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tif Jan 23. 2024

"안수와 민지도 부자인가요?"

Ray & Monica's [en route]_108

여행의 혁명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은 여행자들에게도 혁명적인 변화를 주었다.     

1980년대 부터 여행을 직업적으로 해온 나에게는 그 변화의 정도를 단계마다 체감해왔다. 80연대 로컬 취재를 나가면 지역 관공서 관광부서에서 기본 자료를 얻어야 했고 사실 검증을 위해서 국립중앙도서관을 찾곤 했다. 개별 해외여행 중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곳을 가기 위해서는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의 영문판을 참고해야 했다. 이 가이드북은 숙식 정보를 비롯한 웬만한 오지까지 객관적인 일반 정보는 물론, 가장 잘 업데이트된 최신 정보를 제공했다. 이 책 한 권을 배낭에 담고 있으면 거의 모든 것이 안심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지역 지도는 그 지역에 가지 않는 이상 구할 수가 없었다. 낯선 곳에 도착해 그 지역의 지도를 손에 넣으면 마침내 안심이었다.     

정보를 얻기 위한 국제전화나 한국의 가족들에게 안부라도 전하려면 엄청난 국제전화비를 감당해야 했으므로 무소식이 희소식을 가족들이 감내해야 했다. 예약을 위해서는 일일이 전화를 하거나 현지에서 발품을 팔아야 했다. 나의 언어 도구는 영어와 약간의 일어와 중국어 정도. 이 언어권 밖의 지역에서는 소통이 난망했다. 여행경비는 현금 소지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여행자수표를 사용하곤 했는데 현지 은행에서 여행자수표를 처리하는 곳이 제한적이라 난감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현재의 정보통신기술은 이 모든 장애를 완전히 제거해버렸다. 이제 세계를 탐험하는데 필요한 것은 관심분야, 호기심, 용기와 감수성이면 충분하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두 해결이다.     

실시간 정보들로 넘쳐난다. 어디에서나 여행을 계획하고 예약하는 것은 물론, 어디에서나 변경할 수 있다. 여행 목적지의 지역 정보는 여행 가이드북으로 얻는 낡은 정보가 아니라 수많은 실시간 정보를 활용함으로써 헛걸음의 염려가 없어졌다. 나는 불특정 다수의 소셜 미디어 정보를 부분적으로 활용하지만 개인화된 검정된 정보를 얻기 위해 그동안 길 위에서 대면했던 사람들과의 소통을 활용한다.     

우리에게 귀신고래에 대한 경이로운 사실들을 알려주었던 귀신고래 전문가, San Ignacio Laguna의 Jerry는 이번 시즌 귀신고래의 첫 도착을 알려주었다.     

"Hi Ansoo, the season is starting to get busy. The first whales are in the lagoon. The first baby was born about one week ago. I hope that your adventure through Baja gives you many great experiences. You are very good people and you deserve it. Saludos desde Laguna San Ignacio!"     

Loreto에서 만났던 Corinne은 우리보다 앞서 가면서 현지에서가 아니면 취득하기 곤란한 모든 정보를 기꺼이 알려준다.     

"I have a lot more information if you need and I also have friends, who traveled the whole Barrancas with el chepe express, if you need more information on that train too. I also have made a couple of new friends along the way, two men who work on the train if you need more details, I can ask them too. You are very welcome, I am more than happy to share what I have figured out so far because I know that information is hard to find."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의 전시를 개막하고 유카탄주로 간 재능 있는 예술가 Oliver는 그곳의 형편을 알려준다.     

"I decided to live permanently in Mérida. I never thought I'd find a perfect place with a combination of a calm environment, options to grow as an artist, and proximity to the beach and nature."     

툴룸에서 1년을 살겠다고 간 Paul 도 그곳의 사진을 보내주며 격려합니다.     

"Hi my friend Ansoo, How is everything going ? I saw you compete the Baja journey. I believe you have millions of stories to tell. Wondering where is your next stop guys, Regards from Tulum"     

이렇듯 길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 식구가 되고 내가 길의 방을 가늠하고 있을 때 기꺼이 나의 나침판이 되어준다.     

여행 비용에 대한 기준도 바로 알 수 있으므로 바가지 요금에 대해 대처가 가능하다. 그러나 여행자의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다. 언어 지능 연구 센터 Ethnologue(언어를 식별하고, 언어가 사용되는 지역을 특정하고, 언어 사용 인구 추정치를 얻는 등의 작업 진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의 사용 언어는 약 7,168개 이며 안타깝게도 이중 40%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사용자 1천 명 미만의 경우가 대부분)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단 23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https://www.ethnologue.com/insights/how-many-languages/     

무료 온라인 언어 번역 서비스인 구글번역앱은 108개 언어의 번역이 가능하고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23개 언어만으로도 지구 인구 절반 이상과 소통이 가능한 상황에서 이 앱이 깔린 스마트폰을 소지하는 것만으로 108개 언어를 구사하는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음성뿐만 아니라 텍스트, 이미지, Word 문서 및 PDF를 포함한 다양한 파일 형식까지 번역해 주고 있으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의 대화모드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바벨탑을 쌓는 인간의 오만으로 받았던 오랜 불통의 징벌은 형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디지털 지도와 지도의 내비게이션 기능은 길을 잃을 염려를 없애주었다. 누구나 어디서나 언덕 너머, 혹은 수평선 너머의 상황을 단번에 알 수 있는 신의 눈을 갖게 되었다.     

통신을 무제한 무료로 사용 가능한 상황에서 지구 어디에서나 영상통화로 가족들과 소통이 가능하고 Zoom, Google Meet, Microsoft Teams 같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팀 업무도 가능하다.     

우리는 안전 확보의 일환으로 매일 행선지와 매일의 상황을 가족단톡에 알린다. 더불어 영상통화로 가족 개인과 전체에 관한 내용을 나눈다. 지구 반대편에 있으면서 오히려 서울에 함께 살고 있는 이상의 소통을 하고 있는 편이다.     

그제는 한국의 아들과 영상통화 중에 숙소 주인 옥스나르가 방문했다. 비슷한 또래의 두 사람을 즉시 소개해 주었다. 아들은 서울의 상황을 말했고 옥스나르는 La Paz의 상황을 말하면서 서로 돕고 협력하기로 했다. 아들과의 통화를 마친 오스나르가 말했다.     

"제 외할머님은 25년 전부터 LA에서 살고 계세요. 집이 코리아타운 인근이라 코리아타운의 상황과 한인 이민자의 사정을 비교적 잘 알고 계시는 분이죠. 휴가차 이곳을 방문하셨을 때 말씀하시더라고요. '한국의 큰 부자는 이민자가 아니라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안수와 민지도 부자인가요?"     

그에게 확실하게 말해주었다.     

"그래 맞아. 우리는 부자야. 우리는 매월 받는 적은 연금으로 여행하기 때문에 매월 빠듯하지. 모자라는 돈은 대출을 받아야 하니 돈을 기준 삼는다면 오히려 빈자에 속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세계의 어느 곳에도 갈 수 있는 용기가 있고 아직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호기심 부자이지. 그리고 세계 각국에 친구가 있어. 당신 같은 청년부터 경험 많은 어르신들까지. 그러니 우리는 친구 부자인 셈이다."     

검색엔진을 네이버에서 구글로 바꾸었을 때 마치 지구에서 우주로 나간 느낌이었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챗GPT가 이 모든 것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제는 왜 여행하는가, 하는 각 개인의 관심에 집중하면 된다.     

나의 관심은 그곳의 '사람'이다. 그 지역의 사람이 어떤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가, 하는 것이고 그가 현재의 그 사람이 되게 만든 지역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환경'이다.     

이 모든 것은 현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상호작용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오픈 마인드와 개인의 품성이다. 더불어 안전에 대한 방비이다. 이 본질적인 것 외에는 모두 스마트폰에 맡기면 된다.     

이틀 전에는 첫딸의 생일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관심뿐이다. 아내와 나는 카톡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엽서를 써서 이미지로 만들어 보냈다. 이제는 디지털 만능에서 디지털을 도구로 삼되 가능하면 아날로그 감성을 추구하려고 애써고 있다. 이민자들의 역이민 추세처럼 우주를 한 바뀌 돌아보니 결국 지구가 그립더라는 정도의 마음이랄까...     

"오늘은 나리가 태어난 멋진 날. 나리가 우리 집에 태어나 주어 고마워. 엄마 아빠가 정성을 다해 축하엽서를 준비했다. 즐겨다오!"     

딸이 화답했다.     

"우와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오늘은 엄마가 제일 고생하고 아빠가 마음 졸인 날이지요. 엄마 고마워. 아빠 고마워요 ��"     

     



Happy Birthday! 나리~     


엄마 아빠의 첫 작품이라 안전하게 좀 작게 만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큰 기둥 역할을 너무나 잘 해주어서 고마워.     

변함없이 우리 가족의 미래를 담는 맏이라는 큰 그릇으로

엄마와 아빠의 안심이 되어주어서 또한 고마워.     

가정이 우리 모두의 안온한 자리가 되도록

맥락과 통찰을 가진 맏이의 역할을 해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아빠 엄마가 해외의 문화와 문명,

그 속 사람의 생각과 삶을 탐사하는 것으로 눈길을 돌린 뒤,

네 역할을 더 커졌다.     

또한 소수의 제거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극인으로

걸어온 네 발걸음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리는 여전히 실마리로서 위치와 역할에 변함이 없구나.

편집된 사실 속에서도 진실을 읽어내는 나리가 있어서 든든하구나.     

앞으로도

행간을 읽는 능력,

사리를 분별하는 통찰,

말하지 못한 것을 느끼는 감수성,

관계를 꽃 피우는 배려,

지친 자에게 손 내미는 도리,

궂은 일에 먼저 당도하는 경우

를 기대한다.     

올해는 성찰의 시간이 더 할애되는 해가 되길 바란다.

다시 한번, 나리의 생일을 축하해!

_2024년 1월 20일, 멕시코 평화의 도시 La Paz에서 엄마 아빠   


  



#세계여행 #멕시코여행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세계일주 #모티프원

작가의 이전글 어떻게 하면 은퇴가 저 노을처럼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