를 알려 주기고 하고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참푸라도(Champurrado) 끓이는 법을 옥사나르 스타일로 알려주기도 한다.     

그제는 두어 번 김밥을 맛보았던 옥사나르가 친구들과의 김밥 파티를 제안했다. 오늘의 그 파티를 위해 어제는 아직 김치를 먹어보지 못했다는 친구들을 위해 김치를 담그느라 부산했다. 오늘은 아침 8시에 문을 여는 마켓에 옥스나르와 가서 김밥 재료와 감자전 재료를 사 왔다. 그동안 구할 방법이 없는 단무지를 뺀 김밥만을 만들다가 친구들에게는 단무지 없는 김밥을 대접할 수 없다며 직접 단무지를 만들기로 했다. 식초와 설탕, 소금을 넣고 무를 길게 썰어 담갔다. 색을 내기 위해 비트 몇 조각을 넣었다.      

파티에 초대된 친구들은 전직 권투선수 Huber, 배달전문식당 Casa Dome을 운영하는 요리사 Diego, 인권학 석사과정 중인 Gustavo, 멕시코시티까지 불려 다니는 DJ, Frida. 모두들 함께 김밥을 직접 싸 보고 직접 잘라도 보았다. 다음에는 혼자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불태우며 김밥을 즐겼다. 옥사나르가 채썬 감자로 감자전을 만들었다. 김밥과 감자전만으로 한나절이 즐거운 문화나눔이다. 아내는 한식당이 없는 라파스의 김밥전도사가 되었다. 김밥은 머지않아 Casa Dome의 메뉴로 오를 것 같다.      


#라파스 #김밥파티 #멕시코여행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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