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WEST_8 | 부산, 아시아의 끝이자 유럽의 시작
아내와 함께 '2022년 유라시아 자동차 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2x3.14x6,400)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경부고속도를 달릴 때마다 마주하는 한 도로교통 표지판이 가슴을 뛰게 합니다. '아시안 하이웨이(Asian Highway)'. 그 표지판은 내가 달리는 도로가 서울이 종착점이 아니라 국제간선도로라는 사실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 32개국을 연결하는 이 국제 고속도로망의 한국에서는 1호선(AH1 : 14개국 20,557Km)과 6호선(AH6 : 5개국 10,533Km)이 지납니다. 북한으로 인해 끊긴 아시안하이웨이를 중단 없이 내달려 유럽의 끝에 닿고 싶다는 잠들었던 욕망을 깨워주지요.
이 여행기의 타이틀을 라운드 트립임에도 불구하고 'INTO THE WEST'로 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도로를 내달려 북한을 지나 유럽의 끝 대서양에 닿겠다는 희망을 담은 것이 첫 이유이고 13세기 말 마르코 폴로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을 떠나 원나라 쿠빌라이의 여름궁전이 있는 상도(上都:현 네이멍구자치구 돌룬노르)에 당도한 'INTO THE EAST'에 맞대어 비교한 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아시아 동쪽 끝에서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은 가장 먼 서쪽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 국제간선도로의 시작점을 찍고 이번 여정을 출발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겨났습니다. 3박4일동안 유라시아의 시발점, 부산을 탐사했습니다.
부산역에 내리자 '어서오이소, 부산입니데이'의 정감어린 인사말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부산역 광장은 새롭게 디자인되어 '부산유라시아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있었습니다. '아시아의 끝이자 유럽의 시작점‘으로 작정하고 네이밍을 한 것이 읽혔습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영도대교 아래 유라시아 광장에 섰습니다. 피난민 조형물이 이 광장에서 수많은 사연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영도다리! 거~서 꼭 만나재이~"
한국전쟁 모든 피난민의 종착지는 부산이었습니다. 북새통에 손을 놓치면 어떻게든 살아서 만나자고 약속했던 곳이 영도다리였었습니다. 헤어진 가족이 그 약속을 믿고 몇 년간을 기다리던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유라리광장 표지석에는 광장이름 네이밍의 의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라시아(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국도 7호선의 시점과 종점인 이곳을 유럽의 유와 아시아의 라(아) 그리고 사람, 마을, 모여 즐겨 노는 소리를 뜻하는 리(이)의 조합으로 유럽과 아시아인이 함게 어울려 찾고 즐기는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내와 나는 이곳에서 헤어졌습니다. 각자가 원하는 곳에서 낮을 보내고 밤에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우리 부부의 여행방식입니다.
아내는 영도다리를 건너 깡깡이예술마을로 가고 나는 자갈치시장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깡깡이예술마을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동기를 장착한 배를 만든 ‘다나카 조선소’가 세워졌던 곳으로 수리조선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수리조선소에서 배의 녹슨 페인트 조각이나 배밑에 붙어자란 조개껍집을 떼어내기 위해 두드리면 나던 '깡깡'소리에서 깡깡이마을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자갈치시장의 빌딩은 수산물시장을 비롯해 7층 전망대까지 각기 다른 기능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보니 3마리의 갈매기가 나는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맞은편 깡깡이마을의 바닷가에서 아내가 알려주었습니다.
나는 자갈치시장의 옥상에서 아내가 걷고 있는 깡깡이마을을 바라보면서 6개월 후에 배달해 주는 갈매기우체통에 엽서 한 장을 써서 넣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걷고 있을
영도대교 너머 봉래산 아래
촘촘한 마을을 바라보니
함께 아이 셋을 품어 키우던
청파동 고갯마루 집이 생각납니다.
더불어 숲이 된 나무들을 키운
당신의 노고를 생각합니다.
2022. 1. 16.
자갈치 전망대에서"
이 편지는 아직 아내에게 배달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집에 당도하는 것은 우리가 아시아를 벗어나 이미 유럽을 달리고 있을 때쯤일 것입니다.
광복동, 남포동, 부평동, 보수동을 느리게 걷는 동안 수많은 경이로운 것들을 만났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물가였습니다. 생선구이 식사도 6천 원을 넘지 않았고 손칼국수 한 그릇이 3,500원, 공기밥 한 그릇은 500원이었습니다. '세상의 밥 한 그릇'이 모든이에게 차별없이 따뜻했습니다.
고무신을 수리해 주신 노변의 구두수선집 사장님은 수리 중에 나눈 나와의 대화로 수리비가 갈음되었다고 한사코 수리비 받기를 사양했습니다.
국제시장 선술집은 입구에 붙은 촌철살인의 경구가 먼저 사람을 맞습니다.
"한 잔의 술은 재판관보다 더 빨리 분쟁을 해결한다."
"걱정거리를 통장에 넣어두고 싶다. 거기는 뭐 넣기만 하면 다 없어지던데"
"술 마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우유를 마신다고 나아지는 것도 없다“
"누구보고 생각이 많대 지가 생각이 없는 거면서"
'동은'님은 술보다 치유를 파는 분이지 싶습니다.
발길이 준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4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킨 주인은 17년째 경전을 필사하고 계셨습니다. 책 팔아 아이들 대학까지 보내고 온 식구가 먹고살던 옛날이 고마워서 현재 뜨음해진 손님의 발길에 아랑곳하지 않고 붓에 집중한다고 했습니다.
보수동 책방마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책이 천장에 닿게 쌓여있지만 여전히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고 믿는 사람들의 골목이었습니다.
젊은 책방주인이 전혀 다른 감각으로 손님을 맞고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독립서점 <마이 유니버스>입니다. 'Book & Something'이라는 컨셉답게 주인의 감성으로만 구성된 공간 속에 놓인 독립출판물들의 타이틀에도 재기와 발랄함이 넘쳐났습니다.
'이런 시베리아'
'커피는 남이 내려준 게 더 맛있다',
'외로움을 맡아드립니다'
'삶은 감자다'
원도심을 떠나 기장의 아난티코브에서 태평양 수평선에서 떠오른 아시아의 일출을 맞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유럽의 끝 리스본의 호카곶 대서양에서 일몰을 환송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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