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97
밴쿠버 인문학 사랑방의 '공부'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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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가위에도 온 가족들과 함께 더 화목해진 시간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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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가 머물고 있는 캐나다 밴쿠버는 한국보다 16시간 느린 시간대(3월 9일-11월 2일 서머타임 적용)이므로 한국은 이미 추석날이 지났지만 이곳은 오늘이 추석입니다. 저희를 호스팅 해주고 계신 황지숙 어르신께서는 어제저녁 명절 식사로 스테이크와 밴쿠버 로컬 맥주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중추절 먹는 음식은 달라도 마음속 가득한 감사와 가족의 화목에 대한 간절한 소망은 매한가지였습니다. 우리 어릴적 밥상은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세대 간의 가치와 지혜가 오가는 통로였습니다.
한가위 명절의 한 밥상에 모이는 시간을 통해 속도를 늦추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감사와 나눔의 귀한 시간 되시길 소원합니다.
더 화목해진 시간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_밴쿠버 Port Coquitlam에서
이안수·강민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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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밴쿠버 교민들의 공부모임인 '인문학 사랑방'으로부터 '인생과 여행'이라는 주제로 우리 부부의 나라밖 순례 기행에 대한 강연을 요청받았다.
지난 10월 3일, 저녁 7시, 2강 중 첫 강의가 버너비(Burnaby)의 한 미팅룸(The City of Lougheed - Tower ONE)에서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일과로 나쁜 낮 시간을 보낸 뒤 주어진 귀한 저녁 시간을 배움에 할애하는 회원들의 열정에 저희 부부가 감읍한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모든 편의를 아낌없이 베풀고 계신 황지숙 어르신께서 다음날 아침, 공부모임 커뮤니티 방에 오른 소감문을 보내주시며 강의를 준비하면서 쌓인 피로를 풀라고 하셨다.
"하늘문 열리는 날.
'하늘이시여 제발 문을 여시고 우리를 끌어올려 주십시오'
한 사람의 생애는 하나의 도서관과도 같다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오늘 커다란 도서관의 문을 열어 주셔서 세계와 사람들에 대한 신비와 동경을 더욱 느끼게 되었습니다. 치열하면서도 인정 넘치는 이안수· 강민지님의 인생 여정에 감동과 함께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문을 여는 것은 결국은 사람을 통해서 일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살아가며 풀어 나가야 할 숙제를 진지하게 공부하며 실현해나가는 좋은 선생님이자 동지를 만나게 된 것을 커다란 행운으로 여깁니다. 17일에 있을 제2강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이안수와 강민지 두 선생님의 인생 여정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민지 선생님의 암벽등반 장면에서 고등학교 시절 산악반에서 Top(암벽등반에서 맨 앞에서 올라가는 자)을 섰다가 10여 미터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아찔한 순간 동료들과 자일의 도움으로 살아난 일. 그런 관계에서 유지되는 이안수 선생님이 말씀하신 구성원들 간의 그 끈끈한 유대감.
아드님이 공부했다는 North Dakota(제가 공부했던 Manitoba 주 Winnipeg에서 차로 3시간 남쪽)를 언급할 때 유학 시절의 꿈과 낭만.
Boston을 여행할 때 들렸던 Walden 호수와 HD Thoreau가 머물렀다는 그 자그마한 집을 보며, 그의 저서 <Walden>을 상기하던 일. Cape Cod와 Bush가에서 자주 간다는 그 허름한 시골의 Lobster 식당의 추억... 그리고 얼마쯤 동쪽으로 New Hampshire와 Main 주의 시골 풍경과 순수한 시골 사람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섹션에서 말씀하신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에서 며칠 전 어느 소설가의 에세이에서 읽은 그 제목,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재음미. 사마천은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털보다 가볍다'고 했다지만, 나의 삶이 가장 힘들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무게의 차이는 다소 있을지라도 우리네 삶은 역시 치열하고 무겁지만, 죽음은 재나 깃털처럼 가볍지 않을까?
두 선생님의 멋진 후속 강의를 기대합니다."
이 격려의 글들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행간에 담긴 많은 의미들을 유추할 수 있었다.
내 부모 세대가 통과해온 시대의 한국인은 한국전쟁의 당사자로 목숨을 나라에 내놓았고 살아남은 자는 폐허에서 다시 삶을 일구어야 했다. 생의 처음과 끝이 모두 삶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란 우리는 아시아 작은 나라의 공간의 한계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속도와 밀도의 집약성이 주는 압박과 함께 정치적, 문화적 제약에 희망보다 절망이 더 가까웠던 날들이었다.
용기 있는 사람들은 그 지경을 벗어나 과감히 태평양을 건넜다. 그리고 100배 더 넓은 땅에서 새롭게 가능성을 일구었습니다.
우리가 미국과 캐나다를 순례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그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거나 그다음 세대 사람들이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곳'이나 경쟁보다 개인의 가치 실현이 먼저인 '저곳'이나 개인이 감내해야 할 것들은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2
황지숙 어르신과의 식사시간은 한국에서도 점점 드물어지고 있는 가족 간의 소통 장소로서의 밥상 역할이 복원된 시간이다. 그 시간은 일상에서 건져올린 지혜가 오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제 강의 준비로 쌓인 피곤을 푸시라고 떡만둣국을 준비했어요. 그렇게 노고를 했는데 해장으로 몸도 해방을 시켜줘야죠. 입에 맞으시나요?"
"길 위에서 먹어볼 수 없는 메뉴입니다. 어르신 손맛을 곁들이니 숟가락을 뜰 때마다 입안이 천국입니다. 사람이 하는 노력 중에 바로 보상을 받는 일이 드문데 어르신이 곁에 계셔서 하나 주고 열을 받는 기분입니다."
"어제 '인생'강의에서 민지가 감당해온 삶을 보면서 누구나 각자의 길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지가 제 과거를 상기시켜주어서 더불어 저를 칭찬해 주었어요. 뒤돌아보니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제가 제 삶에 막 눈물겨운 거예요. '황지숙! 너 열심히 살았어. 너는 돈 1불도 없이 건너와 네 몸 하나 가지고 세상과 맞짱 뜬 사람이야.'하면서..."
32년을 잘 건너올 수 있었던 어르신의 힘을 유추해 보면 어려운 순간에도 배움의 태도를 놓지 않았던 지력의 힘이었지 싶다.
누구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나 형편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 벽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을 어떤 태도로 대면하는가, 일 것이다. 무질서의 상황 앞에서 더 큰 혼란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게 그 대상을 직시하면서 대적할 수 있는 용기와 종래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복원력은 공부로 생겨나는 것이다. 그 공부는 경험과 대화와 독서와 사유, 그 모든 것의 종합이다.
공부는 밤길을 가는 이들의 등불이다. 일생을 사는 동안 그믐날은 수시로 찾아오고 공부 없이 어찌 그믐날 밤 맞닥뜨리는 벼랑길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우리 부부도 밴쿠버 '2025 인문학 사랑방'의 앞 회 공부에 함께하면서 한진수 선생님의 '내가 만난 사람들_30회 동창회에서 인생에 대해 알게 된 것들', 정현초 선생님의 '건강 인문학_불면증에 대처하는 법', 양동호 선생님의 '파우스트의 구원' 등의 강의를 통해 낭떠러지 앞에서도 좀 더 안전할 수 있는 마음의 법을 익혔다. *사진 by 인문학 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