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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un 08. 2024

더 이상 행복을 찾지 않는 세상을 위해...

Ray & Monica's [en route]_165


부모와 자식 간의 바람길



멕시코 라파스의 아침 9시, 서울의 아들로부터 영상 전화가 왔다. 서울은 새벽 1시. 아들의 활짝 웃는 얼굴 너머로 딸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따로 살고 있는 삼남매이다.


"오늘 저희 삼남매, 서울의 제 집으로 모였습니다. 누나들이 제안해 모인 거예요. 밥 한 끼 함께 먹으려고요."

둘째 딸이 외국 근무에서 한국으로 들어가고 아들도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뒤, 십수 년 만에 삼남매가 함께 한국에 머물게 되었다. 나는 홀로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아이들의 마음을 말하지 않은 것 까지 읽을 수 있다. 홀로 나라밖에 있었던 고립의 경험이 준 효용 중의 하나가 동병상련의 온전한 이해이다.


아이들은 홀로인 시간을 통해 함께하는 시간의 귀함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듯 함께하는 삼남매의 하룻밤은 영상통화를 통해 멕시코의 부모에게로 확장되었다.


'홀로'를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함께'도 잘 살 수 있다. 홀로 살아보았기 때문에 '함께'의 가치를 볼 수 있었던 경험이 현재 삼남매의 일과 생활에도 반영되고 있는듯싶다.


첫째 딸 나리는 연극 공연을 통해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고 모티프원에서 게스트들과의 마음나눔을 통해 마음이 성장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한다.


둘째 딸 주리는 사기업에서 다시 UN기구로 자리를 옮겼다. 사기업에서 새로운 가치를 실험해 보고 싶었던 딸은 결국 영리활동보다 공공의 조화로운 성장에 더 열정이 극대화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국내외를 오가는 잦은 출장에도 불구하고 더 밝은 모습이다. UNDP의 업무인 세계의 개발과 원조 중에서도 이번에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위한 청년 주도의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청년층을 위해 일한다는 것에 더 신명을 내는 것 같다. 국내외 사회적 기업가들의 임팩트를 확장하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통해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당연히 UN이 주도해야 할 여러 일중의 하나이다.


막내인 영대는 기업의 영상제작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고 했다. 때때로 그와의 긴 통화에서 구상 중인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부자간에 여전히 가슴 뛰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기쁘다.


아내가 공설시장 치즈가게에 들렸을 때 주인아주머니가 말했다.


"우리는 이제 곤란한 얘기도 할 수 있을 만큼 친한 이웃이 되지않았나요? 그러니 필요하시다면 말을 해주세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시 풀어서 얘기해달라고 했을 때 그녀는 미소만 지었다. 그곳에서 산 치즈를 먹으면서 비로소 아내가 그 아주머니의 말뜻을 이해했다고 했다.


"그녀가 내 얼굴을 유심히 보더라고요. 아마 퍼렇던 것이 검게 변한 내 턱의 멍을 보고 하신 얘기 같아요. 아마 내 멍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생긴 것인 줄을 모르는 그녀는 내가 누군가로부터 곤란한 일을 당한 것으로 의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을 하면 도와줄 테니 내게 말을 해봐~'라는 뜻인 것 같아요."


출가 수행자는 산속 오두막에서 면벽하고 경전을 읽고 수행한다. 그리고 마을로 내려와 회향한다. 우리 부부는 세상이라는 숲으로 출가해 경전 대신 사람을 읽는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회향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는 반대로 한국을 떠나왔지만 이렇게 서로의 시간에 함께한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을 율법처럼 마음에 담고 있었다. 기자와 취재원과의 사이는 '너무 가깝게도 멀게도 말라'는 뜻이다. 나는 부부와 가족 간에도 '경이원지(敬而遠之)'하는 태도, 즉 '공경하되 너무 가까이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부부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에도 바람길을 허용해야 한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연애시절 반말을 사용하던 언어습관을 첫딸이 태어나고 다시 어렵게 존댓말로 바꾸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바람길을 허용한다,는 원칙을 지킨다고 해도 한국과 멕시코 사이의 거리는 좀 멀긴 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그 자리에 함께 하는 듯 비용 없이도 무제한 얼굴 보고 통화할 수 있으니 바람길 정도의 거리로 여기고 있다.


초기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Sutta Nipāta)'는 이렇게 말한다.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집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숲속에서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누구도 더 이상 행복을 찾지 않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큰 산속에서 산을 찾을 필요가 없듯이 모두의 일상이 행복해서 더 이상 행복을 찾아해멜 필요가 없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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