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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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 이안수ᐧ강민지
캠퍼밴으로 미시간 이스트 르로이를 떠난 지 보름째를 맞았다.
미시간, 인디애나,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뉴욕, 버몬트, 뉴햄프셔를 거쳐 메인주 허몬(Hermon)에 닿았다. 오늘은 세인트 크로이(St. Croix) 강을 사이에 두고 캐나다 뉴브런즈윅(New Brunswick)주의 세인트 스테판(St. Stephen)과 마주보고 있는 작은 국경도시 칼레(Calais)로 간 다음 미국의 최동단인 루벡(Lubec)의 웨스트 쿼디 헤드(West Quoddy Head)로 향할 것이다. 북대서양에 가로막혀 더 이상 동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다.
이곳에 닿기 위에 어떤 이는 시애틀로부터 5천km를 달려오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마이애미로부터 3천km를 운전하기도 한다. 우리는 약 2천km를 왔다.
조급할 일 없는 형편이므로 속도 위주의 드라이빙을 한 것도 아닌데 벌써 미국의 동쪽 끝이라니... '매일’ 그리고 ‘조금씩' 동으로 이동한 결과이다.
우리가 이스트 르로이를 출발할 당시, 그곳의 새벽 최저기온이 14°C였고 이 글을 쓰는 이곳의 새벽 5시 현재의 기온은 11°C이다.
기온이 3°C만 낮아진 것이 아니라 녹색의 단풍나무 잎이 노란 색으로 바뀌었고 호박이 붉게 익었다. 우리가 텐트를 친 이곳은 '호박밭캠프그라운드(Pumpkin Patch RV Resort)'이다. 이곳을 들어서는 순간 석양을 받아 더욱 붉은 사무실 앞의 호박을 보면서 문득 내 어깻죽지를 내리치는 죽비소리가 들렸다.
"씨앗하나가 자라 붉게 익은 호박이 되는 동안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
마음속 스승의 이 물음을 화두로 새벽 한기를 온몸에 두르고 텐트 속에서 답을 찾아 끙끙거리고 있다.
그동안 나는 더 많은 것에 궁금해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궁금증에 더 많은 질문을 하려고 애썼다. 그것은 미국을, 타인을 곡해하지 않으려는 노력들이었다. 21년 전 나는 이 동북부지역을 대중교통과 히치하이크로 120일간 여행했었고 지난여름에 3개월간 서부지역에 살았었다. 그리고 올 가을의 초입에 다시 이곳을 서성이고 있다. 비로소 살얼음을 밟아 미국의 본마음에 조금 다가간 듯하다.
그동안 그날치의 삶을 사느라, 때로는 와이파이 사정으로 그동안의 질문과 답을 다 나눌 수는 없었지만 나를 조금 익게 한 그 소중한 과정은 내 가슴속에 또 다른 씨앗으로 뿌려졌으니 싹을 티울 일이 남았다.
미국의 동쪽으로 향하면서 8개 주의 수많은 작은 마을들을 지났다.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은 단지 몇 가구 혹은 몇 십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의 자연조건과 그것에 순응한 집들, 그 집에서 매일 노동하며 사는 사람들, 그들이 새벽 혹은 주말에 가는 교회, 그리고 작은 석비들이 세월의 풍화 속에서 비스듬히 서있는 묘지들이었다.
매일 살아내야 하는 삶의 몫, 두려운 초자연들에 대한 피난과 구난, 그리고 사멸을 압축하는 순서이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생의 가장 압축적인 장면들로 다가왔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갖은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이자 그 한계 때문에 모든 순간이 제각각의 곡진한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텐트 밖에 먼동이 트고 있다. 점점 커지는 일교차로 흠뻑 젖은 텐트의 지퍼를 열자 안개가 짙다. 하지만 걱정 없다. 곧 안개는 물러날 것이며 이슬은 일출과 함께 마를 것이다. 지난밤 한기로 부터 나를 지켜준 모자와 외투와 무릎담요도 곧 역할을 마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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