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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궤적, 관계의 기억

Ray & Monica's [en route]_275

by motif




엘 파레돈 서북쪽 귀퉁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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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홀로 마을을 걸었다.


엘 파레돈(El Paredon)은 태평양의 풍요로운 바다와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건강한 토양을 바탕으로 경쟁하지 않아도 생계 걱정 없는 삶을 누대에 걸쳐 살아온 마을이다. 그러나 갑자가 해양 스포츠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다 보니 마을 환경은 거의 화산 폭발 같은 급작스러운 변화가 몰아쳤다. 사탕수수밭이나 목장으로 사용하던 땅에 수영장이 만들어지고 뷔페식당이 들어섰다. 마을 닭과 개들의 놀이터였던 빈땅은 대처에서 자본을 불린 돈 가진 사람들의 투자처가 되었다.


마을은 공사장으로 변했고 해변에조차 블록 담장이 만들어진 고급 호텔이 들어서고 비치는 사유화가 진행되었다. 마을의 도로들은 각국에서 온, 손바닥만 한 수영복을 걸친 벌거숭이 남녀들로 채워졌다.


낮 시간 바다에서 시간을 보낸 외지인들은 밤의 시간도 낮만큼 뜨겁기를 바랐다. 모든 레스토랑이나 카페는 매일 자정 넘어까지 대형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파티의 소음이 담장을 넘었다. 경쟁이 생겨나고 다툼도 늘었다.


어부와 농민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 없이 두어 배 오른 가격으로 땅을 팔면 그 후의 삶은 어떻게 될지...


'개발'의 광풍에 휘말린 마을의 변화가 주는 충격을 거의 평생에 걸쳐 체험한 나는 주인이 외지인인 라이브 뮤직 바와 아이스크림 가게 옆을 지나면서 사거리 코너의 풀밭 귀퉁이에서 테이블 세 개를 두고 즉석조리한 음식을 파고 있는 뷰인의 주방 테이블 옆에 세워진 '투자기회. 호텔이나 몰의 최적격지'라는 광고판이 이 부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대로변 담장에 그려진 빛바랜 벽화 앞에서 한참 동안 걸음을 멈추었다. 바다에서는 조각배에서 그물을 던지는 사람, 갖은 물새들이 먹이를 찾는 모습, 사구 내해의 양안에 가득한 맹그로브 숲,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인 초가 몇 채, 몸을 모래에 묻고 머리만 내놓은 사람... 이 마을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한 실경산수화이다. 하지만 마을의 급격한 변화를 보면 언젠가는 이런 목가적인 모습이 그림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아닐지 우려가 벽화에 겹쳐졌다.


우리는 숙소를 바닷가 이벤트가 많은 호스텔 대신 마을의 북서쪽 끝, 맹그로브 숲에서 가까운 한적한 곳을 얻었다.


발길을 호스텔 뒤쪽으로 돌렸다. 관광객이라는 누구도 발길 할 이유가 없는 곳이다. 몇 걸음마다 발길이 절로 멈추었다.


나무줄기로 일정하게 새운 울타리가 흙길과 마당의 경계였다. 이렇게 담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 집 마당의 병아리보다도 많은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오른손을 들어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마침내 그들이 왁자지껄 그들의 놀이로 어른은 하던 그물 손질로 되돌아갔다.


골목을 돌아들자 한 소녀가 남자의 머리털을 깎고 있다. 골목을 돌아 나오자 부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남자의 어깨 위에서 한 움큼 머리카락이 얹혀있다.


"딸이 당신을 안다고 해서요."


그가 계면쩍은 웃음을 웃었다. 그제야 그 옆의 소녀와 눈을 맞추었다. 그녀를 금방 알아보았다. 그녀는 내가 맹그로브 숲 가를 지나다가 강에 몸을 담근 거대한 나무의 이름에 대해 물었던 그 소녀였다.


'어떻게 이 골목까지 당신이 올 생각을 했는지...' 도대체 궁금하다는 부녀의 속마음이 읽혔다. 그것보다 더 그 부녀를 당황스럽게 한 것은 '당신을 어떻게 환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마음의 변화이다. 그전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만드는 변화. 어찌해야 좋을지 당황스러운 마음이 미소 머금은 표정에 투명하게 비친 그 부녀와의 조우가 이 마을의 궤적을 쫓는 산책을 '새로운 나'로 만들었다. 엘 파레돈 서북쪽 귀퉁이 마을이 내게 남긴 관계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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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엘파레돈 #과테말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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