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280
아티틀란 호숫가 마을들의 삶을 살피는 이렛날 여정의 발걸음을 계속할 힘을 잃었습니다. 고국의 비통한 소식에 눈도 귀도 흐릿해졌습니다. 마을로 나가는 대신 오늘 하루 산타 카타리나 팔로포의 카크치켈 마야족 어르신 부부 댁에서 침잠하기로 했습니다. 어르신의 손녀, Rosalina가 오렌지색과 아보카도색의 두 잔에 음료를 들고 왔습니다. "따뜻한 차를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Cayote Chile에요." 이 차를 앞에 두고 결코 가시지 않을 통증과 깊은 슬픔에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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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크리스마스이브, 자정이 되자 일제히 불꽃이 터졌다. 비탈 마을 맨 위쪽에 속한 집의 3층 사방에서 터지는 불꽃에 넋을 잃었다. 가까이서 멀리서, 위에서 아래에서 터지는 불꽃에 포위되었다. 하늘을 찬란하게 밝힌 불꽃은 30분이나 계속되었다. 마치 우주선을 타고 은하수의 중앙에 있는듯한 환상의 일부가 되었다.
안티구아에서 고향, 산타 카타리나 팔로포(Santa Catarina Palopo)로 오는 중에 마틸다(Matilda)는 어린 조카 15명을 위한 선물을 샀다. 그녀가 산 것은 불꽃 화약이었다. 구멍가게의 한 면은 수십 종류의 화약으로 가득했고 그중에서 10여 가지를 골라 15개의 봉지에 나누어 담았다.
"어린 조카들에게 화약이라니? 괜찮나요?"
나의 질문에 마치 준비된 답변처럼 말했다.
"차라리 간식거리를 사지 않느냐는 거지요? 먹을 것은 이미 집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요. 집집마다 오늘 하루 종일 함께 나눌 음식을 만들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나는 간식 대신 행복을 선물하고 싶은 거예요."
그녀의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 크리스마스이브의 한밤중에 이렇게 실감했다.
골목마다 가족들이 함께 불꽃을 터뜨리며 '펠리스 나미다(Feliz Navidad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외쳤다. 음식과 술과 건배와 얘기로 밤을 새우는 날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은 우리의 새해 그믐날 밤, 집안의 모든 불을 밝히고 잠을 자지 않았던 내 어릴 적 기억(수세 守歲)과 닮았다.
크리스마스의 새벽은 취기와 화약 냄새가 여전한, 골목마다 가득한 불꽃놀이의 잔해들과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과테말라에서 다양한 폭약을 터뜨리거나 폭죽을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는 거의 매일 있는 일이다. 새벽과 한낮, 저녁과 자정 등 시간을 가리지도 않는다. 특히 예수상이나 성모 마리아 상을 모시고 거리를 행진하는 종교 행렬(Procesion)에서는 수백, 혹은 수천 개의 폭약을 터뜨린다. 이는 엄숙과 헌신을 표현하고 그 마을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의미가 있다.
마야인들에게는 악령을 쫓아내는 벽사의 기능과 공간 정화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국가 기념일이나 결혼, 생일 등에는 축하와 기쁨의 표현이다. 크리스마스와 신년에는 지난해와의 작별과 새로운 해를 맞는 설렘의 표현이다.
과테말라에서 폭죽과 불꽃은 이렇듯 중요하고도 굳건한 문화이다. 화려한 불꽃과 폭약의 천둥소리는 과거의 불행과 작별하는 방법이고 새로운 축복의 날에 대한 기대를 담는 삶의 계속성에 대한 장치이지, 싶다.
가난에도 불구하고 폭약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이들에게 크리스마스이브의 화려한 불꽃놀이는 올해도 생계를 잇느라 분투했던 날들에 대한 가장 사치스러운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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