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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의 '혼자서도 잘살기'

Ray & Monica's [en route]_336

by motif

부인보다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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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숙소 주인 리처드(Richard)는 캐다나를 떠난 지 35년이 지났고, 죽어서도 이곳 사마나(Samaná)에 묻힐 것이라고 말을 함에도 집안 곳곳에 그가 캐나다인임을 드러내는 갖가지 요소들이 있다. 방의 선반에는 작은 캐나다 국기가 놓여있고 때때로 '난 캐나다인'이라는 글귀가 두드러진 티셔츠를 입는다.


그는 고향인 퀘벡주의 공식 언어인 프랑스어 외에도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지만 아침 6시에 눈을 떠서 샤워를 하고 프랑스어 방송 7시 뉴스를 시청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고향은, 그리고 고향의 기억은 75세의 독신 남자에게도 이처럼 강력한 삶의 정서적 기반인 모양이다.


"부인이 행복하면 남편은 절로 행복하다"라는 말을 우리 부부에게 수시로 함에도 왜 스스로는 재혼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자신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한 번의 결혼으로 확실하게 알았다고 말한다.


"내게 제일 소중한 것은 자유다. 자유를 가장 으뜸의 위치에 두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모두 지엽적인 것이다. 지엽적인 것으로 생겨나는 여러 필요들은 어떻게든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부인이 행복하면 남편은 절로 행복하다'는 요소는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의 요소일 수 있지만 내게는 자유를 제약하는 심각한 조건이다. 실패로 배운 명백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음에도 다시 실패를 반복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2


우리는 그가 우리를 위해 조리를 하기 위해 주방을 바쁘게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즐긴다. 아내가 무어라도 돕기 위해 제안을 하거나 우리가 먹은 접시의 설거지라도 하겠다고 하면, 그런 이유라면 '내 주방 출입 금지'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자신이 담당한 일에 관해서는 스스로 하는 것을 자부심으로 삼는 사람이기도 하다.


낮에 시내에서 바이크를 탄 그를 마주쳤다. 내일 아침거리 시장을 보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역시 홀로인, 그러나 바이크보다 큰 덩치에 작은 헬멧을 쓴 그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그가 홀로도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마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기는 성격에 기인한 면도 있지 싶다.


약속된 아침 식사 전에 그에게로 가는 이유는 그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다. 내가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면 한 번에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이 버거운 그는 조리를 하면서 답을 하지는 못하지만 우선 하던 조리를 하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멈춘뒤 돌아서서 나와 눈 맞추고 답을 한다.


"맞아. 내가 이 나이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 아주 젊었을 때 사진에 흥미가 있어서 잠시 카메라 숍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손님으로 방문한 한 중년 작가가 내게 카메라의 모델들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었어. 그래서 내가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말했더니 이런 말을 해주었어. '매일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날이 있다면 그날은 하루를 낭비한 날이 될 것이다.'"


#3


오늘 아침에는 색다른 메뉴 하나가 추가되었다.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너를 위해 이것을 준비했어. 영어로 'French Canadian Baked Beans'라고 하는데 간단히 'Brown Beans'라고 해. 퀘벡에서는 '페블라(fèves au lard 베이컨을 넣은 콩 요리)'라고 말하지. 퀘벡의 전통요리거든. 조리에 시간이 엄청 걸려. 콩을 불려서 뭉근히 끓인 다음 소금 절인 돼지고기나 햄, 마늘, 양파, 소금, 당밀, 겨자을 넣어 오븐에서 저온으로 한 8시간쯤을 익혀야 한다."


우리는 리처드의 고향 음식을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콩요리를 이렇게 고기와 함께 달달하게 먹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경한 입안의 경험뿐만 아니라 그가 지난밤부터 시작한 그의 8시간이 넘는 시간의 공력에 대한 감격으로 감성이 지배하는 아침식사가 되었다.


그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몇 년 뒤에도 그가 생각날 것 같다. 식탁에서 일어서면서 이별할 때 해야지,라고 마음먹었던 말을 해버렸다.


"혼자서도 잘 사는 법을 알려주어서 고마워."


어떻게 알겠는가. 혹시 지금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내가 홀로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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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의삶 #사마나 #도미니카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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