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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un 05. 2024

"부부싸움했어요?"

Ray & Monica's [en route]_163


오르막을 오르는 방법은 오르막이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거의 매일 사막의 산으로 간다. 아내는 MTB 클럽의 멤버들과 사막을 달리기 위해 나는 그 곳을 걷기 위해서다. 


초입에 맹그로브숲이 있는 '맹그로브 트랙', 노을이 아름다운 Cerro Atravesado 트랙, 유독 태양이 더 뜨거운 Coyotes Mtb 트랙, 새로 길을 만들고 있는 Peninsula Sur 트랙, 경기가 열리는 Shark 트랙 등 라파스 도시밖에는 수많은 MTB 트랙이 있다. 아직 달려보지 않은 것 중에는 100km와 150km에 달하는 트랙도 있다고 한다. 


주로는 하교 및 퇴근 후에 모일 수 있는 오후 5시에 출발하지만 휴일에는 아침에 떠나기도 하고 때로는 밤에 달리기도 한다. 이런 형편에 따라 어느 트랙으로 갈지가 정해진다.


라이딩을 끝내고 들어와 샤워를 마치면 커피 한 잔과 함께 그 기분을 나눈다.


"언덕을 오를 때 언덕을 바라보면 오를 수 없어요. 나는 땅을 보면서 패달링에만 집중해요. 그렇게 이를 악물고 페달링을 하다 보면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언덕에 올라있어요. 오르막을 오르는 방법은 오르막이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더라고요."

"정강이에서 땀이 나는 것은 처음이에요. 무릎에 피가 흐르는 줄도 몰랐어요."

"처음 '이런 곳은 어떻게 올라가나'. '이런 낭떠러지를 어떻게 내려가나' 싶었는데... 그런데 매일 달라지는 것을 느껴요. 두려움이 달아나는 것을..."

"밤의 사막 산을 달리는 것은 내 신체 세포 모두를 깨어나게 하는 것이었어요. 온도, 속도, 바람, 저항을 내 몸의 모든 세포들이 총동원되어서 내게 알려주어요. 순차적으로가 아니라 동시에 그 정보들을 뇌로 알려주고 나는 차례로 그 정보를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가족, 친구, 자연, 우주에 감사하는 마음이 차올라요."

어제 우리를 방문한 옥스나르가 아내의 턱에 검게 변한 멍을 보고 물었다.

"부부싸움했어요?"


오늘은 편도 10여 km가 되는 Peninsula Sur 트랙까지 자전거로 오간다고 했다. 나는 차가 가지 않아 함께 할 수 없었다.


아내는 오늘의 느낌을 가족 카톡에 남겼다.


"일주일에 6번, 사막의 산을 자전거로 타고 있다. 오늘은 4번이나 넘어지고 깨진 무릎이 다시 깨졌다. 죽을 것 같이 힘들어서 다음날은 안 가야지 하다가도 약속 시간만 되면 또 나가게 된다. 태양볕이 불같이 뜨거운 5시에 출발해서 11km를 달려 산으로 올라가는데 '난 그만 여기서 쉴래요'라고 말하려다가 다시 이를 악물었다. 일행을 따라서 긴 경사를 오르는데 지난번보다 훨씬 잘 달리고 있었다. 나를 내가 아니까. 그래서 매일 죽을 힘을 다해 달린다. 눈까지 부릅뜨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태양에 따갑던 눈도 잊어버린다. 돌에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고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 지상 최대 목표이다. 오늘 뺨의 딱지가 떨어지고 무릎에 다시 딱지가 앉았다. 이렇게 매일을 산다."


큰딸이 즉시 엄마의 투쟁에 응답했다.


"가장 치열하게 사시네요!"

#언덕을오르는법 #MTB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라파스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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