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마을 이드리야
일생의 마지막 기억으로 남을 알프스 자락에서의 수제비 한 그릇
INTO THE WEST_44 | 광산마을 이드리야
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어제 다시 크로아티아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슬로베니아로 들어왔습니다.
여장을 푼 곳은 이드리야마을에 있는 호스텔 이드리야Hotel Idrija. 류블랴나까지는 불과 60km 로 자동차로 1시간 정도의 거리입니다.
알프스 자락의 이 마을은 유럽의 산비탈에 펼쳐진 전원마을의 전형적이 모습으로 마을로 접어드는 순간 단원들의 표정이 경이로운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캐린더속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그 알프스마을에서 이틀 밤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에 감정이 격해진 모습들입니다.
사실 산중에 호스텔이 있다는 것은 그곳을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로 택한다는 의미이고 그렇다면, 그 주변은 충분히 경험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풍경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수원광산이 있던 마을입니다. 1500년대에 발굴이 시작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수은 광산이랍니다. 지금은 폐광이 되었지만 그 광도를 직접 체험해 불 수도 있고 광산박물관도 운영되는 역사적인 장소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마을입니다.
나는 이 호스텔의 스텝으로 와 있는 넉살 좋은 스페인의 살바도르에게Salvador에게 이 마을의 어느 곳이 내 발길을 기다리고 있는 어트랙션인지를 물어두었답니다.
경사지 4층짜리 이 호스텔은 넓고 쾌적합니다. 침실보다도 거실과 미팅룸, 주방을 비롯한 공용공간이 많은 여유로운 곳이고 침실과 린넨도 잘 관리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샤워룸이 충분해서 30명이 한 번에 도착하고도 샤워를 위해 오랫동안 줄을 설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건물이 이곳 고등학교의 기숙사로 사용되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더 이상 기숙사가 필요치 않아진 그 학교로부터 이양 받아 호스텔로 전용한 것이기 때문에 복도도 넓고 각 룸도 침대 간 거리가 10m쯤(?)은 될 만큼 넓은 이유입니다.
단원들이 더욱 축제 부위기가 된 것은 식사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주방 환경이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도착 전에 미리 식재료를 준비한 단원들은 각자 기호가 맞는 사람들끼리 팀을 만들어 디너 준비를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고기, 감자'접시를 접했고 그것이 진력이 나면 다시 '감자, 고기'로 거의 절제된 식단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두가 일생을 걸쳐 먹어 볼 거의 모든 종류의 파스타를 경험한 뒤라 각자의 뇌리에 박힌 음식이 그리웠던 터였습니다.
사실 음식은 미각이 아니라 뇌로 먹는 것이라는 것을 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차로 이동하는 동안 상상으로 각종 메뉴를 말로서 조리합니다. 그 말의 조리만으로도 동승자들의 입에는 침이 한입 고이게 됩니다.
음식은 추억이기도 합니다. 음식만을 떼어 놓고 그 음식을 말할 수 없지요. 어떤 사람은 어머니의 손맛을 추억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한국전쟁 직후 원조식량으로 공급받아 어릴 적 학교에서 배급받아 먹었던 노란 옥수수 죽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황석영 작가가 세월 속에서 건져올린 추억의 맛을 풀어놓은 '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구나'에서 황 작가의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노티 한 점을 그리워하셨다는 것을 보면 우리 기억 속에 가장 오래 남는 기억도 혀와 코로 들어와 뇌리에 각인된 '맛'이지 싶습니다.
나는 각 팀들이 조리한 식단들이 궁금해 각각의 식탁을 순례했습니다. 삼겹살, 수제비, 비빔밥, 된장국... 게다가 어디서 구했는지 평양소주가 식탁 위에 오른 곳도 있습니다.
단원중에는 슬로베니아의 알프스 산자락, 이드리야에서 먹었던 이 추억을 황작가의 어머님처럼 일생의 마지막 기억으로 가져가는 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이 원정팀에서 사진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 단원들의 활동 일거수 일투족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것을 그날밤 원정팀의 밴드에 업로드하는 일입니다. 문제는 와이파이입니다. 하루 수백 장에 달하기도 하는 그 사진을 선별해 올리려면 짧게는 두 시간에서 많게는 네 시간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관건은 와이파이 환경입니다.
다행히 이 호스텔에서는 화이파이 환경까지 좋아서 사진을 올리고 이 글까지 쓸 시간이 허용되는군요. 빨리 이 글을 업로드하고 이 이드리야광산마을 새벽 안갯속으로 걸어들어가야겠습니다. 아내는 이미 방을 나섰습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홀로 다른 길을 걸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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