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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un 04. 2024

뉴스 밖의 동네에서 뉴스 밖의 삶을 사는 사람들

Ray & Monica's [en route]_162


2024 멕시코 대선과 총선

어제(6월 2일)가 멕시코 선거날이었다. 임기 6년의 대통령을 비롯해 상원·하원의원, 주지사 등 공직자 2만여 명을 선출하는 선거였다. 그럼에도 저희 부부가 머물고 있는 라파스의 변두리 동네는 유세 기간 중에도 선거가 끝난 오늘도 변함없이 조용하다.


어제저녁 투표가 끝난 시간,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방문한 옥스나르에게 물었다.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어?"

"투표하지 않았어요. 투표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거예요."

"그 의사가 뭔데?"

"여기 오는 중에 불을 훤히 밝힌 개표소를 지나왔어요. 보나 마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당선이 뻔해요. 현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의 국가재생운동(MORENA) 소속이거든요. AMLO는 사회복지를 외치고 있지만 노인복지기금보다 이번 선거 비용에 훨씬 많은 돈을 쏟아부었고요, 반부패를 강조했지만 카르텔조직원들과 범죄는 더 늘었고요, 정계와 공권력과 마약카르텔간 유착범죄는 해결된 것이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그와 한편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 동네는 왜 이렇게 조용한 거야? 한국에서도 멕시코 대선에 대해 떠들썩하다는데?"

"그것은 뉴스 속 얘기들이겠죠. 이곳은 뉴스 밖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에요. 뉴스 속 얘기는 돈과 권력에 관한 얘기들이죠. 카르텔은 돈이 있는 곳에 활약하고 마약을 하는 사람들 옆에 있잖아요. 권력을 쥐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시 돈을 활용해야 하고요. 이곳은 하루 벌어서 하루를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에요. 큰 돈과 마약, 권력을 탐하지 않는 사람들이 왜 뉴스에 나오겠어요?"


나는 미디어에 종사하면서 직업의 특성상 늘 트렌드에 귀를 쫑긋 세우고 살아야 했고 그것을 독자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해서 전해야 했다. 어떤 이슈를 취재해야 하는지에 골몰해야 하는 입장에서 퇴근 후에도 온전하게 가정이나 내 자신에 열중할 수 없었다. 미디어의 종사자로서 미디어에 진력이 나버렸다. 내가 그곳에서 밥벌이를 하는 일을 그만둔 이유였다. 몇 개씩 구독하던 신문을 끊고 밥 먹을 때도 뉴스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TV를 없앴다. 그렇게 신문, TV와 의절한 것이 2003년부터이니 햇수로 21년째가 되었다.


멕시코에 있는 동안 저희를 사랑하는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지인들로 부터 여러 차례 안전을 걱정하는 연락을 받았다.


"지금 후보자가 수십 명이나 피살된 뉴스가 나오고 있다. 유세 현장에 가지 마라!"

"피살된 여행자가 일주일 만에 우물 속에서 발견되었데... 너는 괜찮지?"

"집 밖은 위험하다더라. 온통 경찰도 카르텔 조직원들과 한패래. 조심해!"


이 소식들 또한 지인들이 전해온 소식이다. 멕시코 밖 지인들은 이 소식들을 뉴스에서, 그 뉴스를 편집한 유튜브에서, 또는 OTT 서비스의 마약 카르텔 영화에서 보고 우리를 걱정하는 것이다. 뉴스는 사실을 전했을 것이고 영화는 사실에 허구를 더한 것이다. 그 사건 뉴스를 접한 사람은 전역이 같은 혼란상태일 것이라 믿게 된다. 유튜브에서는 그 뉴스들을 더 자극적으로 구성하고 영화는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더 무자비하게, 더 공포스럽게 구성된다는 사실을 잊는다.


우리의 원룸에도 TV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tv를 켜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시류에 완전히 뒤진 사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레거시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전과의 차이는 편집된 것을 던져주는 것을 받아 소비하는 피동의 방식에서 내가 필요한 것을 찾아 내 스스로 편집해서 본다는 것이다. 주체가 '너'에서 '나'로 바뀐 것이다. 여전히 보고 읽고 쓰지만 내 관심사에 관한 것이다. 마약과 돈과 권력과는 관계없으므로 카르텔 조직원과 엮일 일도 없다. 뉴스 밖의 삶이다. 그것은 내 삶과 내가 관계 맺는 이웃의 더 좋은 삶을 위한 노력과 태도에 관한 것이다. 


이 가난한 동네 곳곳에, 혹은 길가에 기도처가 있고 길을 가던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모으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기도 내용을 가져다 놓기도 한다. 휑한 사막의 도로 옆 기도처에는 빌립보서 4장 11, 12절의 말씀을 적은 족자가 걸려있다. 자신의 마음이 담긴 구절을 발견하고 과달루페의 성모님께 기도문으로 바쳤을 것이다.


"11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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