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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꿈

Ray & Monica's [en route]_307

by motif

당신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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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1


딸이 오늘을 기억해 주었습니다.


그 기억을 기록했습니다.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또 제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입니다.


두 분이 함께한 지 46년, 결혼한 지 39년, 한국을 떠난 지 2년, 과테말라에서 생활하신지 4개월.


얼마 전 엄마가 안티구아의 숙소 옥상에서 한 시간 통곡하였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너희가 열심히 사니까 우리는 더 열심히 살게,라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한국은 3월 1일 저녁 10시. 과테말라는 3월 1일 오전 7시입니다. 전화를 드려야겠습니다.


나는 엄마 아빠 대신 갤러리의 초상화로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고, 나도 힘낼 테니 엄마 아빠도 힘내시라고..."


@motif.1


딸이 오늘을 기억해 주지 않았다면, 그리고 한국이 과테말라보다 15시간 빠르지 않았다면 결혼기념일 아내에게 바치는 연서를 이곳의 3월 1일에 맞추어 쓸 생각을 못 했을 것입니다.


#2


엽서를 완성했을 때 아내가 들어왔습니다. 손에는 붉은색 불상화가 들려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때 왜 통으로 툭 떨어지는지 불쌍해서..."


꽃이지는 것을 가여워하는 아내의 편이 되기 위해 꽃을 귀 뒤로 꽂아보도록 했습니다.


"시들기 전에 뽐낼 기회를 주면 꽃은 스스로 애처로운 마음이 덜할 거예요."


양지쪽에서 꽃 같은 웃음을 한껏 웃게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시 책상 앞에 앉은 아내에게 몰래 준비한 엽서를 내밀었습니다.


"당신은 꿈


잠들지 않아도 꿀 수 있는 꿈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는 꿈


당신은 꿈보다 환상이었고


비루한 날들을 견딜 수 있었던 환영이었죠


깨지 않은 꿈으로 살아온 첩첩한 46년을


당신과 함께 오고 싶었던 곳에서 뒤돌아봅니다


마침내 배웅 없는 곳에서


전설 같은 시간 속 당신을 마중했던 시간에 감사합니다


어느 하나 갖고 싶은 것 없이 충분한 것은


당신이 그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것은 당신이라는 꿈속에 있음을...


2025년 3월 1일


결혼기념일의 꿈속에서


이안수 당신을 꿈"


기대 밖 엽서를 눈으로 읽던 아내는 중간쯤에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 46년이 지났어도 눈물 나는 행복을 주어서..."


#3


삶이란 한 시도 멈춤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46년 전 우리가 만났던 그 순간의 기억입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어떤 속셈도 개입되지 않은 순수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마음속 성스러운 토템으로 그 순간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디쯤 나아가서도 잘못 든 길이면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다시 출발했습니다.


가파른 길에서 나아갈 동력을 잃어도 그 순간으로 돌아가 힘을 얻었고


마음속 자상으로 남는 상처도 그곳으로 돌아가면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 토템의 치유 효험은 지금부터 더 유용할 듯싶습니다.


지난날 여러 번의 실패에도 젊음은 남아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낡은 것들입니다.


근육도 뇌세포도, 치아도 시력도...


고산을 오르는 것도 한 길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빨리 뛰는 것도 오래 달리는 것도 삼갈 것을 권고받습니다.


벽을 만날 때마다 그 토템에게로 갑니다.


우리가 혼인한 날, 그저 감사한 마음만으로 토템을 방문했습니다.


오늘은 축하를 받았습니다.


"여전히 함께임을 축하해. '함께'는 구원이야. 그 동행이 앞으로의 순간을 구원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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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 #과테말라 #안티구아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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