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관
각자가 꿈꾸는 새로운 이상을 향해 북진
INTO THE WEST_25 | 통관
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2x3.14x6,400)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자동차의 통관은 모스크바를 향한 출발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수시로 대원들의 단톡을 통해서 공지 사항이 전달됩니다.
"오늘 통관이 되면 늦더라도 우수리스크로 이동합니다. 모두 숙소에 자기 짐들을 잘 챙겨두시고 차주분들은 로비에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행여 통관이 안될 경우에 대비해 숙소는 하루 더 연장해 둔 상태입니다."
몇 시간 뒤 새로운 공지가 올랐습니다.
"안타깝지만 통관이 하루 더 지연되었습니다. 차량검수는 끝났고 서류작업 절차만 남아 내일은 가능할 것 같다는 확인을 받았습니다."
통관대행사로부터 전달받은 공지사항은 대원 모두의 기대를 하루, 하루씩 배반했습니다. 그에 따라 호텔 체류는 하루 하루 연장되었습니다.
나는 4층 루프탑 방의 천창 아래에서 시간을 즐겼습니다. 아침 안개로 자욱했다가 햇살이 번지면 어느새 푸른 하늘이 모습을 보입니다. 때때로 빗방울이 떨어져 급히 천창을 닫아야 하기도 합니다. 천창 하나만으로 소통하는 땅과 하늘 그 사이의 단순화된 시간을 통해 소박한 충만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천창 아래에 있을 때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지난 시간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며 오직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온 시간에서 자유로워진, 그러나 병마가 찾아와 다시 스스로를 한정된 시공간에 가두고 사시는 분의 메시지였습니다.
"눈 떠서 빛이 들어오는 공간에서 아침을 맞고 싶은 발원으로 살고 있어요."
그분이 희망하는 공간의 사진의 사진도 함께 보냈습니다. 그 사진은 내가 현재 묶고 있는 루프탑 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일깨워주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동쪽 종착역, 블라디보스토크역으로 갔습니다. 내가 이 자동차시베리아육로행단을 결행하지 않았다면 분명 시베리아횡단열차티켓을 들고 들어갔을 플랫폼에서 서성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알 수없는 아쉬운 마음이 나를 아래층 철길로 이끌었습니다. 철길을 바라보며 감격해하는 내 마음을 읽었은던지 역무원이 내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혁명광장 맞은편 언덕길에서 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만났습니다. 그는 철길 너머의 콘크리트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를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작품인가요?"
"맞아요. 어젯밤에 그린 거예요."
그는 밤에 그린 작품을 낮에 방문해 아카이빙하고 있었습니다.
"왜 밤에 작업하나요?"
"사실 이 작업은 불법으로 취급되거든요."
"왜 이런 작업을 하지요?"
"저 작품에서 위의 허트와 아래의 구름 속에 두 촛불이 보이나요. 우리 가슴속의 온유함과 꺼지지 않는 창조성을 표현하고 있어요."
이 도시에 대형 작품을 비롯해 여러 그래피티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공지가 올랐습니다.
"통관이 완료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5일 만이었습니다. 호텔 앞에 모든 짐들을 배정된 차량 번호 별로 정리해두고 41,000km, 우리와 고락을 함께할 자동차를 맞았습니다. 비록 오후였지만 우리는 지체된 일정을 당겨야 하므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났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가지가 뒤쪽으로 멀어질 때 블라디보스토크역 맞은편에 서있는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이 생각났습니다.
닷새 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던 첫날 동상을 지나치면서 오른팔을 들어 검지가 가리키고 있는 모습에 대해 물었습니다.
"저 손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요?"
누군가가 답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이상향이 아닐까요?"
그가 꾸었던 이상향의 꿈은 몰락했지만 우리는 각자가 꿈꾸는 새로운 이상을 향해 북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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