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tif Mar 05. 2024

절벽 끝에서

Ray & Monica's [en route]_128


라파스의 일몰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를 종주한 뒤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주의 주도인 라파스Pa Paz로 돌아와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의 체류가 길어지고 있는 것은 Oxnar라는 한 청년과의 인연 때문이다. 아들 또래의 이 청년을 처음 보는 순간, 끌림이 일었다. 그것은 순수 같기도 하고 절망 같기도 했다.     

그를 알아가면서 놀라운 반전이 이어졌다. 32살 그에게 3명의 자녀가 있었고 세 명의 아이들은 결혼하지 않은 채 헤어진 두 여자친구로부터 얻었으며 자녀의 양육비 송금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딸의 엄마인 전 여자친구와는 양육비 문제로 연락이 단절되었고 딸과의 전화 통화조차도 불가한 상황이었다. 딸의 열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딸이 있는 곳으로 1,400km를 날아갔지만 철망 대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에어비앤비 자영업으로 3명의 자녀 양육비를 송금하는 일은 32살의 그에게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일을 하다가도 멀리 있는 딸과 아들 생각에 수시로 아득해진다. 페어런트십Parentship에 대한 고민 없이 20대 초와 중반에 얻는 세 아이는 두 엄마들이 양육하고 있다. 두 여자친구와 헤어짐으로써 여자친구와의 사랑은 식었지만 나이가 들 수록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부정은 더욱 강해지면서 아이들과 자주 만날 수 없는 상황은 그를 점점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 심리적 고통을 홀로 감당하기 어려워 작년부터 심리상담사의 조력을 받고 있다. 심리상담사를 만나고 온 날은 더욱 마음이 다운되는 모습이다. 지난주에는 심리상담사가 제시한 방법대로 자신의 심리적 고통을 가하는 요소들을 적은 다음 그것을 파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심리치료는 계속되고 있다.     

그는 스스로 더 강해지는 방법으로 운동에 몰두하고 있다. 피트니스와 사이클링이다. 일이 바빠도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해변 말레콘Malecon의 자전거도로를 따라 14km쯤을 달리던 그는 지난달부터 라파스의 뒷산인 Cerro Atravesado의 트레일 코스로 바꾸었다. 12km쯤으로 거리는 줄었지만 산악비포장 도로이기때문에 훨씬 에너지가 필요한 코스이다.     

그제는 그 산을 우리 부부와 함께 걸어 올랐다. 이 트레일은 산악자전거 코스뿐만 아니라 하이킹, 러닝 등 라파스 시민들의 운동코스이다. 이곳은 라파스 도심과 말레콘 해변 너머의 사구 반도인 Peninsula El Mogot 및 해안선을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을 제공한다. 눈길을 반대로 돌리면 아름다운 산맥 Sierra de las Cacachilas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오르는 가장 좋은 시간은 해질녘이다. 사막산의 선인장 군락을 따라 걷다 보면 시시각각 고도가 변하면서 각기 다른 풍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침내 해가 바다를 건너 지평 끝에 당도한 몇 분간은 탄성하거나 탄식케한다. 발걸음은 절로 멈추어지고 수십 년 그곳에 있었던 한 그루의 선인장으로 변한다. 그 순간 내면은 삽시간에 불태워지고만다. 불길이 어둠에 짓눌려 사그라지고 가식의 잿더미 속에서 불길을 견딘 진실을 수습해 보려고 애쓴다.     

옥스나르는 절벽의 바위 끝에 앉아서 어둠이 짙어질수록 라파스의 도심이 더욱 밝아지는 야경을 내려 보았다.     


#CerroAtravesado #라파스 #멕시코여행 #세계일주 #모티프원

작가의 이전글 "행복에 지쳐 쓰러지기는 처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