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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을 좋아하는 나라는 없더라고요.”

길 위에서 만난 사람_2 : 키르기스스탄 '문화정보스포츠청소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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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THE WEST_64 | 길 위에서 만난 사람_2 : 키르기스스탄 '문화정보스포츠청소년부' 소유즈백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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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함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적도 기준 40,192km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가 집중하고 있는 일중의 하나는 문화교류입니다. 그중에서도 개인과 개인의 교류는 물론 마을과 마을의 교류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개인 간의 교류처럼 친밀하지만 개인이 도달할 수 없는 범위까지 포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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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에서는 중앙정부 문화부서로부터 초대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9월 15일, 키르기스스탄 문화정보스포츠청소년부 소유즈백(Nadyrbekob Soiuzbek) 차관께서 비슈케크의 청사로 초대해 예술가들의 실연으로 키르기스스탄의 음악과 악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특히 키르기스스탄의 구전민족서사시인 '마나스'의 소개는 특별한 문화경험이었습니다. '마나스'는 키르기스스탄의 역사와 정신적 토대가 되는 무형문화로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보다도 20배 이상 긴 50만 553행입니다. 이 마나스 서사시를 읊는 사람를 마나스치(Manaschi)라고 하는데 이날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어린이가 실연을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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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스치는 3일 혹은 1주일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자지도 않고 계속 노래를 이어서 한 적도 있습니다. 특히 이 시를 외어서 암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나스치가 되는 것은 되고자해서가 아니라 영적으로 아파서 시작합니다. 몸이 아픈데 병원에 가도 아무 증상이 없는 거죠. 마나스를 해야 비로소 아픔이 가시는 거예요. 어떤이는 꿈속에서 메시지를 받아서 마나스치가 되기도합니다. 현재는 마나스치가 많지는 않지만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습니다. 오늘 노래해 줄 아이는 8살입니다. 마나스를 시작하면 2시간, 3시간 계속합니다. 그래서 옆에서 그만하라고 해주어야 합니다. 이 아이도 외어서 마나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것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


https://youtu.be/lUShjPXKTIw


차관님은 이어서 고무수라는 전통악기를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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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수는 줄이 3개입니다. 고무수를 칠 수 있는 사람은 기타를 칠 수 있지만 기타를 칠 수 있다고 고무수를 칠 수 없습니다. 악보가 없기때문이죠. 고무수 연주와 관해 칭기즈칸과 관련된 얘기가 있습니다. 칭기스칸 아들이 죽었는데 그 안 좋은 얘기를 전하면 그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전할 사람이 고무스를 들고 칭기즈칸에게 나아가 연주를 했습니다. 그 슬픈 곡조를 듣고 칭기즈칸은 그 의미를 알아들었고 그를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https://youtu.be/uRDwK_Q97Tw


마나스나 고무수 연주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소유즈백(Nadyrbekob Soiuzbek) 차관이었습니다. 32살의 젊은 나이에 차관에 발탁되었으며 한국에서 유학한 이유로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했습니다.


직접 밝힌 소유즈백 차관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노력들은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청년들에게 희망이 될만했습니다. "



32살의 차관


"비시케크인문대학교(Bishkek Humanities University)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에서 2011년까지 1년 동안 한국 중앙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를 했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관광회사에 취업해 근무를 하다가 개인적으로 일을 해왔었습니다. 그 후에는 줄곧 정부일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정보스포츠청소년부에는 젊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장관님은 35살입니다. 5명의 차관이 있는데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 42살이고 그다음이 40살, 그다음이 34살, 그리고 제가 나이가 가장 적은 32살입니다. 대통령께서 젊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은 한국어를 많이 사용할 기회가 없어서 서툴러졌지만 통역도 했고 등산 가이드를 하면서 한국 분들을 모시고 키르기스스탄 산을 많이 돌아다녀서 한국어가 능통했었죠. 젊었을 때는...ㅎㅎㅎ 그래도 제 꿈 얘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바로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고향은 오시(Osh)라는 곳인데요, 이곳 수도까지 왔던 것은 가수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음대에 들어가서 1년을 공부했죠. 그리고 가수활동도 좀 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생각이 바뀌는 거예요. 다른 가수들과 끝없이 경쟁하는 것보다 가수들에게 더 좋은 무대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꿈이 바뀌었습니다. 노래는 취미로 두고 완전히 직업을 바꿔서 새롭게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역사책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유럽과 미국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아시아인데 아시를 더 깊이 공부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공부했죠. 특히 짧은 시간에 경제 부흥을 이룬 네 나라,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한국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감동을 많이 받은 것이 한국의 새마을운동이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나라에 접목시키려면 한국문화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고, 한국 사람처럼 생각해야지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한국사람처럼 생각하려면 한국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시험기회를 얻기위한 노력들


"좋은 대학에서 장학금 받고 공부하고 있었지만 친척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비를 내고 다른 대학으로 옮겼죠. 그리고 그곳에서 1년을 공부하니까 무조건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이 서더군요. 그래서 인문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처음으로 한국교환학생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1학년이 교환학생을 가겠다고 하니 시험을 볼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루에 네다섯번 학과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시험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만나 주지 않으면 버스정류장에서 학과장님의 퇴근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어떨 때는 학교에 일찍 가서 학과실 청소를 하고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시험 볼 기회를 얻는 것은 1차 관문이었죠. 시험을 보더라도 합격을 해야 하거든요. 두 명만을 선발하는 자리였습니다. 가고 싶어 하는 학생은 40명이 넘었고 3, 4학년에게만 응시자격이 주어졌던 거예요. 마침내 제게도 응시 기회가 주어졌고 저는 밤낮없이 한국어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버스에서는 듣기만 했고 집에서는 사람이 있고 없고 상관없이 바보처럼 계속 따라서 말을 했죠. 그렇게 6개월을 공부하고 2등으로 합격해서 한국 중앙대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혼자 살았어요. 개를 좋아했는데 저는 집 밖으로 나가서 개랑 얘기를 계속했죠. 개가 대답을 해주지 않았지만 상대가 있다는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인이 집으로 개는 들어오지 못하게 했어요. 그래서 고양이를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들였죠. 그때부터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었고 방안에 움직이는 상대가 있으니까 계속 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잘 일어났습니까?', '식사하십시오!' 등.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오니까 조금씩 꿈을 향한 길이 열리더라고요."


그림을 그려도 호랑이를 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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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려도 호랑이를 그리라고 하더라고요. 잘 안되면 고양이라도 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라를 바꾸겠다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나라의 시스템은 자동차랑 똑같죠. 그 자동차가 고장 나지 않고 잘 가게 하려면 운전수가 중요하거든요. 그렇게 준비를 계속하니까 저절로 꿈으로의 길이 열리더라고요. 아는 사람도 없고, 밀어주는 친척도, 돈도 없었지만...


키르기스스탄 전체를 포괄하는 청년봉사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멤버가 5첨명이 넘는데 모든 국가행사들에 저희가 참여해서 봉사를 했죠. 길이 열려서 국회에 들어가서 국회의사당에서 일했고 그 다음에는 체육분야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이곳에 차관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보다시피 제가 다리를 다쳐서 목발을 짚게 되었습니다. 국가가 제게 주는 관용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고치려고 보니까 3천 달러 정도가 드는 거예요. 새로운 차도 2천 달러면 살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고장 난 옛날 차를 위해서 돈을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거죠. 그래서 제 관용차 고치는 것을 거절하고 다른 차를 주면 타겠다고 하고 오토바이를 탔습니다. 그런데 제 옆을 다른 차가 쳐버린 겁니다. 두 달 병원에 입원했다가 지난주부터 출근하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머리도 다치지 않고 다리만 다친 것에요. 그래서 이것이 제게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습니다. 딸이 한 명 있는데 늘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가니까 딸이 크는 것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딸의 친구 같은 아빠가 되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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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저를 많이 도와주신 아시아사랑나눔 김종구 총재님이 계세요. 주한키르기스스탄 대사관 명예영사님이고요. 그분께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영등포 을' 선거구에 출마를 하셨는데 제게 전화를 주셔서 와서 선거를 배우라고 하셨죠. 그때 영등포지역에서 선거운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때 많이 배웠는데 한 가지 확실하게 안 것이 있습니다. 정치와 국회의원을 키르기스스탄에서 싫어하는데 한국에서도 싫어한다는 거였죠. 국회의원을 좋아하는 나라는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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