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73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서울의 위도가 북위 약 37도인 반면, 밴쿠버의 위도는 49도이다. 서울보다 12도 정도 북쪽에 위치한 지역의 특성상 두 도시의 기후와 낮 시간의 길이 등 여러 자연환경이 차이를 보인다.
밴쿠버처럼 북반구 중상위도 지역에서는 하지 때 낮이 약 16시간 정도로 매우 길고, 동지 때는 대략 8시간 정도로 매우 짧아 계절에 따른 낮 시간 차이가 크다.
밴쿠버는 해양성 기후로, 바다의 영향을 받아 토론토보다 약 5.6도 더 북쪽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겨울철 평균 기온은 약 2°C에서 8°C 사이로,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드물다. 밴쿠버의 여름은 평균 기온이 14°C에서 24°C 사이로, 쾌적하고 온화한 날씨가 지속된다.
밴쿠버의 여름철, 특히 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의 기간 동안 일몰 시간이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다. 이는 다양한 야외 활동을 즐기기에 최적의 환경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방문자일지라도 밴쿠버에서 밴쿠버 라이트(Vancouverite ; 밴쿠버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은 사람은 원시림 같은 공원에서 하이킹을 하거나 다운타운의 중심도로까지도 넓은 폭을 할애해 자전거 양 차선을 만든 도시를 자전거로 달려보아야 한다.
#2
밴쿠버는 자전거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도심을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자전거 우선 정책’을 매우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대표적인 도시이다.
밴쿠버시는 2040년까지 대중교통, 자전거, 걷기를 이 지역을 이동하는 가장 편리한 수단으로 만들기 위해 도시 내 이동의 ⅔ 이상을 보행·자전거·대중교통으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전거 네트워크와 교육, 도로 법령 등을 개선하고 물리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자전거 길인 '전용 자전거 도로', 도로 내 자전거 차로를 시각적 혹은 물리적 장벽으로 자동차 도로와 분리한 '분리형 자전거 도로(Protected Bike Lanes)'를 대폭 확장해 자동차와의 잠재적 갈등을 줄이며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높이고 있다.
자전거 구간의 끊김 없는 연결을 위한 '연결성(Connectivity)'를 높이는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인구는 올해로 약 300만 명이 넘어선 메트로 밴쿠버(21개 자치시, 1개 선거구, 1개 조약 체결 퍼스트네이션 지역으로 구성돼 있으며, BC주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 지역에 거주)에 대한 'State of Cycling(자전거 이용 현황)'의 2024년 보고서(자전거 도로와 관련된 인프라 개선 및 자전거 이용 촉진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고 있는 대중교통기관인 TransLink와 비영리 단체인 HUB Cycling의 협력 작성)에 따르면 2023년 현재 자전거 네트워크가 4,870km로 확장되었으며 메트로 밴쿠버 주민의 거의 69%가 '편안하게(Comfortable for Most)' 주행할 수 있는 차량 통행이 완전히 차단된 자전거 도로에서 400m 이내, 또는 제한 속도와 교통량이 낮은 공용 도로에 거주한다고 한다.
안정성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차량과의 분리 외에도 교차로를 개선하고 회전 제한 등을 도입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자전거도로에 자동차가 1분이라도 멈추면 $200 벌금이 부과된다. 2024년부터는 안전 통행 거리 규정이 추가되어 자동차가 자전거 이용자 및 기타 취약한 도로 이용자를 추월할 때 최소 1미터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제한 속도가 시속 50km를 초과하는 고속도로에서는 이 거리가 1.5미터로 증가한다. 이 법은 좀 더 안전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법으로 강제되는(must follow) 사실이라는 것을 홍보 중이다.
https://www2.gov.bc.ca/.../road-safety.../vulnerable...
어린이, 노인, 자전거 초보자 등 누구나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완충지대와 휴게시설을 설치하고 신호체계를 개선하는 '모든 연령·능력대(AAA: All Ages and Abilities)'를 위한 설계를 지속하고 있다.
더불어 TransLink 등 대중교통망과의 연계, 공공 자전거 주차장, 공유 자전거 서비스(Mobi), 자전거 대여 등 ‘마지막 1마일’(Last Mile)'의 해소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3
우리는 자전거 마니아인 Barnabas Choi 선생의 가이드로 두 번째 자전거 라이딩에 나섰다.
첫 번째의 경우는 편도 3km 거리의 자전거 전용도로 왕복과 센트럴 파크에서 2시간 자유롭게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스탠리 파크까지 편도 19km를 타고 다시 워터프런트역까지 6km를 되돌아 나와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로 밴쿠버 도심을 비롯한 존재하는 모든 자전거길의 형태를 체험할 수 있는 라이딩 코스였다.
출발 전에 우리가 작용한 안전장구 일체를 점검했다. 헬멧의 사이즈가 적절하고 턱 끈을 헐겁지 않도록 조였는지, 바람, 먼지, 돌멩이 등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고글과 넘어졌을 때 손을 보호하는 장갑, 팔꿈치 보호대를 살폈다.
자전거의 안장 높이와 앞뒤 위치 조절을 하고 출발과 정지, 기아 변속을 연습하고 도로로 나섰다.
밴쿠버의 여름은 야외활동에 최고의 환경이다. 하늘은 미세먼지 없이 투명하고 햇살은 부드럽다.
아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종주했고, 멕시코 서부의 사막자전거대회에도 출전하고 심지어 남미의 안데스산맥의 도로를 자전거로 달려보았던 경험이 있었으므로 문제는 수십 년 만에 안장에 다시 오른 나였다.
아무리 '모든 연령·능력대(AAA: All Ages and Abilities)'를 위한 설계라고 하지만 그 도로를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었다. 선수급의 상급자, 전기자전거, 전동 킥보드 등이 과속으로 추월할 때 위협을 느꼈다. 과속은 자전거에서도 큰 공포였다.
양 차선 자전거길이지만 반대 차선의 라이더가 추월하기 위해 차선을 넘어올 때와 역주행하는 경우를 대면하는 일 또한 섬찟한 두려움이었다.
두 번의 넘어지는 경험을 통해 도로 표면을 살피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방향을 전환하기 훨씬 전에 적절한 수신호를 보내는 연습이 필요했다. 체인이 벗겨지고 안장이 헐거워지는 경험을 통해 최소한의 정비기술에 대한 필요를 절감했다. 앞 주행자를 따라가는 것에 열중한 나머지 한 번의 정지신호를 보지 못하는 실수를 했다.
반면 지난번보다 출발과 정지가 훨씬 수월해졌고 기어 변속이 자유로워져서 긴 오르막도 내리지 않고 주행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밴쿠버의 중심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만을 달리며 바라보는 바다 너머의 풍경과 번화한 다운타운 밴쿠버를 자전거로 달리는 기분은 마치 밴쿠버라이트가 된듯한 차오르는 감흥이 일었다.
오리들의 도로 횡단을 양보하고 자전거를 멈추고 그들을 안전한 횡단을 지켜보는 것도 동물과 사람의 공존에 대한 행복한 경험이었다.
보도나 횡단보도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코끼리 발(Elephant's Feet)'표시가 있는 곳은 예외이다. 흰색 사각형 무늬 점선으로 배열된 도로 위 표시가 코끼리 발자국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이 표시가 있는 횡단보도에서는 자전거 이용자가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탄 채로 횡단할 수 있다.
*Cycling & Traffic Skills
https://bccycling.ca/cycling-traffic-skills
체력이 소진되거나 날이 어두워졌을 때 쉽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가할 수 있다는 것은 편리했다.
주거지와 공원, 도심과 해안을 지나는 25km 자전거 주행에서 한 번도 자전거 연결 도로가 끊기기 않았다.
#4
우리는 False Creek의 그랜빌 아일랜드(Granville Island)에서 라이딩을 멈추고 퍼블릭 마켓의 간식과 커피, 거리공연과 갤러리 방문을 즐겼다.
False Creek은 코울 하버(Coal Harbour)와 함께 1980년대 이후 밴쿠버에서 발전한 독특한 도시계획 및 건축 현상을 일컫는 밴쿠버리즘(Vancouverism)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밴쿠버리즘은 주거, 상업, 공공 공간이 혼합된 형태로, 고층 주거 타워가 낮은 상업 건물 위에 세워지는 구조로 도심 내에서 다양한 기능이 공존하도록 한다. 이 모델은 대중교통의 의존도를 높이고 도시 내 녹지 공간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며, 조망권을 보장하는 경관 축(view corridor)을 설정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차량 사용을 줄이고 녹지 공간과 경관을 보존하는 이런 도시계획 이론과 건축 철학이 매우 오염된 산업용지가 밀집한 지역이었던 False Creek과 Coal Harbour를 고밀도 주거 타워와 공공 공간, 수변 지역의 조화로운 개발을 통해 구현된 대표적 도시 재개발 사례가 되었다.
이곳을 차가 아닌, 자전거로 와서 창작자들의 공방과 갤러리, 라이브 음악 공연을 즐기는 문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쩔 수 없이 본존 대신 개발을 택해야 한 선택 앞에 무슨 고민을 하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얻게 되었다.
가장 다행인 것은 밴쿠버 사람들은 자전거를 활동적이고 건강한 교통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이용할 때 지역 사회가 더욱 행복하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메트로 밴쿠버 주민들에게 자전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자전거가 우리의 일상을 버티는 것에서 즐기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내게 밴쿠버에서 자전거 타기의 경험은 도시에서 내속의 창의적인 영혼을 깨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