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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Mar 13. 2024

한국 엄마들의 특이한 식성

Ray & Monica's [en route]_130

아내의 도전과 식탁 위의 마음 나눔     



여행자로 살아가는 기본 소양은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두려움보다 호기심을 먼저 가지는 면에서 어느 정도 소양은 가진 셈이다. 아내는 그렇지는 못하지만 안심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화친의 속도가 빠른 편이라 함께 안전을 고려한 관계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도반이다.     

두려움이 극복되었다면 낯선 곳에서 누릴 거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없는 동네에서도 지루할 틈이 없다. 골목 자체를 삶의 박물관으로 바라보면 어느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아내는 그렇지는 못하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할 거리를 찾아낸다.     

2달이 넘는 동안 한 곳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아내는 요리에 점점 진심이 되어가고 있다. 주방이 있는 곳에서 머물다 보니 가능해진 거리였다. 또한 길 위에서 제한된 현지 음식만 먹다 보니 평생 혀가 기억하고 있는 한식에 대한 그리움도 짙어졌다.     

부엌을 보고 먼저 한 일은 찰기 있는 쌀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비교적 쉬웠다. 이곳에 한식집은 없어도 일식집이 있는 만큼 초밥용 쌀을 파는 곳이 있었다. 쌀밥으로 배를 불린 다음으로는 김치 재료를 구하는 것이었다. 미국 LA에서는 한인마트가 많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김치용 한국 배추, Napa cabbage는 이곳 여러 마트를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다. 라파스에서는 여러 개의 가게를 가진 Aramburo라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드디어 몇 포기를 발견했다. 이곳에서도 Napa cabbage라고 불리는 것으로 보아 미국 나파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수입한 것인지를 점원에게 물었지만 그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떤 날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남은 한 포기가 일주일째 안 팔린 채 시들고 있을 때도 있었다. 우리가 라파스에 오기 전에도 이 배추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중국요리의 만두속이나 볶음요리로 적은 수요가 있었던 것 같다.     

음식재료 수입상을 찾아냄으로써 마침내 Kikkoman 일본간장, Fish Sauce라는 태국 멸치액젓, 중국 고춧가루까지 구할 수 있었다. 이로써 아내는 한국에서도 직접 담지 않았던 김치를 수시로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아내는 점점 폭을 넓혀 김밥, 잡채, 각종 전은 물론, 볶음과 탕, 족발을 직접 만드는 것까지 도전했다.       

우리 부부의 하루 두 끼 식사에 늘 숙소 주인 옥스나르와 함께했다. 수저 하나만 더 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옥스나르는 아내가 차려내는 어떤 종류의 한식도 맛있게 먹었다. 심지어 전에 김치를 부리토처럼 말아서 먹을 만큼 김치를 좋아했다.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이 식구이니 두 달 너머 같은 식탁을 나눈 옥스나르는 이미 정서적으로  한식구이다시피했다.      

한식에 대한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진 아내는 로컬 식재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지역의 물가가 저렴한 것은 아니지만 방목하는 소가 많고 큰 바다가 있는 곳이다 보니 육류와 어류가 신선하고 싸다.      

지난 주에는 티본스테이크를 구웠다. 이빨이 약한 나는 뼈 부위는 아내에게 건넨다. 칼로는 살을 발라내기 곤란하기 때문에 작은 살집이라도 붙은 뼈는 늘 아내 접시로 건네진다. 그 광경을 본 옥스나르가 수상쩍은 시선을 보냈다.     

"한국의 엄마들은 살코기보다 뼈 부분을 좋아해."     

참 이상한 일이다, 싶은 표정으로 "민지, 내 뼈 부분도 드릴까요?"라고 말했다. 아내가 웃으며 사양했다.     

한 식탁 사용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옥스나르가 싫어하는 것들도 알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사과를 껍질째 먹지만 그는 껍질을 싫어했다. 우리는 병아리콩Garbanzo를 삶아두었다가 먹곤 했지만 그는 입에 대지 않았다.     

오늘은 새우 샐러드를 만들었고 땅콩 대신 병아리콩을 넣었다. 옥스나르 접시에도 콩 몇 개를 야채에 넣었다. 식탁에 앉은 아내는 자신의 접시 위 새우 두어 마리를 옥스나르 포크로 그의 접시로 옮겨주었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내가 설명을 곁들였다.         

"한국의 엄마들은 생선에서 머리를 더 좋아해. 그런데 새우는 몸체만 있으니 싫은가 봐!"     

생선머리는 또 무슨 맛일까 싶은 표정이다. 평소 접시에 음식을 남기지 않는 우리의 습관을 잘 지켰던 그가 양배추 줄기를 남겼다. 병아리콩은 왜 싫어하고 양배추 줄기는 왜 먹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병아리콩은 입속에서의 질감이 싫고 양배추 줄기는 쓴맛이 나요."     

늘 멀리 있는 세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그에게 쓴 말을 건넸다.     

"넌 아직 완전히 아버지가 된 것 같지는 않구나. 쓴 것도 좋아질 때 비로소 아버지가 되는 거란다. 모든 아이들은 단 것과 살코기를 좋아하지. 70여 년 전 한국에서는 전쟁으로 먹을 것이 부족했었어. 가난한 부모들도 아이들은 키워야 했으니 먹을 것이 생기면 늘 아이들을 먼저 챙겨야 했지. 고기가 생기면 살코기보다 뼈를 좋아한다고, 생선이 생기면 생선 뱃살보다 머리를 더 좋아한다고, 단 것이 생기면 쓴 것을 더 좋아한다고 사실과 다른 말을 하면서 아이들을 먼저 먹였던 거야."     

옥스나르가 다시 남겼던 양배추 줄기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그것은 고기 뼈와 생선 머리를 좋아하는 특이한 식성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부모의 사랑에 관한 얘기군요."     

#한식탁을나누는누구나식구 #食口 #부모되기 #라파스 #멕시코여행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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