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264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안티구아에 머문 지 30일 째(11월 23일)입니다. 그동안 변함없는 이 도시에 대한 인상이 있습니다. 거대한 수도원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입니다. 도착 첫날밤 도시의 자갈길을 걸으면서 든 첫 느낌이 그랬고 지금은 그 느낌이 더 짙어졌습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성당을 지나치지 않고 갈 수는 없습니다. 옥상에 오르면 성당만이 우뚝합니다. 중심광장(Plaza Mayor : Parque Central de Antigua Guatemala)을 둘러싼 성당(Antigua Guatemala Cathedral : Catedral San José)과 시청(Ayuntamiento de Antigua Guatemala), 스페인 식민지 시절 총독의 궁(Real Palacio de los Capitanes Generales : 현 과테말라 국립 미술관 Museo Nacional de Arte de Guatemala), 그리고 몇 채의 중심지 건물 외에서 모두 1층입니다. 현재에도 야간에 조명이 되는 곳은 성당입니다.
도시설계 당시 부터 차용한 화려한 바르크 양식에 따른 건축들은 특히 가톨릭 성당의 권위를 부여하는 형식입니다. 특히 파사드와 예배 공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이 화산의 폭발과 지진으로 파괴된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복원되지 않은 채 보존된 모습은 신의 권위에 대한 위압적인 힘을 증거하는 모습입니다.
작은 도시 안티구아에는 20여 개가 넘는 대성당, 수녀원, 수도원이 있습니다. Antigua Guatemala Cathedral, Iglesia de La Merced, Iglesia de San Francisco el grande, Iglesia Escuela de Cristo, Iglesia Santo Hermano Pedro de San José Betancur, Antigua Parroquia San Sebastian 등 성당과 Convento Capuchinas, Convento Santa Clara, Convento de La Merced, Convento de San Francisco el Grande, Convento de Santo Domingo, Convento e Iglesia de Nuestra Señora de Belén
Convento de Nuestra Señora del Pilar de Zaragoza, Convento Santa Teresa de Jesús 등 거의 폐허 유적지로 남은 수도원, 수녀원을 차례로 순례하고 있습니다. 영적 성장과 사랑을 온 몸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수사와 수녀들의 생활을 상상해 보는 나름의 수행입니다.
이 도시에도 순례자의 길(Ruta del Peregrino)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병자들을 위해 헌신한 과테말라 최초의 가톨릭 성인, Santo Hermano Pedro (성자 페드로 : 본명 Pedro de San José de Betancur)를 기리는 순례 경로입니다. 유해가 안치된 성당(San Francisco el Grande )을 시작점으로 자선사업을 펼친 병원(Hospital de Santiago), 첫 병원을 설립했던 곳(Iglesia de La Merced), 직접 환자들을 돌보던 병원(Iglesia y convento de la Compañía de Jesús), 비아크루시스(Via Crucis)가 열리는 곳으로 페드로 형제가 기도하며 사람들과 교류했던 십자가의 길(Calle de los Pasos), 미사를 드리던 성당(Parroquia Nuestra Señora de los Remedios), 신을 느꼈던 예배당(Ermita del Santo Clavario), 의료 지원을 하던 곳(Convento e Iglesia de Nuestra Señora de Belén)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거리의 병자들을 업어와 치료받도록 하면서 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들의 누더기 옷을 입고 종을 울렸던 페드로 형제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묵상의 시간이 됩니다.
#2
23일에는 Iglesia de San Francisco el grande와 Iglesia de La Merced의 두 성당에서 각기 다른 행렬(Procesión)을 개최했습니다. 그리스도 왕 축일(la Fiesta de Cristo Rey)을 기념하는 '그리스도 왕 행렬(Cristo rey procesión)'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모신 안다스(Andas : 종교 행렬에 사용되는 정교하게 장식된 나무로 만든 행렬 운반대)를 메고 거리를 행진하는 이 장엄한 의식에 이미 두 번 참여했습니다. 어제는 두 교회의 행렬에 함께했으니 30일 사이에 4번의 행렬을 경험한 것입니다.
아티구아에서 성주간(la Semana Santa)에는 25개 이상의 행렬이 이 도시에서 이루어진다니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 실제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안다스 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모 마리아 또는 성인들의 신성한 이미지가 얹히며 천사를 비롯한 많은 상징들로 장식됩니다. 이 안다스를 메는 이를 쿠쿠루초(cucurucho)라고 합니다. 안다스의 길이에 따라 쿠쿠루초의 어깨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의 수가 다릅니다. Iglesia Escuela de Cristo 성당의 경우는 90개의 공간이, Santuario de San Felipe de Jesus의 경우에는 100개의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쿠쿠루초스는 한 블록만 운반할 수 있는 기회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도시를 도는 동안 무려 6,000명의 쿠쿠루초스가 참여를 하는 것입니다.
이 행렬에 튜닉 (Tunic)을 입고 얼굴을 가린 원뿔형 모자를 쓴 참회자들(Nazarenos)이 앞장서고 찬송가나 전통적인 성가를 연주하는 밴드가 행렬을 뒤따릅니다. 행렬의 일정, 경로, 장식 등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은 Hermandad(형제단)이 맡습니다.
성직자를 비롯한 수천 명의 신자와 관람객들이 행렬을 뒤따르며 존경과 헌신의 행진을 벌입니다. 이 거대한 행렬은 종교적 행사를 너머 안티구아의 가장 중요한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행렬의 길 위에는 시민들이 알폼브라(alfombras)가 만들어집니다. 스페인어 '카펫'을 의미하는 알폼브라는 자갈밭 도로 위에 물을 들인 톱밥으로 화려한 무늬의 양탄자를 만듭니다. 예수의 희생과 사랑에 대한 헌사를 이 도로 위의 카펫으로 봉헌합니다. 알폼브라는 그 도로의 이웃들이나 가족들이 함께 뜻을 모아 디자인을 구상하고 함께 작업을 합니다. 그 과정은 마치 불교에서 명상과 수행의 일환으로 만드는 만다라와 같은 작업입니다. 불교의 교리와 신앙을 여러 색의 모래로 시각적으로 표현해 공양의식의 끝에 쓸어 모아 강에 바치듯 갖은 공을 들인 알폼브라 역시 행렬이 지나가면 파괴되어버립니다.
이 알폼브라 전통은 마야 전통에서 유래한 의식입니다. 마야 왕들이 가는 길에 꽃과 깃털로 정교한 무늬의 카펫 장식을 한 전통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마야인들의 가톨릭 개종을 위해 마야 전통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안티구아의 행렬 자체도 마야의 의식이 혼합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야에서 왕은 가마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그 가마를 여러 사람이 메었습니다. 이렇듯 이 장엄한 행렬에서 가톨릭과 토착종교의 융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만다라가 무상을 일깨우듯 알폼브라 또한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일깨웁니다.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 안에서 무슨 일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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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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