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란다꽃마을의 책이 불어나는 신비한 나눔 도서관

그림일기_80 | 클레어몬트(Claremont)

by motif


바쁜 여정이 아닌 것이 주는 큰 혜택은 낯선 방문지의 구석구석(every nook and corner)을 샅샅이 뒤지며(search every cranny) 다닐 시간이 허락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달렸더라면 보지 못했을 것을 보게 해주고 오해할 수도 있었을 것을 바로 알게 해준다.

그래서 내가 더 즐기는 여행은 비행기보다 기차를 타는 것이고, 기차보다 자전거를, 자전거보다 걷는 것이다. 걷는 여행 중에서 산을 트레킹 하는 것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은 골목여행이다. 천천히 걷다 보면 삶의 사정이 낱낱이 읽히는 골목여행은 재미있는 수필을 읽는 것처럼 즐겁다. 그러므로 우리의 10년 여정은 오래된 삶의 터전 속으로 난 골목을 간섭하면서 걷는 골목여행이 주가 될 것이다.

우리의 이런 마음을 어떻게 읽었는지 조이스선생님이 제안했다.

"이번 주 일요일 우리 동네에 올래요? 자카란다 꽃이 만발한 시기는 지났지만 대신 보라색 꽃비를 경험할 수 있답니다."

선생님의 동네는 클레어몬트(Claremont). 우리는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Union Station에서 Metrolink, San Bernardino line를 탔다. 클레어몬트까지는 1시간. 널찍한 2층 칸에서 곧 귀국할 아들과 수다를 즐기다 보니 금방이다.

조이스 선생님이 열차역으로 마중을 나와계셨다. 귀중한 일요일의 시간을 저희에게 할애한 선생님은 이 동네에서 30여 년을 사신 분. 절기마다 변하는 동네의 모습을 꾸준히 사진으로 기록해 오신 분이다. 그러므로 동네 구석구석 정원과 그 정원의 꽃, 주인의 성품까지 훤하다.

우리를 허그로 맞으신 선생님은 우리를 맞은 그 자리에서부터 안내를 시작했다.

"이 소박한 기차역은 이 동네에서 각별히 좋아하는 곳 중의 하나에요. 매표기능을 머신으로 자동화하고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방송도 녹음으로 대치한 다음 20세기 초에 지어진 이 멋진 역사(驛舍) 전체를 미술관(Claremont Lewis Museum of Art)으로 만들었어요. 전시는 정기적으로 바뀝니다."

시 방문객을 박물관에서 맞이하는 마을이 된 것이다.

"클레어몬트는 '나무와 박사의 도시(The City of Trees and PhDs)'라는 별칭이 있어요. 그만큼 나무가 많아요. 지금까지 동네 거리를 보라색으로 뒤덮은 자카란다, 후추나무, 녹나무, 백일홍 등이 숲을 이루어요. 그리고 동네 거리 이름이 대학 이름들이잖아요. 이곳에는 5개의 학부 대학과 2개의 대학원이 Claremont Colleges(Pomona College, Claremont McKenna College, Scripps College, Harvey Mudd College, Pitzer College,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 and Keck Graduate Institute)라는 컨소시엄을 만들어 캠퍼스와 강의를 공유해요."

대학을 돌아 나오자 작은 다운타운 대로 양편에는 베이커리와 레스토랑, 갤러리, 상점들이 소담하다. Claremont Village라고 불리는 곳이다.

집들은 빅토리아 양식을 비롯한 다양한 건축양식을 보여주지만 공동적인 것은 하나같이 담이 없고 정원이 넓은 것이다.

"집집마다 포치(Porche)가 있어요. 최근에 지어지는 집들은 포치대신 주차장을 넓히지요. 포치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동네의 정서에 크게 영향을 줍니다. 포치의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노부부를 보면 얼마나 다정해 보이는지... 이웃이 지나간다면 불러서 대화를 섞겠지요. 특히 이 도시는 커뮤니티 유대가 강해서 크리스마스와 핼러윈 장식을 각 집집마다 개성적으로 해요. 그때는 외지인들이 그 장식들을 즐기기 위해서 옵니다."

한 집 앞에 작은 나무박스가 세워져있고 책이 들어있다. 투명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동화책과 영어책 외에 중국어와 불어책도 있었다. 마침 그댁 주인이 반려견 산책에서 막 돌아왔다.

"이 작은 도서관은 당신이 만든 건가요."

"그렇습니다. 읽은 책을 다른 읽고 싶은 사람도 가져가 읽었으면 해서요."

"아이들이 있나 봐요?"

"이제 모두 성장했어요."

"아, 그래서 동화책을 내놓으셨군요. 중국어책과 불어책도 당신이 넣어놓으신건가요?"

"중국어책이 있다고요? 제가 모르는 책입니다."

이 집 앞의 작은 나눔 도서관은 주인이 둔 책을 가져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 자신이 읽은 책을 가져다 놓는 곳이기도 했다.

자카란다 꽃잎이 반쯤 떨어져서 남은 꽃은 하늘을 보랏빛 터널로 만들면서 땅까지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자카란다 꽃이 다 지면 백일홍이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조이스 선생님에게 백일홍은 특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소환하는 나무이다.

"아버지는 신실한 불교신자셨어요. 사찰을 신축할 때 아버지는 두 그루의 배롱나무를 마당에 심고 자식들을 위해 기도했었죠. 백일홍꽃에 분홍색과 빨간색 외에 흰 꽃이 있다는 것을 이곳에서 알았어요."

기차역의 갤러리처럼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다.

"이 집의 용도는 무엇일까요?"

한 집 앞에서 멈추었다.

"시청이에요. 이렇게 작은 시청 보셨어요?"

특별히 정원이 넓은 것을 제외하곤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집이었다.

날이 어둑해지는 막차시간에 열차에 올라야 하는 시간에도 기차를 탓했다.

"막차는 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오는 거야..."

클레어몬트를 방문한지 보름이 지났다. 지금은 그 마을에 배롱나무꽃이 피었지 싶다.


"자카란다 꽃마을의 작은 나눔 도서관

20230724

강민지"


[꾸미기]제목 없음-1.jpg
[꾸미기]20230725_034220_1.jpg
[꾸미기]20230725_034220_4.jpg
[꾸미기]DSC05724.JPG
[꾸미기]DSC06263.JPG
[꾸미기]DSC06388.JPG
[꾸미기]DSC06373.JPG
[꾸미기]20230709_164111.jpg
[꾸미기]DSC08044.JPG
[꾸미기]DSC06175.JPG
[꾸미기]DSC07920.JPG
[꾸미기]DSC07827.JPG
[꾸미기]DSC06005.JPG
[꾸미기]DSC06423.JPG
[꾸미기]DSC06790.JPG
[꾸미기]DSC07973.JPG
[꾸미기]DSC05848.JPG
[꾸미기]DSC06820.JPG
[꾸미기]DSC05780.JPG
[꾸미기]DSC05825.JPG
[꾸미기]DSC05641.JPG
[꾸미기]DSC07100.JPG

#그림일기 #세계여행 #미국 #클레어몬트 #Claremont #자카란다 #나눔도서관 #JoyceLee #모티프원 #인생학교 #헤이리예술마을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수직벽 갈라진 틈새에 떨어진 씨앗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