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 이민 140년을 되돌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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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코리아타운에서의 하루


LA 코리아타운을 걸었다. 몇 번 한식의 유혹에 이끌려 방문했지만 일행과 식사와 친교만의 목적이었으므로 코리아타운의 범위와 정서를 마음에 담지 못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최대한인 커뮤니티를 걸으면서 오늘의 미국을 만든 이민과 한인 이민의 역사를 새롭게 공부하고 마음에 새겼다.


미국이주는 1607년 영국이주민들이 현재의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정착지를 건설함으로 시작되었다. 1620년, 필그림 파더스(The Pilgrim-Fathers)들이 앵글랜드의 플리머스에서 현재의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도착했다. 그 후 영국령 식민지 아메리카로 유럽인들이 대규모로 건너온 것에 이어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이송되었다.


이어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이민자들이 늘어났다. 그 아시아인의 이민에서 최초의 한인 이민은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이민선이 도착한 때를 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올해는 '미주한인이민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하와이에 이민선이 닿기 전에도 갖가지 사연으로 적지 않은 한인들이 도미해서 공부하고 활동했다.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생 유길준은 1883년 도미하여 보스턴대학에서 수학한 후 1885년 유럽을 거처 귀국하여 1889년 미국 유학 중에 보고 배운 것을 서술한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집필했다.

독립신문 발행자 서재필은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난 뒤 1885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1886년 해리 힐맨 고등학교(Harry Hillman Academy)에 입학하였다. 1890년 한인 최초의 미국시민권자가 되고 1892년 3월에 콜롬비아 의대를 졸업함으로써 한인 최초의 미국의사가 되었으며 1895년 귀국 후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윤치호는 1888년 도미 밴더빌트대학과 에모리대학에서 5년간 수학하였다.


김규식은 1896년 선교사 언더우드의 후원으로 도미하여 버지니아의 로아노크 대학(Roanoke College)과 1904년 프린스톤대학원을 마치고 상해임시정부 부주석을 역임했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은 1900년 버지니아주 세일럼의 로아노크대학의 휴학생으로 도미하였다.

도산 안창호는 1902년 미국선교사 밀러의 주례로 결혼하고 부인 이혜련과 함께 도미했다.


이 역사를 돌이키며 천천히 코리아타운을 걷다 보니 마치 근대의 시간 속을 걷는 뜨거운 가슴이 되었다.

시에서는 한인타운 지역을 동쪽 버몬트 애비뉴(Vermont Ave), 서쪽 사우스웨스턴 애비뉴(S Western Ave), 북쪽으로는 웨스트 3번가(W 3rd St), 남쪽으로는 올림픽대로(Olympic Blvd)로 지정하고 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 이민자들이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벙커 힐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30년대 거주자는 600명 이상으로 늘어났고 지역사회단체를 만들었다.

1971년 한인 최소의 슈퍼마켓이 올림픽대로와 허버드대로 코너에 문을 열었다. 1972년 대한항공이 LA에 취항하면서 한인들이 대폭 진출했다. 1974년 서울 국제 공원(Seoul International Park)에서 첫 '한국의 날' 행사가 열리고 11월 3일, 올림픽대로에서 제1회 한인 퍼레이드가 개최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올림픽대로와 8번가 지역의 대부분의 사업체는 한인들의 것이 되었다.

1980년 로스앤젤레스 시의회가 이 지역을 코리아타운이라고 선포했다. LA 폭동 후 1992년 5월 1일, 수만 명의 한인들이 평화시위를 벌였다.


주 로스앤젤레스 대한민국 총영사관, 서울 국제 공원, 노인커뮤니티센터(Koreatown Senior & Community Center), 한국정자(Korean Pavilion), LA한인회, 윌턴 극장, 사찰과 교회, 한국사업체와 사업체가 밀집된 플라자들을 방문했다.


미연방센서스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 전역의 한인 이구는 총 194만5천880명(혼혈 포함)이라고 발표했다. 캘리포니아주에 56만 2천여 명, 뉴욕주에 14만2천 여명, 뉴저지주에 11만여 명이며 캘리포니아에서는 로스앤젤레스가 22만9천여 명이었다. 이어서 텍사스(11만1천여 명), 워싱턴(9만7천여 명), 버지니아(9만3천여 명), 일리노이(7만3천여 명), 조지아(7만2천여 명), 메릴랜드(6만여 명), 하와이(5만6천여 명) 순으로 집계되었다.


반면 한국 외교부의 2021년 외교백서에 따르면 미국거주 한인은 총 263만 3,777명으로 미국 측의 통계와 차이를 보인다.


상권에 따라 부침이 있었지만 이즘 핫한 K-Culture의 붐에 따라 한국식당과 고기구이집, 클럽과 바는 한인들보다 한인이 아닌 사람들의 고객이 더 늘고 있다.

우버를 탈 때마다 코리아타운의 인식에 대해 물었다. 대부분은 외식과 야간의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로서 방문한다고 했으며 그곳 한인과 함께 사업을 함께하고 있다는 이도 있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상당수 교회와 사찰이 문을 닫았다고는 하지만 교회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전혀 영어가 없는 한글간판 상가들을 걷다 보면 한국의 과거 속을 걷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거울 속에 비친 또 다른 내 모습을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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