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276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바닷가 마을, 엘 파레돈(El Paredon)이라는 스페인어 이름을 영어로 번역하면 'The Big Wall
'이 된다. 이 마을 이름은 지역의 지형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이곳에는 서쪽 해안을 따라 10km쯤 뻗어있는 긴 모래톱이 있다. 이 모래톱이 태평양의 태풍과 파도를 막아주는 '큰 벽'역할을 하면서 긴 내해가 생겨났다.
이?지형적?특징은?이?지역의?자연환경과?생물?다양성을?구성하는?독특한 생태계를?만들었다.?이?내해와?수로에?거대한?맹그로브?숲이?만들어졌고?맹그로브?숲은?해양?생물의?서식지가?되었다.?몇 종의?바다거북과?다양한?조류들의?터전이 된?이런?특성으로?이?일대는?'시파카테-나란호?국립공원(Parque?Nacional?Sipacate-Naranjo)으로?지정되었다.?
작은 배를 한 대 빌렸다. 이 배의 주인 네리(Nery) 씨는 엘 파레돈에서 태어나 44년을 살아온 사람으로 다리가 놓이지 않은 수로의 양안 사람들을 배로 건네주거나 마을과 주변 생태계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생태안내를 맡고 있다.
선착장에는 여러 용도의 배들로 빼곡했다. 고기잡이용 배를 비롯해, 사람과 화물과 자동차를 나르는 배 등 용도에 따라 각기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수로를?따라?국립공원?깊숙이?들어갔다.?울창하게?이어진?거대한?맹그로브?숲은?그?자체로?자연의?어머니였다.?해양과?육상?생태계의?경계에서?해안?침식을?막아주면서?수십 종?조류의?보금자리와?먹이터?역할을?하고?있다.?배를?가지고?나들이?나온?주민들과?온갖?새들은?물 위로?높게?자란?맹그로브 호흡뿌리(aerial?roots)들?사이에서?함께?물속의?고기를?노리고?있다.?맹그로브?나무를?특징짓는?뿌리는?복잡하게?얽혀 강한?파도와?조류에도?나무가?굳건할?수?있도록?하면서 산소를?흡수하고고?바닷물의?염분을?걸러내는?여과 기능을 해낸다.?
수로를 따라 올라가자 무장한 군인과 막사들이 보였다. 환경 감시를 주로 하는 해군기지였다. UNIPESCA(Unidad de Pesca y Acuicultura 수산 양식부)와 협력하여 저인망 어업(trawling fisheries)에서 어망에 걸린 바다거북을 안전하게 탈출하도록 설계된 장치인 TEDs(Turtle Excluder Devices 거북 제거 장치)의 부착 여부 등, 어업 규정 준수를 모니터링하고 확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은 집단 산란 행동인 아리바다스(Arribadas)로 유명한 올리브 리들리 바다거북 (Olive ridley sea turtle)을 비롯해 녹색 거북 (Green Turtle), 장수거북(leatherback sea turtle), 매부리바다거북(Hawksbill Turtle) 등의 중요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의 멸종 위기종 적색목록에서 전 세계에 존재하는 바다거북 7종 모두가 '취약', '멸종위기' 또는 '심각한 멸종위기'의 보존상태로 등록되어 있다. 서식지 보호를 위해 국립공원에 해군기지가 들어선 이유를 이해할만했다.
다시 긴 내해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했다. 갈색펠리컨이 가득한 곳에서는 맹그로브 나무가 흰색으로 변해있다. 그들의 배설물이 숲의 색을 바꾼 것이다. 숲에서 꿀꿀거리는 돼지 소리가 들렸다. 국립공원에 돼지우리를 두었을 리 없다 싶어서 네리 씨에게 물었다.
"오리 소리예요. 머스코비 덕(Muscovy Duck)이라고 해요."
맹그로브숲과 석호에는 조류들의 천국이었다. 백로, 검은목왜가리, 물수리, 흑매, 플라밍고...
모래톱에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염전입니다. 사구에 저수지와 증발지를 만들어 소금을 만듭니다. 이제 건기로 들어섰으니 염전을 수리하고 다시 일을 시작할 때이군요."
조금 더 이동하자 맹그로브 나무에 붙인 '바다거북 보호구역'팻말이 보였다. 네리 씨가 배의 시동을 꺼고 맹그로브 나뭇가지에 배를 묶었다.
"이곳은 150에서 200마리 정도의 거북이 서식하는 곳이에요. 그들은 15분에서 20분 간격으로 호흡을 위해 수면으로 올라옵니다. 그렇지만 지역이 워낙 넓기 때문에 수면에 목을 내민 거북이를 보는 것은 쉽지는 않습니다. 어디 기다려봅시다."
한 시간 정도 맹그로브 숲가에서 눈을 부릅뜨고 수면을 노려보는 동안 4, 5차례 수면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찰나라 카메라 셔터를 누를 기회조차 없었다.
흔히 '인연'의 소중함을 맹구우목(盲龜遇木)의 비유로 말하곤 한다. 인생의 어떤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은 백 년에 한 번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떠오르는 바닷속 눈먼 거북이가 대양을 떠다니던 한 개의 나무판자 옹이구멍에 머리가 들어가게 되는 만큼 드물고 소중하다는 것이다.
내가 이 바다에서 와서 물 위로 고개를 내민 거북이의 머리를 몇 번이나 보았으니 이 확률은 도대체 어떻게 셈할 수 있을까. 그저 마주치는 모든 것이 고맙고 소중하다.
그런 확률로 본다면 자연의 균형은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한가. 우리의 발걸음 하나조차도 이 균형에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다. 배에서 내려서자 절로 뒤꿈치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