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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an 17. 2024

남자의 가장 큰 인생 리스크

Ray & Monica's [en route]_103

청춘의 무게     

해가 바뀐 지 보름이 지났다. 나이를 헤아리는 단순한 방식으로 올해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빼어보니 67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아내는 내 숫자에서 3을 빼야 하니 64가 될 것이다.      

사실 나는 거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다. 만나는 사람이 다양하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의 또래가 되어 그와 함께 가고 있는 기분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10대가 되었다가 어느 때는 20대가 되기도 하고 30대가 되기도 한다. 자주 2,30대로 돌아간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주로 그들이고 바닥까지 마음을 뒤집어 보여주는 이들도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얘기에 빠져 있다가 내 자리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으면 다시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2,30대가 지고 있는 버거운 짐들에 함께 짓눌리는 아픔에서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나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금에 와 있으니 너희들도 그렇게 아픈 게 당연한 거야, 라고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기 때문이다.      

숙소 주인 Oxnar는 술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우리 부부와 얘기 중 어떤 날에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편의점 OXXO로 가서 맥주를 사가지고 온다. 그런 날에는 참았던 말들을 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선 밤이다. 그의 유장한 32년 인생이 풀려나오는 날이다.     

"사실 저는 이미 4곳의 대학에 입학했었어요. 라파스에서 2곳, 메히칼리(Mexicali)에서 2곳. 하지만 아직 한 군데도 졸업하지 못했죠. 수의학 전공으로 입학해서 더 좋은 대학을 찾아서 가다 보니 메히칼리까지 가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이가 생겼죠. 그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릴 수 없었어요. 공부보다 아이의 양육비를 버는 것이 더 화급해졌습니다. 버거킹에 취직해서 독하게 일을 했죠. 다른 사람이 모두 퇴근한 밤에도 모든 조리기구를 닦고 청소하면서 새벽까지 일했습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4시간쯤 눈을 붙이고 학교로 가야 했어요. 두어 번 차를 갈아타야 하는 먼 거리를 오가야 하는 일이 점차 불가능해졌고요. 그렇게 일해도 아이의 분유와 기저귀 값을 충당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어요. 저의 치열한 생활을 지켜본 사람의 소개로 버거킹보다 임금을 더 주는 약국 근무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문제는 다시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겁니다. 두 아이를 얻었어요. 약국의 매니저가 되어 주급도 올랐지만 전 여자친구의 아이와 새 여자친구의 두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더 분투해야 했죠. 그래서 차량을 구입해 야간에는 DiDi 앱의 음식 배달 일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야를 일하기에는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다른 시도를 해야 했어요. 헤어드레서였던 아이 엄마와 상의해 집의 일부를 헤어살롱으로 만들기로 했죠. 저 홀로 열심히 매달려 집의 구조변경을 하고 인테리어도 마쳤습니다. 아이 엄마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아이를 맡았습니다. 다행히 미용실은 영업이 잘 되었습니다. 저도 육아에 익숙해져가고 있었죠. 어느 날 아이 엄마가 제게 심각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이 집을 나가 주었으면 좋겠어!'"     

그는 그렇게 10년간의 메히칼리 생활을 마치고 라파스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엄마의 도움을 받아 이곳 생활에 적응해하고 있지만 과거의 족적이 그를 번민케 한다. 메히칼리에 남겨진 세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매주 송금해야 하는 양육비가 그것이다. 때때로 아이와의 통화조차도 막아버리는 첫 여자친구의 갈피 잡을 수 없는 마음도 걱정이다.      

"첫째 여자 친구에게 잘못했잖아."

"물론, 제가 나쁜 남자죠."     

그는 자신의 죗값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는 결단코 몸과 마음을 모두 혁신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매일 운동을 한다.

-새로운 사업을 일구어 내 식구들을 책임질 수 있는 수입구조를 만든다.

-비즈니스 역량을 키우기 위해 비즈니스스쿨에 들어가 공부를 병행한다.     

이 세 가지 결심을 듣고 최선을 다해 격려했다.      

"그래. 너는 겨우 32살이잖아.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은 아팠던 것조차도 너무나 값진 공부였어. 대학을 마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졸업장보다 귀한 경험을 한 거야. 너희 세대는 우리보다 수명이 두 배로 늘어날 수도 있어. 그럼 앞으로 전성기로 살아야 할 날들이 훨씬 늘어나는 셈인데 지금까지의 그런 경험들은 모두 그 긴 시간을 살아내는데 부닥칠 판단들을 더 현명하게 하는데 큰 자산이 될 거야."

"저도 그렇게 믿어요. 하지만 여전히 가장 위험한 장애물이 있죠."

"너의 의지로 불가능한 거야?"

"그럴 수도요."

"너의 굳은 의지로도 넘을 수 없는 허들은 도대체 뭐야?"

"여자죠!"     

우리는 폭소로 밤의 정적을 깼다. 놀란 수탉이 함께 울었다.      

아내가 정색을 하고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 문제를 해결할 비법을 알려줄 테니 실천할 거야?"

"물론이죠. 그렇게 할게요!"

"내일 당장 병원으로 가! 그리고 잘라!"

"정관수술이요?"

"그 방법이 너의 의지와 관계없이 누군가가 네 아이를 임신하는 것을 막는 최선이지 않겠어?"

"네~ 자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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