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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an 01. 2025

산타 카타리나 팔로포에서 10살의 고향을 살다

Ray & Monica's [en route]_281


아티틀란 호숫가 마을의 닭과 개의 시간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이 마을의 하루 일과는 천체의 주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어둠이 내리면 잠자리에 들고 날이 밝으면 활동을 시작한다. 날이 밝기 전은 닭의 시간이다. 새벽 4시경이면 온 동네 닭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거의 모든 집이 닭을 키운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함께 걷고 있는 것이 닭이다. 닭은 이곳에서도 귀한 식재료이므로 닭을 키우는 것은 자급의 일환이다.


닭이 새벽을 알린 뒤에는 개의 시간이다. 오른쪽 언덕의 개들이 찢기 시작하면 왼쪽 언덕의 개들이 화답한다. 산과 들을 살아온 마야인들에게 개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영적 믿음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신의 메신저로서 인간과 신을 연결하거나 죽은 자의 영혼을 사후 세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겼다. 아즈텍 신화에서는 무모견인 숄로이츠퀸틀리(Xoloitzcuintli)가 그 역할을 하는 신성한 동물이었다.


이곳 마야인들에게도 개에 대한 특별한 호감이 있다. 집안에서 개을 키우는 경우도 있지만 소의 신성성을 믿는 힌두교의 나라 인도의 소들처럼 길을 비롯한 모든 곳에 개가 있다. 바라나시에서 소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보지못했듯 이곳에서는 개가 사람에게 호전성을 드러내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닭과 개의 시간이 끝나면 비로소 물을 긷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된다. 우리가 묵는 어르신 댁에는 수도가 있다. 산위에서 지하수를 퍼올려 집으로 연결한 수도관이다. 지하수 고갈을 막기 위해 물은 아침 6시 30분부터 10시까지만 공급된다. 하지만 상수관에 연결되지 못한 집들은 마을 삼거리 골목 가운데에 있는 공동 수도를 활용하거나 이웃 댁의 물을 길어서 사용한다.


물을 이고 나르는 부산한 시간이 끝나면 마을은 온통 연기로 자욱하다. 아침 식사 준비 시간이다. 이 마을의 주 연료는 화목이다. 옛날 이곳 남자들이 결혼하려면 신부 측에 장작 일곱 묶음을 져다 주어야 했다. 그만큼 장작은 중요하다.


골목은 다시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과 갖은 생활필수품들을 지고 오르는 짐진 포르타도르(portador 물건을 운반하는 사람)의 차지가 된다. 천이나 가죽으로 만들어진 스트랩인 텀플라인(Tumpline)를 활용해 머리와 등으로 짐을 나른다. 골목 모퉁이마다 있는 구멍가게의 진열품들부터 모래와 철근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이렇게 지거나 이고 날라야 한다. 좁은 골목과 계단에 텀플라인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 비탈 마을 산타 카타리나 팔로포(Santa Catarina Palopo)에서 단 한 뼘의 땅이라도 놀릴 수 없다. 결혼을 하면 부모 댁 옆에 집을 지어 분가를 한다. 12명의 자식을 둔 미구엘(Miguel)과 마리아(Maria) 어르신 부부의 집을 에워싼 모든 집은 분가한 자식들의 집이다. 그 집들 사이의 자투리땅에 지금 짓고 있는 집은 또 다른 손자의 집이다.


미구엘 할아버지는 옥수수, 감자, 사과, 복숭아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산 정상 조금 경사가 들한 곳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다. 마리아 할머니는 직물을 짜고 가죽을 만드는 일을 했다. 마을 사람 일부는 아티틀란 호수에서 고기를 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농부와 어부로 생계를 이어갈 수는 없다. 비탈밭들도 다른 용도로 전용되고 호수는 고기를 키울 만큼 청정하지가 않다.


이유는 호수와 호수를 둘러싼 수려한 풍경들 때문인 셈이다. 이 독특한 경치가 주는 정서 때문에 관광객이 모여들고 주민들은 그들을 대상으로 돈을 버는 일이 더 수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머물 곳을 짓느라 비탈밭조차 사라지고 그들이 먹고 버리는 것들로 호수는 물고기 한 마리 낚아올리기 어려운 흉년이 계속되고 있다.


호숫가의 작은 어선은 바닥이 떨어져 나간 채 방치되고 그중 몇몇배의 주인만 새벽에 낚시나 그물로 조업을 나가고 있다.


12자식을 둔 이 댁의 어른도 농사로 아이들을 먹이는데도 급급했던 탓에 공부를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것은 각자 알아서 할 몫이었다. 관광업으로 생업이 바뀐 뒤에도 그런 빈곤 상황이 나아지지 못했다.


이 어른의 손녀 로살리나(Rosalina)가 엄마의 핸드폰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이 집에 처음 발을 들인 외국인 우리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명랑한 그녀는 영어관광가이드가 꿈이라고 했지만 영어를 배울 형편은 되지 못했다.


이런 마을 상황들을 개선해 보고자 비군사적 해외원조를 실행하는 미국의  USAID(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미국 국제개발처)가 재정적 지원과 기술적 자문을 제공하고 UVG(Universidad del Valle de Guatemala) 대학이 실무를 담당하는 마을 개선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더 많은 방문객을 유치해 마을의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017년부터 주민들과 함께 워크숍을 개최하고 이 마을이 가진 자원들을 모두 조사했다. 그것을 문화, 자연, 섬유라는 3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관광루트를 만들었다. 예술가들이 참여해 건물 외관을 전통 마야 디자인과 색상을 활용한 벽화로 장식하는 ' Painting Santa Ceterina Palopo'라는 프로젝트가 함께 진행되었다. 그 결과 여느 마을과는 차별화되는 마을의 외관을 갖게 되었다.


예술과 디자인을 통한 문화 관광지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이 프로젝트가 실행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약 3천여 명의 이 마을 인구의 빈곤이 개선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관광객들이 여전히 특정 유명 마을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의 젊은이들이 Community Tourist Host로 참여해 마을의 자원들을 발굴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실행을 통한 학습'이 이루어진 만큼 'KNOW, DO and BE'의 역량을 가진 마을이 된 셈이다.


15살 로살리나가 학교를 가는 대신 엄마와 함께 노동으로 생계를 도와야 하는 형편이 개선되어 그녀의 꿈인 관광가이드를 준비할 수 있는 날이 언제 오게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빼어난 경승지에 자리 잡은 고급 호텔과 별장의 높은 담을 보면 혼자 잘 살기는 쉽지만 함께 잘 살기의 어려움을 실감한다.


확성기 방송으로 마을 일을 전달하는 것도, 한 성씨가 집단을 이루는 것도, 식수를 퍼 날라야 하는 일도, 전기를 아끼기 위해 불을 켜지 않는 것도, 가난한 것도, 그럼에도 정이 많은 것도 60년 전 내 고향마을 모습 그대로이다.


두 어르신은 기상하면 앞집, 옆집의 일가들을 순례한다. 아들과 딸 부부는 틈만 나면 어르신 댁으로 모인다. 그저 함께 시간을 나눌 뿐이다. 가난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곳에서 10살의 고향을 다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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