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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빛 들판, 이곳이 "어쩜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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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강한솔 · 그레이스 부부가 지은 천국의 한나절 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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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집과 가까운 숲을 흐르는 코퀴틀람 강(Coquitlam River)에서의 플로깅(Plogging)중에 한 부부를 만났다. 강한솔과 그레아스 부부. 부부는 이 플로깅을 시작한 원년 멤버이며 매월 한 번씩의 플로깅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궂은 역할을 맡고 있었다. 쓰레기를 담을 통과 집게를 회원들에게 나르고 끝나면 그 통을 세척하는 일까지...

황지숙 어르신이 이 부부를 디너에 초대했다. 함께한 그 식사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 이 부부의 관심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솔님은 조경을 생업으로 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져 다시 대학에서 지리와 환경을 공부하고 있다. 특히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에 대한 열망으로 1년간 모은 휴가를 모두 할애해 매년 한국의 사찰을 방문한다. 사찰에서는 새벽 4시에 기상 후 아침 예불로 시작해 좌선하고 저녁 차담과 명상 후 9시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스님과 동일한 수행 루틴을 따른다. 캐나다의 일상에서도 아침 좌선과 저녁 명상을 계속 중이다.

며칠 뒤 그의 집 앞을 지나다가 정원을 볼 수 있었다. 부부가 차가로 살고 있는 집의 정원을 집주인의 어떤 지원도 없이 홀로 가꾸고 있었다. 그가 정원 작업을 하면서 대체된 낡은 재료들을 재활용해서 정원이 아름다운 집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웃들은 그 정도의 정원을 조성하려면 몇천 달러 정도의 비용이 필요할 거라며 집주인의 행운에 대해 말했다.

수행이 주로 개인의 내면적 성장과 깨달음에 초점이 있다면 그는 수행의 범위를 인간과 자연 전체의 건강과 조화로 확장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왜 다시 환경에 대한 학문적 공부를 시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레이스님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즘 자주 눈물을 훔친다고 했다. 최근 career change로 보육교사(ECE, Early Childhood Educator) 교육을 받고 인턴으로 어린이들에게 직접 돌봄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마음을 접하면서 그들의 순수에 감동하는 일이 잦아진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이미 인생의 다양한 풍파를 경험한, 적당히 순수가 오염된 성인에서 종래 아이들의 마음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디너에 다녀간 며칠 뒤, 표고버섯 들깨죽을 끓여서 큰 솥째 가져왔다. 10인분도 넘을 영양죽을 뜨거운 상태로 전해주었다. 그녀는 남편이 사찰에서 수행 중에 먹었던 죽을 기억하고 남편을 위해 다양한 죽을 끓이다 보니 죽에 대해 전문가가 되었다.


#2


지난 토요일(10월 4일) 오전, 한솔님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아침에 아내와 피트메도스(Pitt Meadows)의 알루엣 강(Alouette River) 근처를 산책했어요. 근처 농장에서 크랜베리를 수확하고 있더라고요. 더 넓은 농장이 온통 붉게 변했습니다. 흔치않은 광경이니까 제가 그 풍경으로 모시고 싶은데 시간이 어떠세요?"

그가 말한 피터메도스 지역은 포트코퀴틀람에서 피트강을 건너 처음 만나는 곳으로 대부분 농경지로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다. 이 평야를 알루엣강이 가로질러 큰 강인 피트강을 만나고 피트강은 포트코퀴틀람시의 남단에서 프레이저강을 만나 태평양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보는 풍경은 주요한 습지 생태계인 피트-애딩턴 습지 야생동물 보호구역 (Pitt-Addington Marsh Wildlife Management Area)과 그 너머의 쌍둥이 봉우리가 특별한 골든 이어스(

Golden Ears) 산군들이 강과 습지의 물에 투영되어 선경이 빚어지는 곳이다.

그곳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곤 하는 우리 집의 존(John) 어르신은 이곳의 모습을 기암괴석 봉우리들이 리강(漓江)과 함께 수묵화 풍경을 만드는 중국의 계림에 빗대어 밴쿠버의 계림으로 일컫곤 한다.

이런 절경에 10월 초에만 볼 수 있는 물 위의 붉은 크랜베리의 바다를 이룬 풍경이라니, 한솔 님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3


크랜베리(Cranberry)는 북미 원산의 작고 붉은 베리류 과일로 주스, 건과일, 잼 등 다양한 형태로 섭취한다. 새콤달콤한 맛과 풍부한 영양성분을 가진 슈퍼푸드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대량 생산된다.

서늘한 산성 습지환경에서 잘 자라는 덩굴성 식물이므로 피터메도스 지역은 크랜베리 생육에 최적지로 꼽힌다.

크랜베리는 독특한 수확 방법 때문에 수확 시기에 가장 큰 주목을 받는다. 낮고 덩굴 형태로 자라기 때문에 손으로 일일이 따기 어렵다.

제초기와 비슷한 수확 기계가 크랜베리 덩굴에서 열매를 떼어 낸 다음 손으로 직접 크랜베리를 주워 모으는 방식을 건식 수확법이라고 한다. 이 방법은 노동력이 많이 소모되므로 생과일로 소비되는 고급 시장의 공급을 위한 수확법으로 전체 수확량의 약 2% 정도만이 이 방법을 사용한다.

나머지는 습식 수확법을 활용한다. 열매 내부에 공기주머니가 있어 물에 뜨는 특징을 이용해 크랜베리 농장에 물을 가득 채운 뒤 특수 기계인 워터릴(water reel)이 오가면서 덩굴에서 열매를 떼어내면 크랜베리가 둥둥 물 위로 떠오르게 된다. 떠오른 크랜베리를 수확 기계가 모으면 된다. 수확 능률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열매가 상하지 않고 깨끗하게 수확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우리가 농장에 도착했을 때 농장마다 각기 다른 공정이 진행되고 있어서 크랜베리의 생육특성과 모든 수확 과정을 한나절만에 관찰할 수 있었다.

크랜베리가 익은 넝쿨에 가득 열매를 달고 있는 자란 환경 그대로의 농장과 수확을 위해 물을 채우고 있는 농장, 워터릴이 물속을 휘젓고 지나가며 열매를 따서 물 위로 띄우고 있는 농장, 그 열매를 수집하는 농장이 차례로 눈앞에 펼쳐졌다.

광활한 논이 갑자기 영롱한 진홍빛 루비가 뿌려진 호수로 변한 모습이라니... 누구나 이 광경 앞에서는 멈추어 설 수밖에 없다.

"어쩜 천국?"

말을 아끼는 한솔님이 처음으로 한마디 했다. 우리는 잠시 그곳을 다녀왔음에 틀림없다.


#4


캐나다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은 매년 10월 둘째 주 월요일로 미국의 11월 넷째 주 목요일보다 6주 정도 빠르다. 캐나다의 지리적 위치로 수확철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은 보통 9월 말에 시작하여 10월 초중순에 절정을 이루는 크랜베리 수확철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덕분에 신선한 크랜베리로 추수감사절 음식을 준비할 수 있다.

추수감사절의 가장 상징적인 칠면조 요리는 크랜베리 소스와 단짝으로 식탁에 오른다. 크린베리의 새콤한 맛이 칠면조 구이의 느끼한 맛을 잡아줄 뿐만 아니라 크랜베리의 붉은색으로 풍요와 축복의 의미를 담아낸다.

짧은 크랜베리 수확기간 동안 일부 농장에서는 밭을 돌러보며 수확 과정을 견학할 수 있는 ‘하베스트 팜 투어(Harvest Farm Tour)’나 방수 작업복(waders)을 입고 붉은 크랜베리로 가득 찬 밭에 직접 들어가 진홍빛 크랜베리 장관을 체험하는 '크랜베리 플런지(Cranberry Plunge)'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농장에서 돌아오는 길, 한솔 씨가 운전하는 그의 포드 F-350 XLT 픽업트럭 옆자리에서 한솔 씨의 마음을 읽는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왜 출발 시 승용차로 황 어르신의 승용차로 가자는 제안을 마다했나요? 이 차는 연비가 2배 이상 낮은 헤비듀티 작업용 차량이잖아요?

"저의 작업 특성상 돌을 비롯한 다양한 무거운 재료들을 실어야 해서 필요한 작업용 차량이긴 하지만 우선 안전해요. 상대의 실수로 승용차가 차선을 넘어와 이 차에 부딪쳤는데 그 차는 완파되다시피했는데 이 차는 충돌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 트림(Trim, 등급) 레벨은 픽업트럭을 좋아하는 캐나다 사람들도 잘 타지 않는 높은 사양에 속합니다. 이 차를 한번 경험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노래들이 전부 가을 나들이에 잘 어울리는 타이틀들이에요?

"며칠 전부터 이차로 한 번 모실 계획이었는데 그때부터 이 계절에 어울리면서 좋아하실만한 곡을 모았습니다."

단지 한번, 한 식탁을 나누었을 뿐인 이방인에게 이토록 무심한 듯 섬세한 마음을 내어 꽉꽉 채운 정성으로 하나라도 더 소중한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부부. 더 좋은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 부부의 마음속에 '어쩜 천국?'이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부부는 이 천국의 한나절 게스트가 된 것만으로도 참 행복했다.

전원을 지나오면서 한솔 씨가 조경에 참여한 몇 채의 저택을 지나쳤다. 그때 나무 뒤 들판에서 놀고 있는 두 마리의 블랙베어(American Black Bear)가 눈에 들어왔다.

"저 곰들도 한 가지라도 더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세심한 한솔 씨의 마음을 읽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이 한낮에 굳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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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랜베리 #플로깅 #블랙베어 #피트메도스 #포트코퀴틀람 #밴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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