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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Mar 14. 2024

30살 여성의 여행자로 7년 살기

Ray & Monica's [en route]_131


대로의 공연자

     

그동안 한 번도 ATM 머신에서 돈을 내 주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던 내 신용카드가 더 이상 현금을 내어주지 않았다. 기계는 '미안하다'라는 말을 찍은 메시지만 출력해 줄 뿐 그 원인이 무엇이지를 표시해 주지 않았다. 은행 직원은 '당신의 거래은행으로 연락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잔고는 아직 있을 텐데 월현금인출한도액의 제한 때문인가?"     

아내는 덜컥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멕시코는 City Club La Paz 같은 대형 창고형 매장에서 조차 카드 지불과 현금지불에 차등 가격을 적용할 만큼 여전히 현금을 선호하는 곳이다. 동네의 작은 가게나 식당에서는 대부분 현금만을 받는다.     

카드 지불이 가능한 대형마트로 가는 길의 대로 중앙에서 스톱 사인 동안 짧은 공연을 하고 운전자의 기부를 받는 젊은 남녀가 보였다. 사거리의 모퉁이에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면 즉시 거리의 중앙으로 달려가 남자는 퍼커션을 연주하고 여성은 훌라후프를 돌리다가 직진 신호로 바뀌기 전에 공연을 멈추고 운전자들에게 뛰어가 기부를 받는다.     

"우리가 통장의 잔고 없이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면 현지에서 무엇을 하며 경비를 벌 수 있을까?"     

아내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적절한 벌이가 생각나지 않았다. 저들처럼 거리공연을 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장을 보고 되돌아 올 때에는 공연이 중단되었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음료 한 병을 사서 돌아왔고 남성은 반려견에게 물을 주었다. 검은 모자 속에는 한 움큼의 동전과 지패 몇 장이 담겨있었다. 문득 그들이 궁금해졌다. 벽에 기대어 앉아 음료를 마시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나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이다. 너희들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

"물론이다. 우리도 여행자이다."     

나도 바로 그들 앞 인도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나는 안수라고 해!"

"(여) 나는 Lany라고 해."

"(남) 나는 Geovanni이고 한살된 반려견은 Cora야."     

래니는 미국 노던 캘리포니아Northern California에서 온 사람으로 7년째 여행 중인 30살의 여행자였고 조바니는 멕시코시티에서 온 31살의 여행자로 집을 떠난 지 5년째라고 했다. 조바니의 스페인어는 래니가 영어로 통역해 주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흥분     

"두 사람은 언제 어디서 만났어?

"아마 한 달쯤 되었을 걸. 이곳, 라파스에서."

"이렇게 함께 일을 하기 위해 만난 거야?"

"그런 셈이지. 때로는 함께 하고 때로는 각자의 일을 해."

"7년간의 여행이라면 좀 긴 편이잖아. 어디를 여행했어?"

"멕시코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나머지는 중미 몇 나라를 다녔지."

"남미는?"

"올 7월에 콜롬비아로 갈 예정이야."

"그곳에 가면 얼마나 있을 예정인데?"

"몰라."

"여행은 언제 끝낼 예정이고?"

"몰라."

"지금 30살이니 넌 23살에 여행을 떠난 거 맞지?"

"그렇지."

"여행을 떠난 계기가 있었어?"

"단지 여행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여행을 해보니 무엇이 좋아?"

"모든 것이 좋아."

"길 위의 생활이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겠지. 하지만 그런 것들조차 좋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야?"

"지역 사람들, 그곳의 장소, 그리고 그곳의 음식...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다는 흥분이 좋아. 매번 새로운 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여행하고 싶은 곳에서 일하는 자유     

"여행경비는 어떻게 조달하는 거야."

"바로 이렇게. 그것이 길거리 공연을 하는 이유야."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해?"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일주일에 며칠이나 거리로 나와?"

"거의 매일"

"그럼 여행은 언제 해?"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싶을 때 그곳으로 가서 이렇게 일을 하는 거야. 그러니가 나는 내가 가고 싶은 어느 곳이나 갈 수 있고 내가 가는 곳이 곧 일터이기도 하지."

"기발한 생각이군. 그 새로운 여행지에서 그날 필요한 만큼만의 돈을 벌고 네 삶을 사는 거..."     

●보스가 없는 일을 찾아서     

"훌라후프 공연과 저글링 말고도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 예컨대 여행하고 싶은 곳에서의 식당일 같은?"

"그렇지만 난 보스가 있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럼 관리자가 있는 일을 해본 적이 있어?"

"캘리포니아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했었어."

"이 거리공연은 당신을 통제하는 이가 없는 완전한 자율과 자유를 위한 선택인 거군?"

"맞아. 바로 그거야."

"이 공연 기예는 어떻게 배운 거야?"

"거리에서 배웠어. 공연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고 그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어."

"차도 위의 공연은 위험하지 않아? 그리고 매연도 그렇고..."

"사실이야. 그렇지만 내가 그걸 어떻게 하겠어!"     

●모험은 위험을 감수할 만한 것     

"조바니는 왜 여행하는 삶을 택했어?"

"새로운 곳을 알고 싶었고 알고 싶은 곳을 방문하고 싶었어."

"하지만 여행은 많은 불편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잖아?"

"그것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모험이야. 난 모험이 좋아."

"언제까지 이 모험의 삶을 살 거야?"

"그건 나도 몰라."

"오직 신만이 알 수 있겠군.     

●연인 아닌 친구     

"두 사람은 혹시 함께 살아?"

"아니. 절대 아님. 조바니는 도심의 친구 집에 살고 나는 이 근처에서 월세로 살고 있어. 우리는 때때로 함께 일을 할 뿐이야."

"두 사람은 연인은 아니라는 거지. 래니는 남자친구 있어?"

"아니. 절대 없음."

"조바니는 여자친구 있어?"

"없어."

"그럼 래니와 사귀고 싶지는 않아?"

"(조바니)여자친구 삼고 싶지."

"그럼, 뭔가 선심을 써야 할 텐데. 새들도 짝짓기를 원하는 수놈은 물고기를 잡아서 암놈에게 가져다 바치곤 하거든? 래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야?"

"(래니) 아니야. 난 남자친구를 원하지 않아."

"래니. 조바니에게 희망을 갖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는 거야?"

"(래니)아니. 우리는 그냥 친구로 만족해."     

●Enjoy your life!     

"두 사람이 함께 일하는 장점은 뭐야?"

"리듬이 있으니 훌라후프나 저글링에 내 춤을 넣을 수 있어. 조바니는 아프로 퍼커션(Afro percussion) 연주자 거든."

"수입은 나누어야 하니 더 오랜 시간 일해야 하는 거 아니야?"

"때에 따라 달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일하는 것은 함께할 작업의 재료를 사기 위해서야."

"무슨 일?"

"우리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거든. 이번에는 벽화를 그리려고 하는데 페인트를 사려고."

"어디에 그릴 건데?"

"다리 아래에 그라피티Graffiti작업을 하려고 해. 그래서 에어로졸 페인트aerosol paint를 사야 해서."

"긴 여행에서도 지치지 않고 어떻게 하루를 이렇게 에너지 가득한 삶을 살 수 있어?"

"(래니) 지금 존재하지 않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 하루에 집중하면서 감사할 거리를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자유로워야 하고 오늘 이 순간이 행복해야 해."

"(조바니) 매일 나를 응원하지. "힘내! 힘내! 힘내! 조바니~" 하면서..."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때?"

"(래니) 가족들은 트리니티 카운티Trinity county에 살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내가 전화를 해.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내 삶을 살아야 하고 그들은 그곳에서 그들의 삶을 살아야 하잖아. 부모님은 늘 이렇게 말해. 'Enjoy your life!'. 이렇게 떨어져 살고 있으니 가족들을 더 사랑하게되. 그리고 간혹 만나는 그 순간이 너무나 좋고 감사해. 가족을 방문한지 벌써 1년이 지났군. 그렇지만 사과는 사과나무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지는 것은 아니듯 결국 내가 어디에 있건 가족이라는 사과나무 아래에 있게 될 거야 ."     


#여행자로7년살기 #라파스 #멕시코여행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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