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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Feb 23. 2024

특별한 아침 식단

Ray & Monica's [en route]_123


과식     



2003년 6월, 케이프 코드Cape Cod 끝, 프로빈스타운 Provincetown을 걷고 있었다.     

삶의 다른 챕터를 시작하기 위해 도요새가 태평양을 날아 다른 대륙에 당도하듯 나는 북미에서 날개를 접었다.     

그러나 도요새와는 달리 여전히 내 삶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방학은 금방 다가왔고 나는 기숙사를 반납했다. 그리고 배낭 하나만을 남기고 모든 책장과 옷장 속 짐을 캐리어에 담아 지인의 집 지하로 옮기고 동부로 떠났다.     

미시간를 떠나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를 지나고 뉴욕과 코네티컷을 지나 매사추세츠의 프로빈스타운에 당도하자 방학의 반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떠날 수 없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마누엘 추모비와 필그림 상륙기념비, 모래언덕과 바람, 어부와 요리사, 화랑과 화가, 부자와 방랑자, 게이와 레즈비언... 그 모든 것이 뒤섞인 혼돈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그들처럼 바다와 골목을 방황하는 사이, 허허롭던 가슴에 언제,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씨앗 하나가 싹이 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노부부가 복슬복슬한 흰 털 개의 목줄을 잡고 걷고 있었다. 눈이 어두운 노인을 인도하는 개가 얼마나 대견해 보였던지... 노인에게 다가가 반려견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인사를 건넸다. 노부부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 말에 동의했다.     

"맞아요.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이 녀석은 교통사고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아직은 우리 부부가 이 녀석의 눈이 되어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죠."     

___     

프로빈스타운은 메리 올리버가 50년을 산 곳이다. 2019년 1월, 메리 올리버의 부고 기사를 접했다. 그녀가 1964년부터 2014년까지 여러 주민들 중의 한 사람으로 소박하게 산 커머셜 스트리트 동쪽 끝을 생각했다. 프로빈스타운의 숲과 연못과 햇살이 생생했다.     

며칠 전 SONOS 선생님께서 내일 아침에는 우리 모두 "아침에는 빵 대신 시”를 먹으면 어떨까요? ^^라며 -<ADVICE TO BEGINNERS>, Ellen Kort 시를 보내주셨다.     

'아침에는 빵 대신 시'의 사연을 읽은, 미국의 eylee2011선생님께서 새로운 아침 식단을 제안해 주셨다.     

"우연한 기회에 Mary Oliver라는 미국시인의 시낭독을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부터 다녔지만 미국의 문학을 아직도 많이 몰랐는데 이분의 시는 참으로 위로가되고 자연 속으로 돌아가 그 일부가되게하는 치유의 힘이 있었습니다. 기회 되시면 한번 아침식사로 드셔보셔요."     

아침식단으로 제안을 주신 메리 올리버 시들을 생각하면서 '개를 위한 노래' 속 털북숭이 친구들처럼 함께 골목을 산책하던 노부부의 기억이 선명해졌다.  

___

Dear motif1     

선생님, 안녕하세요.

정말 아름다운 울림입니다.

그리고 다시 울림이 돌아왔습니다.

내일 아침에 드실 시를 또 구워 보냅니다.^^     

"여리디 여린 아침이여, 안녕

오늘 넌 내 가슴에

무얼 해 줄까

그리고 내 가슴은 얼마나 많은 꿈을 견디고 무너질까     

오, 여리디 여린 아침이여, 내 어찌 이걸 깰까?

내 어찌 달팽이들을, 꽃들을 떠날까?

내 어찌 다시 내성적이고 야심찬 삶을 이어갈까?"     

저희가 분주한 일상과 일로부터 잠시 자유로워지기 위해

동네에서 가까우나 시골마을처럼 오붓한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립니다.

책을 한 권 들고 가서 커피 한 잔과 함께 푹 빠지는 시간이지요.

어느 날은 카페에 있는 시집 한 권을 들고 와서 읽는데,

그 시가, 에세이가 온 몸에 와 닿았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 책은 바로 Mary Oliver, <Long life : Ecology and other writing>이었습니다.

얼른 가방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 마음에 닿는 문장을 놓칠 세라

받아 적었습니다. 오감으로 파고 들었던 시와 문장이 어디로 달아나는 듯 해서요.

선생님께서 소개해 주신 인스타그램에서

메리 올리버를 소개해 주는 글을 읽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겠지요.^^

사진은 그때 했던 메모입니다.

선생님의 녹명의 여정이 이렇게 아름답게 울리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Dear SONOS     

선생님의 메모지, 그 속의 필체.

그리고 Long life : Ecology and other writing

에 절박해진 마음...     

그것이 지금의 모습인 양 선명합니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여우꼬리야자나무처럼

경탄스러운 아름다움입니다.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루틴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시 한 편의 식사.     

아내는 이 새로운 결심에 너무나 빠진 나머지

첫날부터 과식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

다른 한편의 낭독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참 다행인 것은 이 시의 식사는 아무리 과식을 해도 체중이 느는 것도 아니고

혈당 수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게는 죽비를 쥐고 흔들리는 저를 꾸짖어 주시는 세분의 작가가 계십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스콧 니어링

메리 올리버     

앞으로 엘렌 코트의 시도 저희의 아침 식탁에 더 자주 오를 것이 분명합니다.

선생님께서 마치 팟럭 파티 (potluck party)에 오신 것처럼

한마음 가득 양손에 들고 오신 '초심자에게 주는 조언'은

아침 식탁뿐만 아니라 길 위에서 끼니를 놓친 시간에도

자주 비상식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죽는 법을 배워 두라'를 오물거리다가

또 어떤 때는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되라'는 것을 씹으면서

주저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재촉할 것입니다.

내일 아침식사는 '초심자에게 주는 조언'의 영어 원문으로 할 예정입니다.

특히 시의 원문은 마음에 닿는 감정이 전혀 다르니까요.     

이렇게 저희 식탁을 빛나고 설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은 빵 대신 시

https://blog.naver.com/motif_1/223358661176 

●풀잎 한 줄기의 자매로 살다가...

https://blog.naver.com/motif_1/222700475092    


  

#엘렌코트 #메리올리버 #프로빈스타운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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