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240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그들이 있는 곳으로
2010년 모티프원을 방문했던 분이 체류할 동안 나와 긴 얘기를 나누었다. 그 분은 그 대화을 글로 정리했다. 그 글 속에 '방랑하는 현재 삶'의 이유가 담겨있다.
"그곳을 방문해 그와 함께 밤을 보낸 이들은 하나같이 그를 자신의 나라로 초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또 하나의 꿈을 꾸게 되었다. 10년쯤 뒤 모티프원을 방문했던 그들을 찾아 세계를 여행할 꿈이다. 이미 15개국쯤의 사람들이 모티프원을 다녀갔고, 10년 뒤면 80개국, 200여 지역 이상의 사람들이 세계의 도처에서 그의 방문을 즐겁게 기다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흥분된 여로를 위해 기꺼이 일 년쯤을 할애할 생각이다."
●나의 칸살 없는 친구들
https://blog.naver.com/motif_1/30091818046
14년 전의 그 기록과 다른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모티프원을 방문했던 분들을 찾아 1년쯤 세계를 순례할 것이라는 예상이 10년의 순례로 바뀐 것이다.
뉴욕에서도 모티프원으로 여행 오셨던 몇분를를 뵈었다. 그중의 한 분이 '브루클린의 이민 변호사, Melissa Ann'이다.
#2. 4년 전 헤이리
우리 부부가 뉴욕에 왔다는 소식을 SNS로 접한 멜리사로부터 그녀가 살고 있는 브루클린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녀는 뉴욕에서도 힙하다는 브루클린에 살고 있지만 그것은 사무실이 있는 맨해튼으로 자전거로 통근하기 편리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늘 적체되는 일에도 사람 수가 많지않는 법무법인에서 이민업무를 관장하는 변호사로 일하기 때문에 종종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리고 1년 중 가장 업무가 한가한 때를 택해 좀 긴 여행을 떠난다. 그러므로 그녀의 휴가는 여느 사람들의 휴가철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4년 전 모티프원을 방문했던 때도 연말 연초의 휴가철이 모두 끝난 때인 2월 초였다. 여행지의 로컬 음식을 맛보는 것을 좋아하고 개성적이고 한적한 곳을 좋아하지만 도시의 편리함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곳을 여행지로 택하는 그녀에게 헤이리는 딱 그런 곳이었다.
헤이리를 걷고 모티프원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멜리사에게 나와의 대화도 그녀의 여행의 일부가 되었다.
●뉴욕커 이민변호사, 멜리사_1
https://blog.naver.com/motif_1/221805286269
●뉴욕커 이민변호사, 멜리사_2
https://blog.naver.com/motif_1/221810096439
#3. 재회
"I’m coming up with a plan. I’m thinking breakfast in Brooklyn(뵐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브루클린에서 아침을 먹을까 싶어요)."
"What trains are near to where you are staying? I just wanted to tell you which train to take(머물고 있는 곳 근처에 어떤 기차들이 있나요? 단지 어떤 기차를 타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녀는 내가 알았던 것보다 훨씬 섬세한 사람이었다.
눈부신 태양으로 하늘이 더 푸른 날 그녀는 오래된 자전거를 끌고 태양을 등지고 얼굴에는 찬란한 웃음을 띈채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우리 부부는 그녀가 알려준 방식대로 브루클린의 다운타운인 Atlantic Terminal에서 어떤 혼란도 없이 그녀와 허그 할 수 있었다.
"그때 헤이리를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이곳에서 재회할 수 있겠어요."
그녀가 한국을 여행하기 위해 공항으로 떠날 때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여행을 걱정했다. 한국에는 COVID-19의 확산이 시작되었을 때고 미국은 아직 관망상태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미국으로 되돌아왔을 때 더 이상은 출국이 어렵게 되었고 얼마 뒤 셧다운 조치로 미국이 멈춘 시간으로 바뀌었던 상황을 이렇게 상기시켰다.
"걸어서 제가 가는 커피숍으로 갈 거예요. 원하는 음료를 사서 South Oxford Street를 걸어서 Fort Greene Park로 갈 거예요. 그리고 피크닉을 즐길 거예요. 그리고 가고 싶은 곳으로 더 산책을 이어가면 좋겠어요. 가보고 싶은 곳을 말해주세요."
그녀와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았겠지만 그녀가 살고 있는 브루클린을 그녀와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이미 특별했다.
Hungry Ghost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우리 부부를 위해 이 모든 번거러움을 감수한 그녀에게 미안해 지갑을 꺼냈다.
"제발 순서를 지켜주길 바래요. 이번에는 내 차례에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Stumptown의 원두를 사용하는, 브루클린과 맨해튼에 주로 분포한 뉴욕의 커피 체인점이다. 모퉁이 작은 공간에 다가가기 전부터 이미 후각이 광란을 일으킨다. 이 작은 공간의 몇 개 되지 않는 테이블 양옆으로 길게 줄을 서있지만 테이블을 점유한 사람들은 책을 읽고 노트북을 스코를 하면서 느긋한 풍경이 인상 깊다.
#4. 브루클린의 스툽세일
멜리사는 두 손으로 이미 5년 동안이나 타고 출퇴근을 했던 자전거를 끌면서도 티컵을 입에 물고도 능숙하게 우리를 골목으로 안내했다.
Fort Greene Park를 중심에 둔 Fort Greene지구의 South Oxford Street는 도로 양쪽에 키 큰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Fort Greene에서도 유서 깊은 이 지역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지어진 Brownstone building의 주택들이 길게 이어져있다. 주변 분위기에 현혹되어 발걸음이 늦어지는 나를 위해 멜리사는 자주 멈추어 섰다.
곧이어 아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집 앞 현관 계단 혹은 도로가의 탁자에 펼쳐진 림, 책, 도자기, 조명기구, 의류들의 내용과 디자인을 살피는 것만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툽세일(stoop sale) 중이었다. 이 낯선 세일에 대해 멜리사에게 물었다.
"야드세일(yard sale)과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물건을 저렇게 계단(stoop)에 펴놓고 파는 거에요. 브라운스톤 건물의 이곳에는 yard나 garage가 없으니 stoop일 수 밖에요."
스툽세일은 S Oxford St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계단에 책을 펴놓고 앉아 수다 중인 일행에게 물었다.
"이 멋진 스툽세일을 하자고 일을 벌인 사람이 누구예요?"
"바로 이 사람입니다. 케이디!"
사람들이 계단 중앙의 한 부인을 지목했다.
"어떻게 집집 마다 이런 멋진 물건을 들고 나오도록 만들었나요?"
"E-mail을 보냈죠. 이 번 주말에 집안안에서 자리만 차지한 것들을 들어내어 집을 비우자고요. 어느 집이나 치워야 할 물건은 있으니까요."
"도대체 그 수고는 왜 자처한 거예요?"
"재미있잖아요. 이웃끼리 이렇게 모여 수다도 즐기고 집도 넓어지고 또 용돈도 생기잖아요. 무엇보다 리사이클링이 중요하죠. 그리고 이런 일은 혼자 할 수 없잖아요. 날짜를 정하고 그 날짜를 알리는 일까지... 그런 일을 함께 논의하다 보면 이웃이 돈독해져요."
#5. Fort Greene Park에서의 피크닉
Fort Greene Park 인근에도 큰 Farmers Market이 열리고 거리공연도 열렸다. 잠시 공연을 보고 공원의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공원은 온통 브루클린 이웃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빛과 걷기와 대화를 즐기고 있다. 너무나 익숙한 뉴욕 휴일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세심한 멜리사는 그동안의 여행지에서 산 에스닉한 피크닉 매트를 두 장이 준비해왔다. 그리고 피크닉 가방을 폈다.
"제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즐기는 페르시안 레스토랑, 'سفره (Sofreh)'에서 주문한 것들이에요. 페르시아어 sofreh는 영어 'feast(연회)'를 의미해요. 고기를 드시나요 채식만을 하나요?"
"둘 다요."
"혹시 몰라서 2가지로 준비했어요. 이 빵은 바르바리(Barbari)로 깨를 뿌려 화덕에 구운 거예요. 요구르트와 함께 드시고 이것은 Piroshki Giahi로 버섯과 카레가 들어있어요. 이 빵 안에 들어있는 것은 구운 소고기이고 이 빵은 야채만 들어있어요."
페르시안 식사와 더불어 지난 4년 동안의 궁금했던 삶을 나누었다. 우리는 한국을 떠나 여기까지 당도한 긴 여정에 대해 얘기했다. 그녀는 일하고 짬을 즐기는 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오가는 대부분의 날들과 간혹 여행하는 삶에 대해서 들여주었다.
"전 휴일이면 주로 걸어요. 2주간 이탈리아를 여행했구요. 다음 주에는 LA에 갈 겁니다. 몇 명의 친구가 있는데 그중의 한 명은 일 때문에 만났었지만 친한 친구가 되었죠. 그리고 텍사스에서 다른 친구가 합류할 예정이구요. 전 늘 일, 일, 일에 치여 살기 때문에 이런 산책과 여행과 친구를 만나는 일이 아주 소중해요."
그녀는 주로 미얀마 난민들의 미국 정착을 돕는 법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2021년 군부 쿠데타의 여파로 그녀의 업무는 좀처럼 줄 것 같지 않다. 시민운동가,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6. 혼자인 자유
우리는 함께 공원을 한 바퀴 걷고 이 지역의 오래된 극장과 서점 몇 곳을 들렀다. 그녀의 루틴에는 책읽기가 빠질 수 없으므로 브루클린 책방의 특징과 큐레이션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다.
이동 중에도 우리의 취향을 거듭 물었고 내가 발견한 새로운 관심사가 충족될 때까지 발걸음을 멈추어 한정 없이 기다려주거나 내가 불쑥 누군가에게 말을 붙이면 어느새 다가와 그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한국에서 오신 여행자세요. 10년 동안 여행할 예정이고 이미 2년 가까이 여행했습니다."
멜리사의 소개가 끝나기 전에 언제나 그들의 감탄사가 터졌다. 서점의 커피숍에서도 또 물었다.
"뭐 좀 마실래요?"
"멜리사는 뭘 마실래요? 사드리고 싶어요."
한없이 배려만 받는 것이 미안해서 물었을 뿐인데 멜리사는 브루클린의 내 누이처럼 나를 꾸짖었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요!"
멜리사는 애리조나에서 태어나 텍사스에서 자랐고 로스쿨에 다니기 위해 뉴욕으로 왔다. 졸업 후에도 뉴욕을 떠나지 않았다. 18살 먹은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는 그녀는 결혼 안 할 생각은 없지만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텍사스에 있는 여동생을 보면서 알았다.
"조카는 학교에 가기에는 어려서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데 매달 1천800달러씩 내고 있데요. 일과 병행하는 것도 어렵지만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듣고 놀랐어요. 전 여전히 혼자인 지금의 자유가 좋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지금 그대로를 즐기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누가 알겠어요. 다가 오지않는 나의 운명을..."
멜리사는 올해의 다가올 마흔 살 생일에 대해 좀 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