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55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멕시코시티 남쪽에 위치한 소치밀코(Xochimilco)는 다채로운 원색의 페인트로 장식한 전통 나무배인 트라히네라(trajinera)를 타고 사공이 긴 장대를 사용하여 배를 조정하는 운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거나 일행들과 선상파티를 즐길 수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생일이나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날에 배를 빌려 축하하는 이벤트가 이곳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외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멕시코시티의 사람들도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음식, 술을 마시며 마리아치의 음악으로 하루를 즐기는 피크닉 장소로 유명해지면서 복잡하게 뻗은 운하는 거의 천 대가 넘는 트라히네라로 뒤덮인 모습이 되었다.
평평한 바닥의 나무 배인 트라히네라는 아즈텍 시대부터 농업활동과 물자 운송에 사용되어오던 배로 20세기 중반부터 관광객이 소치밀코를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각 배에 여성의 이름을 붙이고 생화로 장식하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비용이 많이 드는 생화 대신 페인트 장식만 남게 되었다.
보트 내부에 긴 테이블과 양편에 의자가 놓인 트라히네라와는 달리 찰루파(chalupa)라는 작은 배가 있다. 전통적으로 1 , 2명이 탑승해 운하를 건너거나 작업을 수행하던 배로 지금은 조리도구를 싣고 다니면서 음식을 조리해팔거나 기념품을 파는 주민의 생계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2
나는 소치밀코가 기대하는 관광객과 다른 이유로 관광객이 뜸한 평일을 택해 소치밀코를 방문했다.
아즈텍 문명이 건립될 당시 현재의 멕시코시티 지역은 거대한 텍스코코 호수(Lago de Texcoco)의 일부였다. 평균 해발 2,200m의 고산 분지인 멕시코 분지(Valle de México)에 위치한 이 지역은 중심에 위치한 가장 큰 텍스코코 호수를 포함한 줌팡고(Lago de Zumpango), 살토칸(Lago de Xaltocan), 소치밀코(Lago de Xochimilco) , 찰코(Lago de Chalco)의 다섯 개 호수가 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상 비와 눈으로 내린 모든 물이 바다로 흘러나갈 수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호수를 형성했다.
히스패닉 이전(기원전 2500년 ~ 서기 1521년) 우기에는 텍스코코 호수의 길이가 최대 600km, 수심은 최대 11m에 달했다. 이 지역 거주자들은 호수들의 환경 특성을 파악하고 적응하면서 순응해왔다. 호수의 얕은 곳에 인공 섬을 만들어 농사를 짓거나 마을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아즈텍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은 이 텍스코코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섬들 위에 세워진 도시였다. 당시 도시면적은 8~13.5㎢로 여의도 면적보다 조금 더 넓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멕시코 정부에서 독립국가로서의 자존을 세우는 정신을 담기 위해 세운 멕시코시티의 '국립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ía)' 한 벽면을 가득 채우는 크기로 텍스코코 호수 위의 테노치티틀란이 정교한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다.
1521년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한 콘키스타도르(Conquistador)들은 이 호수들을 발전의 장애로 여겼다. 물을 배수하고 땅을 넓혔으며 그 결과는 오늘날 멕시코시티의 지반이 침하되고 물 부족 문제를 야기하는 단초가 되었다.
스페인 정복 직후 아즈텍의 템플로 마요르 신전과 피라미드를 파괴한 위에 건설된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탄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de la Ciudad de México)이 지속적으로 침하하여 벽과 지붕에 균열이 생기고, 기둥이 기울어지는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호수가 주었던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혜택들은 사라지고 호수와 함께 만들어진 전통과 정체성도 소멸되어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멕시코 정부는 텍스코코 호수를 복원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멕시코시티의 동쪽 습지로 남은 텍스코코 호수의 일부를 '텍스코코 호수 생태 공원(Parque Ecológico Lago de Texcoco)'으로 지정해 지역 동식물 복원뿐만 아니라, 레크리에이션, 환경 교육을 포괄하는 도시공원으로 2024년 개관했다. 사실은 이곳도 신멕시코시티 공항(NAIM) 건설 예정지였으나 2022년 공항 건설이 취소되면서 대규모 환경 복원과 생태공원 조성 프로젝트로 전환된 곳이다. 여전히 복원 노력이 행정의 우선순위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텍스코코 호수의 소멸을 안타까워했던 이가 물이 다시 흘러들어갈 공간이 생긴 것에 대해 이렇게 감격한다.
"El agua del lago de Texcoco que dio lugar a tantos mitos y deidades, que alimentó y dio trabajo a muchas generaciones, esa agua que finalmente desecaron, hoy vuelve a estar presente en este parque(수많은 신화와 신들을 탄생시켰고, 여러 세대에 걸쳐 식량과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으며, 결국 말라버렸던 텍스코코 호수의 물이 오늘 이 공원에 다시 나타났다)."_돈 라파엘(Don Rafael)
#3
다섯 개의 호주 중에서 규모가 축소되었지만 원래의 호수 형태가 남아 있는 호수는 소치밀코와 찰코이다. 지금은 매립되거나 고갈되어 버린 텍스코코, 줌팡고, 살토칸 호수가 기수(汽水 ; 용해된 염분이 있는 물)였던 것에 반해 소치밀코와 찰코는 담수로 현재에도 농업용수로서의 역할을 미미하게 하고 있다.
소치밀코는 아즈텍 시대부터 이어진 ‘치남파스(Chinampas)’라는 수상 농업 방식과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멸종 위기에 처한 아홀로틀(axolotl 멕시코 도롱뇽)과 같은 생물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대도시의 경계에서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치남파스(Chinampa)는 아즈텍 문명에서 사용된 전통적인 농업 방법으로, 얕은 호수나 습지에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비옥한 농경지를 말한다. 아즈텍 원주민 언어인 나와틀어로 '갈대로 둘러싸인 땅'이라는 의미처럼 얕은 물에 말뚝을 박고 갈대로 엮어 수면 아래에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진흙, 식물 퇴적물 등을 쌓아 올려 떠 있는 인공 섬을 만든 뒤 그곳을 농경지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 인공섬의 가장자리에는 아후에호테(Ahuejote 토종 버드나무)를 심어 호수 바닥에 뿌리를 내리도록 해 토양을 고정하고 경계를 안정화시켰다.
소치밀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도와 치남파스 농업에 종사하고 지금은 트라히네라로 가족 사업을 하고 있는 78세의 모랄레스(Morales) 어른에게 이 도시의 정체성 변화와 전통의 유지와 상업화의 갈림길에서의 고민을 들었다.
"치남파스의 기원과 형성의 바탕은 많은 양의 물입니다. 사람들은 점차 섬과 치남파스를 확장했고 그 결과 물보다 땅이 많아졌습니다. 결국 호수의 물이 줄어 수로가 되고 수로는 도시화로 오염되었습니다. 기후변화로 비가 오지 않거나 내린 빗물도 제대로 보존할 수 없어서 물 부족 현상의 국가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곳 생태보호구역 내에서라도 여전히 채소와 꽃이 재배되고 있다는 것이 실낱같은 희망입니다. '꽃의 땅'이라는 뜻의 소치밀코에서 꽃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도시의 침범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는 위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찰루파(chalupa)를 타고 수로망과 주변 치남파스를 답사하면서 모랄레스 어른의 우려를 확인했다. 1993년 개장 후 대대적인 환경 복원 사업이 진행된 소치밀코 생태공원(Parque Ecológico de Xochimilco)과 치남파스의 농업적, 생태적 가치를 설명하는 박물관(Museo Flor de Chinampas)을 방문해 행간의 의문을 풀었다.
무궁무진한 멕시코 문화의 다양성과 장대한 자연의 매력에 빠져 4번의 입국과 14개월간의 체류를 통해 현장과 박물관을 답사하고 로컬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나의 이 멕시코 여정은 잿빛 현실과 조우하는 일이 더 많아지더라도 결코 끝내고 싶지 않다.
#소치밀코 #치남파스 #Chinampas #아즈텍 #멕시코시티 #텍스코코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