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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May 19. 2024

멕시코와 미국에서 72년을 살아보니...

Ray & Monica's [en route]_156


멕시칸-아메리칸의 삶



콘수엘로(Consuelo 99세)는 마리아(Maria 72세)를 낳고, 마리아는 재클린(Jacqueline 52세)를 낳고, 재클린은 옥스나르(Oxnar 32세)를 낳고, 옥스나르는 소피아(Sofia 10세)를 낳았다. 5대에 걸친 이 가계는 소피아가 좀 일찍 결혼한다면 6대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가문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어제 옥스나르의 외할머니 마리아께 초대를 받았다. 마리아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시지만 일 년에 두어 번 멕시코를 방문해 가족들을 만난다. 이번에도 열흘간의 일정으로 어머니날을 맞아 자신의 집과 딸, 손자들이 살고 있는 라파스를 방문했다. 마리아께서는 다시 LA로 돌아가기 전 외손자 옥스나르와 특별히 마음의 교류를 하고 있다는 우리 부부에 관한 얘기를 듣고 우리를 딸 재클린 집으로 초대했다.


재클린은 엄마의 마음을 읽고 멕시코 전통음식 포졸레Pozole를 준비했다.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껍질을 제거한 옥수수(hominy)를 넣은 스튜이다. 넣는 소스에 따라 blanco(흰색), verde(녹록), rojo(빨간색)가가 있다. 재클린은 로호로 준비해 주었다. 양파, 양배추 등을 잘게 썬 생야채 토핑을 얻는다. 손이 많이 가는 명절음식(아즈텍을 비롯한 메소아메리카에서 옥수수는 신성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포졸레는 특별한 때에 만들어졌다.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포졸레의 고기가 식인이 행했던 때 인육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을 준비해 준 각별함이 느껴졌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코리아타운이라 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살고 있어요. 저는 총 10가구가 사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그중의 8가구가 한국인들이요. 모두가 성품이 부드럽고 정이 많아서 서로 친밀하게 교류합니다. 저에게도 맛있는 한국 음식을 하면 가져다 주세요. 그런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에 익숙해졌습니다. 라파스에 와서도 김치를 먹었습니다. 옥스나르가 김치를 준비해 주었어요. 한국 사람 한 명 없는 이곳에서 김치를 먹을 줄은 몰랐죠. 바로 민지가 만들어주었다고 들었습니다."


마리아 씨는 한국 이민자 커뮤니티 속에 살고 계셔서 한국인의 정서에 대해 이미 친숙해있었다. 식사 후 디저트를 즐기는 동안 나는 마리아의 삶에 대해 물었다.


-이미 서너 차례 재클린 집을 방문했었습니다. 그때마다 제일 궁금했던 것은 재클린의 침대 협탁에 놓인 영화배우의 사진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영화배우가 아니라 재클린의 아버지였다고요? 그러니 마리아는 그 잘생긴 남자의 부인인 거지요?

"ㅎㅎㅎ 제수스(Jesus)를 말하는 거군요. 원래 우리 집은 두랑고(Victoria de Durango)였습니다. 제수스는 우리 집에서 세 블록 옆에 살고 있는 남자였고요. 하지만 그는 영국계 프랑스인으로 미국 뉴올리언스에 살고 있었고 때때로 고향에 돌아오곤 했지요. 어떤 때는 오토바이크를 타고 오기도 했어요. 올 때마다 우리 집 담너머를 기웃거렸습니다. 나보다 12살이나 많은 남자였지만 제 나이 18살에 그에게 넘어가고 말았지요."

-이곳 라파스로는 언제 오신 건가요?

"제 남편은 부동산개발업을 했어요. 그래서 전국을 다녔지만 일이 많았던 이곳 라파스로 건너오게 되었어요.

-이곳으로 오시고는 사업이 잘 되었나 봐요. 큰 집을 가진 것으로 보아...

"살기에 부족함은 없었지요. 그런데 비극이 찾아왔어요. 남편이 Sierra de la Laguna로 사냥을 갔을 때 마침 큰 비가 내렸어요. 그때 산사태가 나서 굴러내린 돌이 남편의 등을 친 거예요. 집으로 돌아온 지 3일 만에 돌아가셨어요."

-이런~ 그 때 마리아의 나이는 몇이나 되었나요?

"48세였죠."

-가장이 된 셈이군요.

"큰 집만 있지 현금자산이 없었으므로 제가 일을 해야 했어요. 라콘차호텔(Hotel La Concha)에 취직을 했죠. 호텔의 프런트와 룸을 식물과 예술품으로 장식하는 일이었죠. 그러나 곧 미국으로 가게 되었어요."

-미국에서의 일이 순조로웠나요?

"더 많은 수입을 위해 미국으로 갔지만 전 사실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 사람이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부잣집의 청소 일이나 개을 돌보는 일들이었죠."

-그래서 가족들의 더 넉넉한 생활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그렇지도 못했죠. 집세와 식비를 충당하는 정도였죠."

-미국으로 가신지가 몇 년이나 되셨나요?

"올해로 24년째입니다."

-지금은 미국시민권자이시죠?

"그렇습니다. 미국 시민권자인 헝가리 남자와 재혼을 해서 저도 15년 전에 시민권자가 되었죠."

-재혼하신 남편과는 잘 살고 계십니까?

"재혼한 분과 21년을 살았죠. 영주권을 얻기 위한 결혼이었기 때문에 저는 늘 그에게 약자였죠. 마치 인질 비용처럼 제가 생활비의 절반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사실 미국시민권자가 멕시코인은 물론 다른 국적의 사람과 결혼하면 집세나 식비를 분담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별거 중이에요."

-늦은 나이에 별거를 선택하신 이유는?

"그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요."

-지금도 일을 하십니까?

"아니요. 지금은 연금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라파스에 오셔서 가족들과 노후를 보내는 것이 좋지 않나요?

"그러고 싶습니다만 제게는 건강상의 이유로 미국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북미의 스노버드(snowbird)들 처럼 오가면서 지내도 될 테고...

"저는 황반변성으로 3주마다 한 번씩 주사치료를 받아야하는데 멕시코에서는 너무 비싼 주사지만 그곳에서는 보험으로 가능합니다. 또한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 듀피트렌 구축(Dupuytren's Contracture)이 왔어요. 지금은 새끼손가락이 펴지지 않지만 차차 약손가락, 가운뎃손가락으로 발전한다고 하더라고요. 약손가락까지 증상이 오면 수술을 받으려고요. 그리고 오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요. 예컨대 LA로 돌아갈 때도 라파스에서 티후아나까지 비행기를 탑니다. 그리고 국경을 육로로 넘어서 버스를 타고 LA로 돌아가죠. LA까지는 비행기표가 훨씬 비싸기 때문에요."

-어떻게 소일하고 계시나요?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독도 즐기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일을 할 때는 엄두내기가 어려웠던 것들이죠. 늘 긴장 상태였던 제게 비로소 휴식이 찾아온 기분입니다."

-당신은 세상 거의 모든 또래 여자들이 흠모했던 잘 생긴 남자를 남편으로 두기도 했었고 술주정뱅이 남편과 재혼하기도 했습니다. 편히 살아보기도 했고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국경을 넘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 인생의 다양한 국면을 살아내셨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주신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여기'에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일을 해야 하고 그 일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삶이라면 더 바랄게 뭐가 있을까요?"

-LA로 돌아가셔서도 매일이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지가 스포츠 자전거를 탄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은 많이 더워서 탈수가 걱정됩니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해요. 물에 소금과 라임, 생강을 넣으마시면 더 좋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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