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33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한국을 떠나온 지 3년째로 접어들자 이제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마음이 편안하다.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떠나왔지만 그 시간이 중첩되면서 이제는 비일상이 일상이 된 것이다.
우리가 한국을 떠날 때 한 결심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10년간이라는 여정의 기간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10년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허들을 둔 이유는 장애와 불편을 통한 수행의 의도를 실현하고자 함이었다.
어떤 필요가 생겼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 보급 받고 다시 떠나는 방식으로는 어디에서나 늘 이방인의 태도와 감정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여행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리가 집'인 마음의 태도와 삶의 방식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동안 이 결심을 흔드는 많은 도전들이 있었다. '이곳은 치안이 문제인 곳'이니 '아들의 결혼식'이니,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니까', '신용카드를 분실했으므로', '스마트폰 기능이 불통이니' 등 어느 곳에서나 '귀국이 최선이다'라는 결론을 내야 할 일들이 무시로 일어났다.
머묾과 떠남의 경계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를 매일 결정해야 하는 우리는 '귀국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때마다 우리가 한 처방은 귀국 대신 '머물기'였다.
그곳이 어디이던 몇 주를 살거나 몇 개월을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곳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 듯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이너 서클(Inner circle) 속에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그 속에서는 귀국해야만 풀릴 것 같은 불편이나 필요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그곳에 살아보는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관계가 맺어지고 그 관계 속에서 신뢰가 싹트게 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불안은 늘 모르는 이면 때문이지만 그 이면에서 의심 대신 순수를 발견하게 되면 귀국해야 할 일들이 그곳에서 솔루션을 찾게 된다. 그 지역에서 모르는 것이 없는 내 관계 속의 사람들이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가족 생일에 함께했을 뿐이고, 수영 강습을 함께했을 뿐이고 사막 자전거를 함께 탔을 뿐인데 우리만을 위한 파티에 초대받고 수영 동료 아들 생일의 풀사이드 파티에서 그의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과 함께 수영을 하고, 사막 자전거 대회의 선수로 참가하게 되었었다. 폭력 남편에 대한 고민을 들어달라는 요청으로 몇 시간 부부로 함께 산다는 것의 고민을 나누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안티구아에서 5개월을 함께 보낸 월터는 수시로 안부를 물어온다.
"Hola, buenas noches, ¿cómo estás?(안녕하세요, 좋은 저녁이에요. 어떻게 지내시나요?)"
멕시코에서 9개월을 함께한 옥스나르가 한국의 어버이날에 맞추어 달콤한 인사를 보내주었다.
"Los extraño, papá y mamá.(어머니, 아버지 그립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SNS에 우리의 추억들을 올렸다.
어제 아내는 끼니 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에 다녀오는 중에 집 앞에서 소형 트럭 행상을 만나 수박 하나를 샀다. 시장 가방이 많이 무거워졌다. 그 가방을 본 1층 아저씨가 문 앞까지 그 가방을 들어다 주었다. 우리는 그 수박을 모두 먹을 수 없었으므로 수박의 반의 반쪽은 그 아저씨에게, 또 다른 반의 반쪽은 옆집 할머니에게 전했다. 할머니께서 아내를 잠시 기다리라고 당부한 뒤에 수박 접시에 귀한 강황을 가득 담아 주셨다. 건강에 좋은 것이니 꼭 음식에 넣어 먹으라고 하셨다. 할머니 덕분에 나는 매 끼니마다 강황 들어간 음식을 먹는 건강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누군가의 친구가 된다는 것의 시작은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감정의 교류가 시작된다는 것이고 관계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한국의 딸과 아들이 보고 싶은 만큼이나 우리가 지나온 길에서 강황 같은 구체적인 물성으로 각인되어 지워질 수 없는 정을 눌러 담아 주었던 모든 그들이 그립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점점 돌아가야 할 곳이 많아지고 있어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