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30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과테말라에서 도미니카로 가는 비행 편이 낮 시간이므로 약 3시간 30분간의 비행시간이, 역사적으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이 지역을 항해한 이후 유럽의 식민지 확장과 해양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자연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해양 생태계를 자랑하는 카리브해를 조망하는 시간이 되길 원했다. 아내와 나는 좌우로 떨어진 창가 쪽 좌석을 지정해 구매했다.
이륙 시 구름 위로 올라가버렸지만 잠시 후 구름은 걷히고 스스로 드론이 된 것처럼 땅과 바다의 풍광을 버드 아이 뷰로 조망할 수 있었다.
과테말라 북동부, 온두라스 북서부의 지형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카리브해로 접어들었다. 메소아메리카 산호초 지대(Sistema Arrecifal Mesoamericano)와 스쿠버다이빙 명소로 유명한 우틸라(Utila) 섬, 로아탄(Roatán)섬, 구아나하(Guanaja) 섬 등의 바이아 제도(Islas de la Bahía)를 지나 한참을 날으자 레게 음악과 밥 말리의 고향인 자메이카(Jamaica) 상공이었다. 자메이카를 벗어나면 머지않아 아이티(Haïti)가 눈에 들어온다. 정치권력과 무장 갱단 세력 간의 극심한 대립으로 치안이 불안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여행경보 4단계(여행금지)가 발령된 곳이다. 하늘에서만이라도 아이티의 최서단, 안세 드 하이노(Anse-d'Hainault)에서 수도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까지 곳곳을 가슴에 담았다. 하루빨리 되풀이되는 비극이 걷히기를 바라면서...
히스파니올라(La Española) 섬(남한의 약 3분의 2 정도 크기) 서쪽의 1/3(남한 면적의 약 1/3 정도 크기)은 아이티, 동쪽의 2/3는 도미니카 공화국(남한의 약 절반 정도 크기)의 영토이다.
포르토프랭스에 눈을 팔고 있는 동안 금방 도미니카 영공으로 넘어왔다. 해수면보다 낮은 염호, 엔리키요 호수(Lago Enriquillo), 카리브해에서 가장 높은 피코 두아르테(Pico Duarte, 약 3,098m) 산이 한눈에 담겼다.
도미니카는 국토 면적의 약 80%가 산악 지역으로 국토를 순례하는 여정에서 대중교통을 활용하는 우리는 큰 산맥들의 규모와 위치를 파악해두어야 한다. 버스는 산맥 사이만을 운행하기 때문이다. 피코 두아르테를 포함한 국토 중앙의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코르디예라 센트랄 (Cordillera Central), 북쪽의 코르디예라 셉텐트리오날 (Cordillera Septentrional), 동쪽의 코르디예라 오리엔탈 (Cordillera Oriental)의 산맥을 가늠해 두었다.
비행경로상의 지도와 지상의 풍경을 대조하는 동안 비행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산토도밍고를 지나서 크게 바다 위를 선회한 비행기가 해수면에 닿을 듯 육지로 접근한다.
카리브해! 천국의 다른 이름처럼 뇌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이제는 그 땅 위에 새겨진 희극과 비극, 바다에 뿌려진 환희와 절망을 마주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