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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산산맥의 고원에서 무릎을 꿇다.

톈산산맥의 심장​

by motif

INTO THE WEST_67 | 톈산산맥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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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함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적도 기준 40,192km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바스쿤협곡의 모든 것이 경이로웠습니다. 협곡 사이의 상승기류에 날개를 맡기고 공중을 선회하고 있는 매, 계곡의 돌을 굴리며 흐르는 계류, 히치하이크를 위해 길가에서 수줍게 손을 드는 아이, 자전거를 타고 산속에서 나온 여성, 계곡을 뒤덮는 넓이로 마을로 향하는 양 떼, 그 수천 마리의 양 떼를 목양견 두 마리로 말위에서 지휘하는 소년, 그 말을 타고 잠시 목동이 되고 싶어 하는 이방인의 마음을 읽고 말고삐를 건넨 목동, 15분간 목동이 되어본 이방인이 고마움을 어떻게 전해야할 지 몰라 20달러 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넨 손을 끝까지 뿌리치는 존엄...

바스쿤 협곡의 오른 쪽 산정의 흰 설사면을 잠시 붉게 물들이다가 어둠에게 자리를 양보한 석양, 그 어둠을 지키는 별. 나는 글램핑장의 안락한 침대 속에서도 잠들기 어려웠습니다.

아직 협곡의 어둠이 걷히지 않은 때에 텐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다른 텐트에서 밤을 지낸 아내였습니다. 지난밤에 약속을 한 터였습니다. 이른 아침에 협곡 중앙을 가로막고 있는 저 설산, 톈산산맥의 심장 속으로 최대한 가깝게 가보자는...

협곡의 중앙을 흐르는 계류를 따라 걸었습니다. 오직 물소리만이 우리를 동행했습니다. 첫 번째 우리를 맞은 것은 털이 긴 소 무리였습니다. 야크(yak)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지방의 털이 긴 머리소(Highland cattle)와 달리 티베트, 몽골, 네팔 등지의 4,000~6,000미터의 중앙아시아 고산에서 살고 있는 야크는 영하 40도까지도 보온이 될 수 있도록 짧은 속 털 위에 다시 긴 털을 가진 소입니다. 필경 협곡의 바위 사이에서 밤을 지냈을 야크는 우리 부부를 보자 가문비나무 숲속으로 천천히 나아갔습니다. 가축화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야생에서 키워지는 그들의 본성에 대해 모르는 우리는 서로 조심했습니다.

한 시간쯤을 걸었을 때 어제 거두어갔던 빛이 다시 설산의 정수리부터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일출을 호수가 모두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호수는 협곡의 일출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 부부의 모습도 함께 품어주었습니다.

구글 지도를 확대해 보면 이식쿨호를 일주하는 A364도로는 이식쿨호 정남쪽 협곡 깊숙이 지선을 내어 톈산산맥 속으로 들어가다가 끝이 나있고 이식쿨호 동쪽에서 다시 남쪽으로 지선을 낸 또 다른 A364와 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자연은 아직도 톈산산맥의 고봉을 차로 접근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길은 신장 위구르의 투루판과 멀리 시안으로 연결되는 실크로드, 천산남로의 일부였습니다. 그 옛날 대상들은 지금도 자동차의 접근이 불가능한 이 산맥에 고갯길을 내고 오갔던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여기까지'로 눈빛으로 합의했습니다. 다시 도로에 올라 더 밝아진 왔던 길을 따라 캠프로 향했습니다.

몇백 미터를 걷지 않아 꼬리에 흰 먼지를 달고 달려오는 차량 한 대가 있었습니다. 그 차가 순식간에 저희 부부 앞에 섰습니다. 오른 팔을 뻗어 엄지 손가락을 올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여는 이는 안빈락대원이었습니다. 르노마스터 밴을 모터홈으로 개조해 '집이라니카'로 명명하고 은퇴후 1년이상을 이 차에서만 생활한 분입니다. 이번 원정에 해외에서의 캠프 생활을 실험하기 위해 집이라니카를 가지고 참여한 대원입니다. 안대원의 옆에는 정오석대원이 타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 어떤 말도 필요 없었습니다. 집이라니카에 함께한 네 명은 저희 부부가 발길을 돌린 곳을 지나 그 설산을 향해 달렸습니다. 협곡의 끝에서 헤어핀 커브가 계속되는 오르막이 시작되었습니다. 곧 수목한계선을 지나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업힐을 계속하자 도로변에 고도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3442 m! 전진을 계속했습니다. 마침내 U자형의 바스쿤 협곡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두가 경이로움 앞에 말이 없어졌습니다. 3819m! 비로소 평지가 이어졌습니다. 산정은 긴 고원(高原)의 설선 (雪線) 지점이었습니다.

호수변으로 뛰어간 아내가 만년설을 품은 물가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참을 기도했습니다. 고산은 곧 사원이었습니다. 놀라움과 두려움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기도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호수변은 얼음이 얼었습니다. 호수물을 두 손바닥으로 떠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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