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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Mar 17. 2024

11일간의 암 환자

Ray & Monica's [en route]_132


그렇다면 당신은...     



지난 주 초(3월 5일) 늦은 저녁,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중에 갑자기 허리가 심하게 아팠다. 그 통증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부위의 경험해 보지 못한 강도였다.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웅크리고 거실에서 빙빙 돌았다. 어떤 몸짓을 해도 통증은 그대로였다. 그 괴물은 10여 분 뒤에 절로 사라졌다. 다음날, 아내에게 그 증상을 말했다. 몇 가지 원인이 될만한 것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혐의를 둘 만한 일이 없었다. 우리는 척추와 그 주변의 퇴행성 변화 때문이 아닐까, 싶은 정도의 열린 결말로 대화를 끝냈다.     

3일 뒤 자정이 넘은 시간, 그 녀석이 다시 찾아와 막 잠든 나를 깨웠다. 침대에서 통증으로 뒤척이다 일어나 오른쪽 허리를 움켜쥐고 방바닥을 걸었다. 그제야 허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갈비뼈 아래 배가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 통증의 강도는 첫 번째의 그것보다는 약했지만 이마에 진땀이 날 정도였다. 갈증을 느낀 나는 덩달아 잠이 깬 아내에게 물 한 모금을 부탁했다. 반컵을 마시자 바로 속이 메슥거렸다. 화장실로 가 게우려고 했지만 점액만 올라오고 끝났다. 이 통증은 아침까지 계속되다가 절로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부터 우리는 이 통증의 원인을 찾다가 대장암의 신호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통증 부위에 존재하는 장기가 대장이고 여행하는 1년 동안 체중이 5kg이 줄었으며 대장암 발병이 높은 연령이라는 등, 우리는 함께 그 증상을 대장암으로 몰고 갔다. 아내는 급기야 혈변을 찾겠다고 배변 후 물을 내리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그날 이후 우리는 '죽음'과 '사별'의 당사자가 되어있었다.     

아내는 무시로 눈이 충혈되었고 여러 가지를 질문했다. 그중의 하나는 홀로 되었을 때 어떻게 살까, 하는 것이었다.     

"두문불출하고 글을 쓸 거야. 이렇게 세상을 주유하면서 만난 경험들을 삭여서 삶과 죽음을 계속 탐구하겠지. 그리고 한두 번은 숲을 걷겠지. 당신과 함께인 것 처럼..."     

아내는 "인연을 끊고 홀로 수행하겠다."라고 했다. 한때 출가를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따라 죽겠다,는 말이 철회되어서 다행이었다. 함께 죽을 필요는 없다, 는 결론이 나고 보니 어떻게 좋은 죽음을 맞을 것인가가 과제였다.     

그것은 쉽고도 어려웠다. 한 때 염두에 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스콧 니어링의 죽음이다. 그는 스스로 곡기를 끊는 방식으로 마치 내일을 맞듯 삶의 다른 장으로 넘어갔다.     

다음날 저녁 옥스나르에게 말했다.     

"암이 의심되는 증상이 발견되었어. 어디에서 진료를 받아보면 좋을까? 이것은 내가 여행을 계속해야할 지, 한국으로 되돌아가야 할지에 관한 문제야."     

"그럴 리가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갔던 그가 다음날 아침 일찍 문을 두드렸다.      

"엄마가 진료실에서 지금 기다리고 계세요. 우버를 불러놓았으니 빨리 가세요!"     

옥스나르 어머니, Jacqueline이 진료실 앞에 줄을 서고 있다가 나를 의사 앞에 앉혔다. 의사는 여러 질문을 한 다음 구충제를 마지막으로 먹은 때가 언제인지를 묻고 구충제 처방을 한 다음, 혈액과 소변, 분변검사를 요청했다. 재클린과 함께 병리실험실을 방문했다. 그 결과를 가지고 오늘 다시 그 의사를 방문했다.     

"모든 검사결과는 양호합니다. 빈혈도 없고, 혈소판도 괜찮고, 감염의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신장도 괜찮습니다. 당뇨병도 없습니다. 현재 대장에도 아무런 장애나 질병이 없습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위해서는 종양에서 발생한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으므로 내시경 검사를 수행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결과를 받기 전까지 지난 일주일은 격랑이 지난 뒤의 바다처럼 마음이 가볍고 고요했다. 금생에 남은 삶의 시간이 단지 몇 개월에 불과하다는 판정이 이루어지더라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감사한 마음만 안고 떠날 수 있겠다, 싶었다.     

첫째, 더 이상 정리할 것이 남지 않았다. 지난해 모티프원을 떠나면서 단지 내 옷가지와 컴퓨터만을 챙겼다. 책을 비롯한 그곳에 남은 모든 것은 모티프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 공부를 위한 레퍼런스일 뿐 내 소유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 임시로 머물렀던 아내의 소박한 셋집에 남은 것도 아내의 짐과 함께 몇 개의 박스에 담겨 다락으로 옮겨짐으로써 그 방도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박스 속의 것들도 아내와 나의 추억에 관한 것일 뿐,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둘째, 아이들 모두 자립할 나이가 되었다. 두 딸은 물론 막내인 아들도 학업을 마치고 자신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모두 결혼은 안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각자 삶의 선택과 방식, 태도의 문제이지 부모가 간섭하거나 걱정할 대상은 아니다.     

셋째, 뒤에 남을 부모가 계시지 않는다. 부모보다 먼저 떠나는 것이라면 부모 가슴에 큰 상심을 안기는 경우일 것이다. 오히려 죽음이라는 것이 그리운 사람과의 재회에 대한 기대라면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넷째, 해보고 싶은 것을 미룬 것은 없다. 각기 다른 문화와 문명을 순례하면서 살고 싶었던 10여 년을 모두 채우진 못했지만 적어도 실행했고 그 과정의 길 위에서 죽는 일이니 흡족한 일이다.     

다섯째, 여의치 못한 형편으로 여러 해를 떨어져살았던 아내와도 밀도 있게 함께 사는 1년을 이미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안 에두아르도Juan Eduardo 박사의 '암이 아니다'라는 판정은 내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들렸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     

●근력감소와 노련함

https://blog.naver.com/motif_1/222552372393

●존엄한 죽음을 위한 준비

https://blog.naver.com/motif_1/220935011294

●이제 내 것이라고 여길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https://blog.naver.com/motif_1/223093143920

●아내의 출가선언

https://blog.naver.com/motif_1/30086476742     


#어떻게살것인가 #대장암 #라파스 #멕시코여행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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