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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비를 만나다

국경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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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비를 만나다

INTO THE WEST_58 | 국경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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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적도 기준 40,192km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사막의 쓰레기를 줍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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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조차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황량한 사막, 외길로 난 중앙선 없는 2차선 도로 옆에서 붉은 생명체가 움직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 생명체는 사람이었고 길가의 쓰레기를 줍고 있었습니다. 그의 긴 자루는 이미 탱탱하게 배가 불렀습니다.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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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크라스노야르스키(Krasnoyarsky District) 국경 검문소(Border checkpoint)와 카자흐스탄의 코티예프카(Kotyaevka) 국경 검문소 사이에는 키가시강(Reka Kigach)이 흐르는 10여 km의 완충지대가 있습니다. 물이 있으므로 초지가 형성되고 그 초지에는 각종 새들과 동물들의 터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 강의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에는 굴레를 쓰지 않은 말들이 한가롭습니다. 국경 사이에서 노니는 말들을 보니 '새옹지마(塞翁之馬)' 고사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구나, 싶습니다. 이 땅은 어느 나라 땅인지, 이 말은 누구에게 속한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새옹지마 고사 속 변방의 노인은 자신에게 속한 말이 국경을 넘어 도망쳐도, 도망쳤던 말이 암말 한 필을 데리고 돌아와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가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절름발이가 되어도 태연했습니다. 새옹지마 속 노인의 경지를 지향해왔던 나는 이 국경에서 다시 평상심을 생각합니다. 시간을 짧게 나누면 삶이 희극과 비극의 어느 한곳에 속한듯하지만 대지의 긴 시간으로 보면 그 두 가지가 결국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아홉 마리 새끼를 거두는 국경의 어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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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로로 국경을 넘는 것은 기다림이 전부입니다. 한 번은 14시간이 걸렸고 또 한 번은 10시간, 이번에도 8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작 일어났다 사라지곤 하는 상념들을 쫓는 수밖에요. 그런데 내게 그 시간이 수양입니다. 그 상념을 따라가다 보면 무서운 각종 경전들의 구절이 이해가 되어요. 어렴풋하던 명제들이 뚜렷해지기도 하고 뚜렷했던 명제가 다시 흐려지기도 합니다. 그동안 배운 지식과 공들여 찾은 정보들이 한낱 무용지물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노인의 한마디가 끝없는 반론을 뒤엎는 논리적이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아한 귀족인 양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던 자존이 국경의 양국가를 오가며 물어온 쓰레기통 속의 쉰 만두 조각 하나를 소화해 젖을 만들어 9마리의 새끼를 거두는 어미 개에게서 멈춥니다. 갈비뼈의 굴곡이 드러나는 뱃살 아래 마른 젖을 물리는 어미 개의 휭한 눈에 굴복하고 맙니다.



국경의 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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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패스포트 컨트롤의 입국심사관이 여권 속의 내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보는 중에 내 옆의 낡은 에어컨이 눈물방울처럼 떨어뜨리는 에어컨 실외기의 물로 목을 축이는 참새 십여 마리를 곁눈으로 살폈습니다. 그가 튼 에어컨이 생명을 살리는구나 싶어지니 나를 의심하는 그의 눈초리가 밉지 않습니다.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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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사막을 타박했습니다. '구름이 없었다면 이 지평선 위의 별빛들이 얼마나 영롱할까?' 싶었습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사막의 까만 밤에 요정이 큰 램프에서 쏟아놓은 은하수들을 생각했습니다. 사막을 달리는 동안 물이 말라 소금기만 남은 흰 염호들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기대를 배반하는 비가 내렸습니다. 국경수비대에게 물었습니다. "How many times has it rained here this summer?올 여름에 이곳에 몇 번이나 비가 내렸나요?", "First time. 처음입니다."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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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을 높이는 집은 부잣집들입니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울타리를 칠 필요조차 못 느끼지요. 국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나라로 들어갈 때의 국경은 삼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모두를 잠재적 불법체류자로 보고 입국심사를 합니다. 근무자들도 포커페이스입니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의 국경은 전혀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표정이 있습니다. 국경 심사 책임자가 나와서 내 수염을 보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세관 근무 아가씨가 통관 후 달려와 한국에서 왔는지를 묻고 함게 사진 찍기를 청합니다. 이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우리나라 참외보다 열배는 큰 노란 참외 몇 덩이를 실은 수레. 자루에 담아 진 등짐, 보자기에 싼 봇짐 몇 개. 국경에서 이고 지고 입국심사대 앞으로 향하는 그들을 보면서 '아버지 삶의 무게'와 '어머니 삶의 무게'를 느낍니다. 세관 심사를 위해 풀었던 짐을 다시 묶는 낡은 트럭 드렁크에 마침 올여름 처음이라는 비가 내립니다. 아이의 플라스틱 트럭 자동차가 젖얼까 보아 얼른 회색 방수포를 덮는 아버지. 디아스포라로 살 수밖에 없는 이들 가족의 처지를 내가 어찌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첫닭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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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위의 도로에서 내비게이션은 이렇게 안내합니다. 364km 후 우회전, 그 후 네비의 음성안내는 몇시간을 침묵합니다. 마침내 우회전구간에 당도하면 또다시 '47km 직진'을 안내합니다. 도로는 노면파손이 심해 곳곳이 포트홀입니다. 차들은 마치 지뢰밭같은 포트홀들을 피하기위해 도로 밖으로 차를 몰아서 사막의 길은 길밖의 길을 쫒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런 노면 상태에서 차는 유모차 속도가 됩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 아침 5시 10분. 방에 백팩을 내려놓자 닭 울음소리가 창문을 넘어옵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아내는 벌써 잠들었고 그 침대 위에 아침햇살이 내려앉았습니다.


사막의 호텔


어젯밤 전력이 고르지 못해 불빛이 깜박이고 찬물도 더운물로 아닌, 찬물과 더운물이 몇 초 간격으로 교대로 뿜는 샤워기에 몸을 담금질한 호텔의 주인이 아침에 호텔의 홍보영상을 찍고 싶으니 호텔 숙박의 경험을 말해달라는 그의 핸드폰 앞에서 아직도 화끈거리는 피부의 기억은 바로 잊힙니다.

"모래바람만이 가득한 이 사막의 길 위에 이 호텔이 있어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이 호텔이 아니었다면 전 사막의 여우들이 먹이는 찾는, 지척을 구분할 수 없는 광야에서 밤을 보내야 했을 겁니다. 부부의 선한 눈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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