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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an 18. 2024

수술로도 불가능한 치유

Ray & Monica's [en route]_104


남자의 우울     

     

●아래의 글은 전편의 후속 글입니다.

-남자의 가장 큰 인생 리스크

https://blog.naver.com/motif_1/223325024670     



어젯밤 숙소 주인 Oxnar와의 인생 얘기 중에 새해에 스스로를 혁신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실천 중이지만 여전히 한 가지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것은 '여성'이었다.     

이미 두 여성으로부터 세 아이를 둔 32살의 청년에게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여성 일방의 결정으로 아이를 낳는 문제를 방지할 방법으로 아내는 '정관수술'을 제안했다. “내일 당장 병원에 가라!”라고 했을 때 그는 너무나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아내가 즉흥적으로 정관절제술을 말한 것은 진지한 제안이라기보다 '여성은 조심할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 농담 어법이었다. 당연히 그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해 “네!”라고 대답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오전 내내 옥사나르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몇 번이나 정원을 오갔을 부지런한 그였지만 단지 반려견 까니(Cani)만 주인 없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 거실 앞을 떠나지 않았다.     

까니에게 “네 주인 어디 갔는지 아니?”라고 물어도 세차게 꼬리를 흔들고 “어디 갔는지 몰라?”라고 반문해도 똑같이 꼬리를 흔들었다. 까니에게 옥사나르의 행방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는 없었다.     

오후에도 옥사나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병원 간 것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설마”로 눌렀다.     

마침내 저녁에 옥사나르가 나타났다.     

"안녕! 안수, 민지!"

"너 오늘 병원 갔었던 거 아니지?"

"예! 병원 갔었어요."

"정말? 수술하러 간 거야?"

"아니요! 헌혈하러 갔어요."

"깜짝 놀랐다. 어제 말한 그 수술하러 간 줄 알고..."

"그 수술은 캠페인이 시작되면 할 거예요. 그때는 무료이거든요."

"그 수술은 즉흥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도 알지? 스스로에게 꼭 필요한 수단인가도 숙고해 보아야 하고 가족들과도 상의해 볼 문제야."

"물론이죠. 엄마와도 상의하고 동생과도 상의하고 지금은 헤어진 새로운 여자친구와도 상의했었어요."     

그제야 우리 부부도 안도가 되었다. 그가 즉흥적으로 답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 병원을 방문했던 이유인 헌혈은 수술을 앞둔 어머니 친구의 수혈을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멕시코에서는 정관수술이 무료야?"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요. 캠페인이 있는 달이 있어요. 그때는 무료예요."

"멕시코는 여전히 산아제한이 필요한가 보구나. 한국에서도 1970, 80년대 산아제한 캠페인으로 남자가 그 수술을 하면 수술비 무료에 아파트입주추첨우선대상에 넣어주거나 예비군동원훈련을 면제해 주기도 했지. 나도 예비군 훈련 갔다가 수술을 받고 3일간의 예비군 훈련을 면제받았었거든. 그렇지만 지금은 출산장려정책을 펴고 있지만 효과가 그다지 없어."

"저는 올해 새로운 캠페인 공고를 기다려보려고요."     

그는 오늘 많이 우울해했다. 전 여자친구 얘기가 나왔을 때는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그의 침울은 2잔의 차를 연거푸 마시고도 진정되지 못했다.     

그가 스스로 자신 인생의 가장 큰 리스크라고 했던 '여자'라는 과제는 정관수술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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